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연작소설) 얌전한 고양이와 함께 삽니다_1

by 소란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고, 점심 무렵부터 진짜 눈이 내렸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탐스러운 눈송이였다. 정우는 방송국 사무실의 작은 창문 쪽을 자꾸만 의식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부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노래 부르던 아이들이 생각나서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또 있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이 시작되자마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초조해하던 국장은 그날 아침 드디어 회사가 이듬해 입찰에도 성공했다며 직원들에게 재계약을 통보했다. 매년 있는 일이었지만, 방송작가 5년 차인 정우도 늦어지는 입찰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매달 카드값 막기에도 급급한 월급이지만 당장 자기가 일을 쉬면 아이들과 소소히 누리는 일상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됐다. 적어도 앞으로 1년은 숨 쉴 구멍이 생긴 것이다.

또 있다. 그로부터 2주 전에 정우는 피부과를 찾아가 얼굴에 있는 잡티와 기미를 레이저로 몽땅 제거했다. 나이와 정비례로 켜켜이, 아니 위로 말린 그래프처럼 늘어가는 근심들이 고스란히 각인되는 것만 같은 잡티였다. 영원히 떠안아야 하는 줄 알았던 그 불길한 기미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그렇게 적은 돈으로 해결되다니. 정우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억울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눈을 핑계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정우가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통통한 아이가 정우의 둘째 아이 윤이었다. 윤이 눈을 뭉치려고 애를 쓰다가 정우를 발견하고는 “엄마” 하며 뛰어왔다. 정우는 무릎을 굽히고 윤을 꼭 끌어안았다. 윤의 목덜미에서 보송하고 따스한 살냄새가 났다.

곧 윤이 집에 갈 채비를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갔고, 정우는 윤이 준비하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기 위해 창쪽으로 다가갔다. 나지막한 유치원 창틀에도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거기에 눈보다 더 폭신해 보이는, 언뜻 보면 눈뭉치처럼 보이는 하얗고 커다란 고양이가 있었다.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던 고양이가 정우가 다가가자 천천히 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만화 속에서 나올 법한 귀여운 외모였고, 골똘한 듯 묘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정우는 제 앞의 풍경이 믿기지 않아서 눈을 크게 감았다 떴다.

“엄마, 고양이 아까부터 이러고 있어.”

그새 가방을 메고 나온 윤이 말했다. 때마침 고양이는 윤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창가에서 뛰어내렸고, 정우가 있는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정우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손을 내밀어 고양이 등을 쓰다듬어보았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고양이를 직접 만져본 건 처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얀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고양이의 몸은 노르스름한 색이 섞여 있었고, 생각했던 대로 폭신하고 따뜻했다. 정우가 몇 번 더 쓰다듬자 고양이는 살짝 눈을 감았고 엉덩이를 들더니 꼬리를 베베 꼬았다.

“어머니, 걔 귀엽죠? 오늘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걔가 종일 학교를 맴돌고 있어요.”

유치원 돌봄 선생님이 창문을 열고 말했다.

“그랬어요? 불쌍해라.”

정우가 그렇게 대답하며 일어서자 고양이가 정우의 롱코트 밑으로 쏙 들어왔다.

“어맛, 얘가 추운가 보네요.”

깜짝 놀란 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갑자기 추워져서, 불쌍해서 어쩌나, 어머니 혹시 고양이 좋아하시면 얘 데려가세요.”

느닷없는 말이었다. 정우는 윤의 돌봄 선생님을 마주칠 때마다 호감을 느꼈었다. 그녀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줄 때나 하원하기 위해 자연스레 말을 섞을 때면 언제나 진심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예? 아니에요.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만…….”

정우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했다.

“불쌍해서 어쩌나, 저도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 키우거든요. 아이들 정서에는 정말 좋아요.”

선생님은 애가 끓는 목소리로 말했고 정우는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고’ 를 내뱉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명분으로 정우도 안 키워본 동물이 없었다. 개미, 장수풍뎅이 같은 곤충류부터 대형 마트에서 파는 금붕어, 햄스터. 맞다. 지금 정우의 집에는 햄스터도 두 마리 키우고 있었다. 햄스터는 고양이가 천적이 아닌가?

“그렇겠죠? 아무래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길고양이를…….”

정우는 가까스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제가 여력이 되면 얘를 데려갈 텐데, 저도 두 마리는 자신이 없어서요. 그러지 말고 윤이 어머니, 한번 키워보세요.”

정우는 선생님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리 사이에 찰싹 붙어있는 고양이의 절박함이 느껴져서 엉거주춤했다. 윤은 그새 고양이에게 흥미를 잃고 친구와 눈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윤과 함께 놀고 있는 여자아이의 엄마이자 몇 개월 전에 넷째 아이를 출산한 여자가 다가와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동조했다.

아이 엄마는 사람 좋은 미소와 나긋나긋한 말투로 호감을 주는 여자였지만, 정우는 그녀를 볼 때마다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넷이나 낳아 키우다니, 대단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보다는 미련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앞섰다. 여자의 남편을 몇 번 마주쳐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정우의 첫째 아이 채와 여자의 첫째 아이가 같은 나이였다. 여자의 남편은 세상에 자기 가족만이 보이는 사람 같았다. 그는 학교 행사나 유치원 행사 때마다 보란 듯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는데, 제 자식 사진을 찍겠다고 요란을 떨었다. 임신한 제 아내가 불편하게 어린아이를 줄줄이 달고 있어도 그의 몸에는 카메라만이 붙어 있었다. 자신은 아이들의 영광만을 수집하고 전적으로 아이들 돌봄 노동은 여자의 몫으로 넘기는 것처럼 보여서 정우는 언제나 그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제가 차마 선아 어머니께는 권유를 못 하겠네요. 흐흐”

선생님이 여자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윤이 어머니, 아이들 정서에 정말 좋아요. 고양이는 강아지랑 달라서 산책도 목욕도 필요 없어요. 데려가세요. 어머니.”

어느새 아예 바깥으로 나온 선생님이 다시 정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동물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창의성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교육도 정우는 받은 적이 있고, 실제 아이들과 여러 동물을 키우며 교훈을 얻은 것도 많았다. 학교 친구들 중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은지 마침 아이들이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워보자고 한창 조르던 때였다.

“네? 그래도 될까요? 너무 커 보이는데…….”

정우는 마치 진짜 그런 일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해서 반문했다.

“얘 보니까 아기 같아요. 제가 키워봐서 알아요.”

선생님은 능숙하게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한 육 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게다가 수컷이에요. 수컷이 암컷보다 키우기가 훨씬 수월해요. 깨끗하고 순하고. 암컷들은 좀 더 앙칼지고 지저분하거든요.”

고양이의 배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아…….”

정우는 할 말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귀가 얇은 편이었고, 그래서 손해 보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이번에도 자신이, 그렇게 큰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닌지 조용히 자기 검열에 들어간 것이다.

정우가 스무 살 언저리였을 때, 형제들과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았을 때, 정우의 남동생이 마르티즈 강아지를 주워온 적이 있었다. 삼 남매는 그 좁은 집에서 강아지를 돌아가며 맡아 키웠다. 하지만 가난하고 바쁜 청년들에게 강아지 돌봄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다. 강아지는 혼자 집을 지킬 때가 많았고, 산책은 고사하고 어디가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강아지는 툭하면 밥솥에 오줌을 싸 놓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삼 남매에게 복수하면서도 그 집에서 삼 남매가 차례대로 모두 나갈 때까지 버텨주었다.

결국 정우 부모의 집으로 보내진 강아지는 일주일도 못 돼서 집을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삼 남매는 강아지 사진을 현상해 온 동네 전봇대에 붙이고 다녔다. 동네에 개장수가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있었고, 강아지가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정우는 남동생이 만든 포스터에 들어간 강아지 사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났다. 강아지가 밥솥 옆에 싸놓은 오줌의 지린내도. 그러고도 너희들 입에는 밥이 들어가느냐는 듯한 원망의 눈빛도.


선아 엄마가 큰일이라며 고양이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정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선아 엄마 다리에 몸을 밀착하고 등을 동그랗게 말았다.

“저것 좀 봐요. 자기 데려가라고 저러는 거예요. 어쩌면 좋아.”

선생님은 끝말을 길게 늘이며 안타까워했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한 탓인지 그녀는 온 얼굴로 간절함을 잘도 표현해 냈다.

“얘들은 이런 날 정말 얼어 죽거든요. 길고양이는 삼 년을 못 넘긴다 하더라고요. 원래 십오 년은 거뜬히 살 수 있는데 말예요.”

정우는 다시 고양이를 자세히 살폈다. 턱이 넓적하고 살짝 눌린 것 같은 이목구비가 귀여우면서도 불쌍해 보였다.

“엄마!”

여자아이 하나가 고양이를 둘러싼 사람들 쪽으로 뛰어왔다. 정우의 첫째 아이 채와 비슷한 또래의 그 아이는 선생님의 큰아이였다. 볼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이는 쌕쌕 숨을 몰아쉬며 뽀얀 입김을 내뿜었다.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아이는 검은 봉지를 뒤져 통조림을 하나 꺼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통조림 하나가 깨끗이 비워졌다. 고양이는 긴 혀로 연신 빈 깡통을 핥았다. 고양이 입에서도 뽀얀 입김이 올라왔다.

“아우 정말, 어쩐대요. 배가 엄청 고팠나 봐요.”

선생님이 말했다.

“엄마, 더 사 올 걸 그랬나 봐.”

아이가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정우는 그제야 선생님이 낮부터 고양이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 무언가가 남다른, 자신이 갖지 못한 비범한 사랑 같은 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럼, 제가 데려갈게요.”

정우는 마치 나라라도 구하는 양 비장하게 말했다. 정우는 뭐든 지는 걸 싫어했다.

“어머, 정말요? 윤이 어머니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복 받으실 거예요. 정말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집에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따가 제가 먹이라도 챙겨드릴게요.”

선생님이 환해진 얼굴로 말했고,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구경하던 선아 엄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우리 이제 고양이 키우는 거야?”

신이 난 윤이 물었다.

“아니, 따뜻할 때까지만 데리고 있을 거야.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정우는 사람들 앞에서 반드시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마음이 변해도, 고양이를 도로 집밖으로 내보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만인 앞에 공표하듯이.

“우리 윤이 좋겠네, 고양이랑 잘 지내봐.”

신이 난 선생님은 능숙하게 고양이를 안아서 정우의 품으로 옮겨주었다. 고양이는 순하게 정우 품으로 들어왔다. 정우는 생전 처음 안아보는 고양이의 몸이 생각보다 크고 길고 무거운 것에 놀랐다. 고양이는 자꾸만 정우의 품에서 미끄러졌지만 제 딴에도 무슨 결심이 섰는지 필사적으로 정우의 품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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