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야기는 그렇게 되기로

(연작소설) 얌전한 고양이와 함께 삽니다_2

by 소란

정우는 힐끔힐끔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일 년 전 정우 부부가 대출을 잔뜩 끼고 산 새 아파트의 2층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처음 마련한 파라다이스가 고양이를 키우기에 얼마나 부적절한 공간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우는 고양이를 거실 화장실로 데려갔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를 길고양이를 곧장 방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정우는 화장실을 대충 치우고 캠핑용 무릎 담요를 한 장 깔았다. 고양이는 정우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덥석 담요 위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정우는 대접에 물을 받아 한쪽에 넣어주고 곧바로 돌봄 선생님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헤어질 때 윤의 선생님이 당부한 거였다. 선생님은 그밖에도 고양이를 위해 당장 필요한 물건과 알아야 할 것들을 문자로 길게 보내주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책임을 전가한 것 같네요. 데리고 있어 보시고 정 힘들면 제가 데려갈게요. 언제든 연락주세요.”

지하 주차장에 마중 나온 선생님은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묵직한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가방에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 화장실 모래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정우는 그 종이가방을 받아드는 순간 절감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책임의 무게를.

정우는 남편 민형이 퇴근할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사이 학교에서 돌아온 채는 휴대폰으로 고양이 사진을 찍고, 요리조리 만져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와! 완전히 라떼 색이다. 라떼라고 부를래. 엄마.”

그때부터 채와 윤은 고양이를 라떼라고 불렀다. 정우도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심신이 노곤한지 아이들이 만지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순하다! 너무 귀여워, 엄마, 우리 그냥 라떼 키우면 안 돼?”

채가 말했다. 정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우는 인터넷을 열고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왔다’라고 쳤다. 생각보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구조’라는 표현을 썼다. 심지어 고양이를 키우게 된 사연의 대부분은 길고양이를 구조했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정우는 마침내 화면 한 귀퉁이에서 ‘길고양이 협회’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전화벨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시니컬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자신이 길고양이 협회장이라고 했다. 주변 잡음이 심해서 여자는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저 지금 일하는 중인데…….”

정우는 회장의 기세에 눌려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길고양이를 데리고 온 사연을 얘기했다.

“우선 고맙습니다. 잘하셨어요. 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추운 날 그 고양이가 복이 많았네요. 그래서 전화를 한 이유는요?”

회장은 뭔가 다급한 것 같았지만 말투만은 논리 정연했다.

“아, 네, 제가 우선 급한 마음에 고양이를 데리고 오긴 했는데요, 혹시 협회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요?”

“저희는 그런 거 안 해요. 저도 일해서 돈 번 거 다 고양이 사료 사는데 들어가요. 여기도 포화상태예요.”

정우는 시계를 봤다.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까지 그토록 시끄러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정우는 회장의 사회적 지위와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방법은 딱 세 가지예요.”

그럼 그렇지, 정우는 눈빛을 빛냈다.

“하나는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데려다 놓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방법은 뭐, 고양이 보고 이런 날씨에 죽으라는 거죠?”

“아……네.”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그냥 키우는 거예요. 고양이를 집에 데려갈 결심을 하셨을 때는 어느 정도 책임감은 느끼고 계신 거잖아요?”

정우는 불쾌해졌다. 회장은 책임감이라는 굴레를 씌워 정우에게 고양이를 키우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네? 저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긴 한데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고, 또 남편이 고양이라면 질색을 해서…….”

정우는 너저분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집안에 동물을 들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고양이는 또 알레르기가 심하고, 고양이 알레르기에는 면역이라는 게 없어요.”

회장은 생각보다 포용적이었다.

“마지막 방법은?”

회장의 말에 정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고양이를 분양시키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선 고양이가 건강한지, 몇 개월이나 됐는지 알아야 하는데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실 수 있겠어요?”

정우는 허탈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에게서는 고양이를 데리고 올 때의 호기로움을 찾을 수 없었다.

“우선 아이의 사진을 저한테 보내주세요. 저도 분양을 알아볼게요.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아세요?”

그 와중에도 정우는 회장의 ‘아이’라는 표현이 정감 있다고 생각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수컷이라고 하셨어요.”

“색깔은요?”

“애들이 라떼라고 벌써 이름을 붙일 정도로 뽀얗고 누르스름해요.”

“애들이 좋아하죠? 노란색이면 코리안 쇼트헤어, 치즈냥이네요. 치즈냥에 수컷이면 인기가 있을 거예요. 추우니까 당분간 목욕은 시키지 마시고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여서 저한테 사진 몇 장 보내주시고, 아기 엄마도 맘카페 같은데 가입돼 있으면 적극적으로 분양을 알아봐 주세요.”

전화를 끊고 정우는 고양이를 물수건으로 세심히 닦였다. 마지막 방법 말고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얘 진짜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 같아. 실제로 보니까 더 귀여워. 그냥 키우면 안 돼?”

외모를 단장한 고양이를 보며 채가 보채기 시작했다.

“아, 귀여워.”

윤도 덧붙였다.

“키우는 건 안 된다고 했잖아. 동물 병원에 가서 건강한지 보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자.”

아이 둘이 동시에 입술을 내밀었다. 그때 민형이 퇴근하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뛰어나갔다.

“아빠, 아빠, 우리 집에 고양이 있어.”

“아빠, 우리 유치원에서 고양이 데려왔어.”

민형의 황당해하는 얼굴이 선해서 정우는 화장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키우는 거 아니야. 오늘 너무 추워서 며칠만 데리고 있을 거야.”

민형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아이들이 옷을 벗는 민형을 따라다니며 저녁나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이야기의 끝에 채는 결국 본심을 드러냈다.

“아빠, 우리 저 고양이 키우면 안 돼? 내가 이름도 지었어. ‘라떼’라고!”

“안 돼.”

민형이 웃음기 없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비슷한 말들이 오갔지만, 민형은 정우의 예상대로 단호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결혼하고 언제나 민형은 정우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편이었지만 그 결과가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특히 아이들과 관련한 일에서는 더 그랬다. 민형은 자신이 직장에 밤낮없이 붙어 있어도 결코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가 정이 헤프고 씀씀이가 헤픈 정우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몇백만 원에 가까운 유아 전집세트와 교구가 그랬고, 분수에 안 맞는 suv 자동차, 새 아파트도 역시 정우의 뜻이었다. 민형은 보란 듯이 몸집을 키워가는 은행 이자를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 밤, 정우는 그날 있었던 일들이 소용돌이쳐서 자꾸만 잠에서 깼다. 낯선 생명체 하나가 집안에 들어왔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신경 쓰였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정우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정우에게 몸을 비비며 등을 동그랗게 말았다. 고양이 식의 친근감 표현인 것 같았다. ‘갸르릉 갸르릉’ 고양이 몸에서 희한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 정우가 읽어주던 그림책에서 글자로 본 소리였다. 정우는 그 소리를 실제로 들을 날이 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정우가 사료 몇 개를 손바닥에 올려놓자 고양이는 천천히 손바닥을 탐색하다가 받아먹었다. 정우는 고양이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몇 컷 담았다.

정우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며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대학 동기를 떠올렸다. 정우는 가끔 그녀와 고양이들을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어디서나 고양이가 자식이라도 되는 양 물고 빨았다. 정우의 연락에 그녀는 반색했다.

“그런 걸 간택이라고 한다. 네가 고양이한테 선택받은 거야, 축하해. 그렇게 사람 손을 탄 고양이들이 있어요. 아마 주변에서 그 고양이를 챙겨주던 사람이 있었을 거야. 그냥 키우지 그래? 나도 애들 보호소에서 데려왔잖아. 집사 중에 길고양이가 따라와서 키웠다는 사람이 많아. 걔들도 살기 위해서 어디 만만한 사람 없나 찾아다니거든. 순하고 정 많은 사람 알아본 거지 걔가. 흐흐”

묘하게 설득력있는 말이었다. 정우는 절대로 그런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정우는 동물병원을 검색했다. 아이들이 더 정이 들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건강검진을 해서 분양을 해야했다. 작은 동네임에도 동물병원은 세 개나 있었다. 어쨌든 고양이를 맡은 기간 내에 최대한의 교육적인 효과를 맛봐야 했다. 아이들에게 동물병원 내방 체험은 돈 주고도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병원 안에는 수수하다 못해 꾀죄죄한 차림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반려동물을 데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 두 명을 대동하고 캐리어도 없이 커다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정우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는 순서대로 의사를 만나러 들어가는 그들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며,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국 자신의 것을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닐까를 잠시 생각했다.

길고양이를 구조했다는 말에 “큰일 하셨네요”라고 말하는 젊은 수의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다.

“고양이는 한 살 정도 된 것 같고, 수컷이고, 건강한 것 같습니다. 우선 치아가 모두 깨끗하고 귓속도 깨끗하고 털도 깨끗하고 외관상으로 봤을 때 문제는 없습니다.”

고양이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훑던 의사가 말했다.

“근데 사람을 이렇게 잘 따르는 길고양이도 있나요?”

정우가 물었다. 괜히 집 나온 고양이를 주인도 찾아보지 않고 오지랖을 떠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요. 이렇게까지 순하지는 않은데, 자세히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의사는 고양이를 도로 처치실로 데려갔다.

“제가 보니까 몸에 칩도 없고, 중성화 수술도 안 되어 있고, 여기 발톱 하나가 의심스럽기는 한데, 뭐 자연적으로 발톱도 빠지고 하니까요.”

금세 나온 의사가 깨끗하게 잘려나간 고양이 발톱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정우는 추운 날 고양이를 구조했다는 자부심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곧 십만 원 가까이 나온 영수증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실제로 어딘가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다급해진 정우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먼저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에 반응했고, 그다음엔 길고양이를 집에 들인 정우의 용기에 감탄했으며, 마지막에는 이 땅의 무수한 길고양이에 대한 동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선뜻 고양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정우는 길고양이 협회장에게도 사진과 글을 보냈다. 곧장 답장이 날아왔다. ‘애쓰셨어요. 저도 이제 적극적으로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정우는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우는 깨끗해진 자기 얼굴을 거울로 다시 확인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글을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나자 정우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고양이는 거실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채는 고양이를 마치 자기 고양이인 양 친구들에게 소개했고, 하교 후 고양이를 보기 위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채는 고양이와 단둘이 집에 있겠다고 할 정도로 고양이를 챙겼다. 정우는 이쯤 되면 그냥 고양이를 키워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민형의 완강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놈의 털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고양이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고 목욕도 자주 할 필요가 없는 깨끗한 동물이었지만, 털이 문제였다. 털이 빠져도 너무 빠졌다. 민형은 무관심한 척했다가 아이들이 자는 밤이 되면 고양이를 쉼 없이 관찰했다. 정우는 민형도 역시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가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은데, 유효한가요?’ 고양이를 데려온지 정확히 2주가 지나고, 처음으로 맘카페에 댓글이 달렸다. 정우는 막상 고양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머뭇거렸다. 그새 고양이와 정이 든 아이들이 문제였다. 앞으로 아이들이 얌전한 고양이와 십 년 이상을 살 기회가 이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여보, 자기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아는데, 고양이 건강하다고 하니까 그냥 우리가 데리고 있을까? 정 키우다가 안 될 것 같으면 윤이 돌봄 선생님께 보내면 되잖아. 그때 다시 입양을 알아봐도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놔도 되고. 당분간만이라도 키워보면 어때?”

민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르겠다. 대신, 고양이 똥은 네가 치워야 한다. 햄스터처럼 방치하면 아빠는 바로 내보낼 거야.”

민형은 채에게 말하며 웃었다. 고양이가 온 뒤로 처음 보는 환한 미소였다. 결국 민형은 또 지고 말았고, 그런 점이야말로 정우가 제일 좋아하는 민형의 장점이었다.

“야호! 야호! 라떼야. 라떼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고양이와 사냥놀이를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이미 고양이와 친해져서 다른 집에 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정우는 카페에 글을 남겼다.

‘아닙니다. 구조하신 분이 키우는 게 제일 좋죠. 잘하셨어요. 앞으로도 종종 소식 올려주세요.’

답글을 보며 정우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다 하나같이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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