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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Dec 22. 2023

엄마가 다 망쳤어

제대로 완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사는 지역에는 3~4월이 되면, '고향의 봄'이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

6살 때 미술학원에서 운영하는 유아원에 다녔던 실력이 남아있었는지, 초등학교 1학년 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추천해서 '고향의 봄' 대회에 출전시켰다.


8살이었던 나와 4살이던 여동생 그리고 엄마 이렇게 셋은 공원 한편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 공원은 돗자리를 펴고 소풍 나오듯 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그 가족으로 북적북적했다.


저학년 사생대회에 출전한 나는 그림의 주제가 발표되고 한참을 집중해서 그렸다.

엄마는 4살인 동생의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동생과 놀아주는 등 동생에게만 눈길을 줬다.

나는 그 둘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보는 공원의 봄 풍경을 열심히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는데 집중했다.



요즘 취미 오일파스텔


8살 때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굉장히 내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나도록 그 기억은 나에게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억울함일까, 아쉬움일까 또는 미련일까.



동생을 한참 챙겨주던 엄마는 내 그림을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이렇게 벌겋게 칠하면 우짜노!!"

그러시곤 내 크레파스를 빼앗아 내 그림을 노랗게 칠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스케치북을 놓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는 내 눈에는 개나리도 있었지만, 조금 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었을 때, 이제 막 봉우리를 피우기 시작한 벚꽃이 보였다. 분홍색의 벚꽃은 개나리보다 아름다웠다. 8살의 나는 그런 벚꽃을 꼭 그리고 싶었다.



스케치북의 왼쪽에 커다란 벚나무를 그렸다. 나무의 아랫부분에는 개나리로 가득 채웠다. 왼쪽에 있는 벚나무를 칠하고 나면 나머지 상단에는 연한 파랑으로 하늘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벚나무에 분홍을 입히고 있을 때, 엄마가 내 그림을 본 것이다.



집에서 그려본 오일파스텔 그림


엄마에게 내 그림의 주도권을 뺏기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엄마는 내가 색을 입히던 분홍색 부분을 노란색으로 덧칠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엄마는 내게 왜 이렇게 그렸냐고 다그치기만 했다. 엄마가 동생을 보고 있는 동안 내 그림을 봐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었을까, 잘할 거라 믿은 내가 이렇게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을까.



그렇게 내 그림은 내가 생각한 대로가 아닌, 엄마의 개입으로 엉망이 된 채, 제출했다. 결과는 당연히 입상 근처에도 못 갔을 테고. 나에겐 상을 못 탔다는 아쉬움보다 내 그림을 엄마가 마음대로 갖고 가서 망쳤다는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도 엄마는 기억을 못 하실 테지. 그저 그날 첫째 딸이 입이 툭 튀어나와 삐진 표정으로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만 기억하실지도 모른다. 



그 당시 엄마의 나이보다 몇 살이 많은 지금의 나는, 이 날을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도 든다. '엄마는 그날, 고개를 들어보지 않았구나.' 조금만 고개를 들어봤더라면,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벚꽃의 꽃망울도, 하늘도 보셨을 텐데. 엄마는 지극히 현실에 있었구나.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30년이 지나서 마흔 살이 되는 해부터 손바닥만 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그림에 뭐라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생각대로,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어린 시절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억울함이었을까, 엄마에게 아무 말도 못 한 미련일까.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나를 더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내 아이들도 내가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듯 비슷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 하기 참 힘들다. 그 당시 38세의 엄마는 삐져서 돌아가는 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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