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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May 16. 2024

아빠가 빡빡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다



사정상 어버이날 기념 식사를 어버이날이 지나고 했다.

어버이날 당일에는 교육원 수업도 있었고, 그전 연휴에는 아이들 데리고 글램핑을 다녀왔다.

토요일은 공적인 업무가 있어서 최대한 조율한 날짜가 일요일 점심이었다.



가족마다 사연 없는 집은 없겠지만, 우리 집은 여차저차 아빠는 밀양에, 엄마는 창원에 계신다.

아빠와 엄마에게 따로 연락을 드려서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항상 내 몫이다. 

맏이라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동생도 멀리 있고 뭐 그런 이유.



이번에는 엄마 집 근처에 있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아이들은 꼭 나가려고 할 때 화장실을 가는 경우가 많은지. 결국 이번에도 우리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미리 와 계신 엄마와 아빠.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내 친구들의 부모님에 비해 연세가 많다. 거의 열 살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 식당에서 아빠를 보는 순간, 뭔가 어색했다. 70대 중반이 되어가면서 살이 조금씩 빠지고 있는 것은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어울리는 모자도 쓰고 계신다. 뭔가 예전에 조영남이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항상 캡을 쓰고 나올 때를 보는 느낌이랄까.



언뜻 봐도 모자로 가려지지 않는 부분은 머리숱이 없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매번 숱이 너무 많아서 미용실에 갈 때마다 숱을 쳐야 하는 내 머리칼은 아빠를 닮았다. 70이 넘어서야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머리 왜 다 빠졌어?"



엄마도 모른다고 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온 아빠에게 여쭤보니, '그냥 좀 아팠어'라고만 하셨다.

무슨 일일까?



아빠는 식사 후 들른 카페에서도 별 말이 없으셨다. 뭐 그건 늘 있는 일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약을 하나 챙겨드신다. 






엄마는 아이들 용돈도 줄 겸 집에 들렀다가 가라고 하셨다. 다 같이 집에 가서 엄마는 본격적으로 아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오데가 아파서 머리가 다 빠지고 그러고 다니는데?"


아빠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 몇 달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지면서 얼굴을 살짝 부딪혔어. 근데 눈 밑으로 멍울 같은 게 생기면서 계속 안 없어지더라고. 정형외과 가도 모른다고 하고, 밀양에 큰 병원 가도 모른다고,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을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ㅇㅇ대학병원으로 가려고 하다가, 기차 타기 쉬운 데로 갔지. 


병원에서 검사를 이것저것 하는데, 무슨 병인지 말도 안 해주더라고. 무슨 통 안에 넣어서 검사하는 것도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나중에 혈액종양 내과로 가라고 하는 거라. 어? 싶은 거라. 


아, 거기서 혈액 종양이라고 하면서 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지금 3개월 됐지.



혈액종양 내과라니. 내가 물었다.

-혈액종양이면 혈액암?


아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머리카락은 약을 2개월 정도 먹고 나서부터 빠지기 시작했단다.

너무 많이 빠져서 모자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니, 3개월이나 지나면서 말을 왜 안했노?


-다들 걱정할까 봐 그랬지. 은행에서 암보험 들라고 했을 때, 우리 가족에 암 가족력도 없고 해서 '내가 무슨 암보험이고' 그러다가 그냥 하나 들어놨는데, 허 참 그거 진단금도 받았지. 

병원에서는 초기라고 약만 먹으라고 하더라고.



그래 어쩐지, 엄마와 얼마 전에 통화할 때, 아빠가 엄마에게 전화 와서 '사람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라'며 통장 비번을 엄마에게 알려주더라고 했었다.



-그럼 자전거 타고 넘어진 게 어찌 보면 잘 된 걸 수도 있네?

-응 그렇지

-그전에 전조증상 없었어? 피가 안 멎는다던지, 뭐 그런 거?

-없었어

-지금 입맛이 없고 그렇진 않아? 불편한 건 없어?

-입맛도 좋~다

-다행이네. 눈썹이나 이런 건 괜찮고 머리만 빠지드나?

-어 희한하게 그렇데?



아빠 말처럼 우리 가족에게 암 가족력은 한 명도 없었다. 아빠가 어떤 큰 병에 걸린다는 것은 내 데이터에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아빠는 주말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산이나 운동장에 가서 철봉도 하고 푸시업도 많이 했다. 그래서 키는 작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이었다. 연세가 들면서 당뇨와 고혈압이 약간 있다고 해서 약을 몇 년 먹었는데, 그것도 병원에서 그만 먹어도 되겠다고 하고 더 이상 안 드신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아프다,라는 데이터는 나에게 없는 일이다. 아프면 엄마가 아파도 더 아팠지.



설에도 일이 들어와서 못 온다고 하셔서 처음으로 명절에 아빠 없이 설을 지냈었다. 그러니 아빠를 안 본지가 조금 됐는데, 이렇게 까까머리로 만나게 되니, 애써 담담하게 있어야 했다. 아빠도 병원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며 담담한데, 거기서 슬퍼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엄마는 빠진 건 빠졌지만, 남아있는 머리카락 정리 좀 하자고 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이발을 다 해와서 집에 있는 바리캉으로 아빠의 뒷 머리만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자를 벗은 아빠의 모습은 정말 1% 정도만 머리카락이 남은 형태였다. 그 와중에 아빠 두상은 참 예뻤다. 


나-아빠, 머리(카락) 없으니까 꼭 아빠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찍은 사진 같네. 아빠 두상은 예쁘다.

아빠- 근데 다 밀지는 마라



머리숱 때문에 걱정할 일 없었던 아빠는 남은 머리카락마저 엄마가 다 밀어버릴까 봐 몇 번을 당부하셨다.



항상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를 기차역에 모셔다 드린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는데, 엄마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말한다.


"건강 단디 챙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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