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약속이 잡혀 있었다. 멀리서 오시는 분과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실 계획이었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만나서 조금 일찍 헤어졌다.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한가롭게 오븐에 구운 고구마를 간식으로 다 먹고 치우는 참이었다.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벨이 들리지 않았고, 고구마를 다 먹은 뒤에야 엄마에게서 문자가 여러 통이 와있는 걸 보게 됐다. 띄어쓰기와 오타가 너무 많아 곧장 전화를 했다. 엄마는 아빠가 일하다가 다쳐서 119에 실려서 이쪽 병원으로 오고 있다고 연락을 받았고, 지금 병원에 도착해서 아빠를 싣고 오는 구급차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어쩐지, 오늘 일정이 순조롭게 끝나간다고 했어.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엄마를 만났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빠는 평생 지게차 일을 하셨는데, 이렇게 지게차 사고가 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게차와 함께 3미터 언덕 아래로 떨어졌는데, 구사일생으로 차에 깔리지 않고 튕겨 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찢어진 두피 봉합 중이라고 했다.
봉합이 다 끝나고 응급실에서 의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응급실 데스크에서 화면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두개골 골절이 있었다. 작은 조각 두 개가 떨어져 나간 것이 보였다. '다행히' 뇌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쪽을 향했있다고 했다. 다음은 갈비뼈. 지난 폐암 수술을 했던 쪽과 같은 쪽이었다. 갈비뼈 두 대가 나갔는데, '다행히도' 폐를 찌르지 않고 약간 밖으로 밀려나간 정도였다. 다음은 고관절. 골반은 '다행히' 괜찮았고, 대퇴골절이 비스듬하게 있었다. 수술은 정형외과에서 이 부분을 맡아서 할 예정이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라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했다. 응급실에서 병실이 없어서 계속 대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2인실 하나가 있다고 거기라도 가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일단 그쪽으로 갔다가 옮길게요,라고 했고 입원 수속을 했는데 바로 다인실이 나와서 입원을 진행했다.
뭔가 아빠에게 올해는 죽음의 기운이 계속 몰아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래도 안 죽을 거야?'라고 시험하는 듯, 혈액암과 폐암에 이어 큰 사고가 7개월 사이에 연이어 일어났다.
아이들이 먹을 밥이 없어서 겨우 풀칠만 하고 있을 때도 돈을 끌어모아서 제사를 꼬박꼬박 다녀오는 아빠였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