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아니다

(연작소설) 얌전한 고양이와 함께 삽니다_4

by 소란

정우는 커튼을 열어젖혔다. 가로등이 환한 아파트 앞마당에는 여전히 눈이 휘날리고 있어 마치 스노볼 속 세상 같았다. 그곳에 민형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우는 민형의 뒷모습을 좇으면서도 속으로는 아이들을 설득할 말을 찾고 있었다. 제발. 어둠 속으로 민형이 사라졌다.

한참 만에 돌아온 민형은 빈손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선 채로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정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새 거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려놓은 고양이 그림이 가득 붙어있었다. 눈이 하나인 고양이, 식빵 고양이, 체크무늬 고양이, 다리에 리본을 단 고양이, 정우는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았다.

아무 말 없이 창밖만을 주시하던 민형은 그 뒤로 두 번을 더 밖으로 나갔지만 허탕이었다. 정우가 이미 체념의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쯤 민형이 ‘엇’하며 다시 현관 밖으로 튀어 나갔다. 정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민형이 드디어 고양이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정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민형이 고양이를 정말로 안고 들어온다면, 다시는 고양이를 내보내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거짓말처럼 민형이 고양이를 안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후회되네.”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의 민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 만에 웃는 얼굴인지 모른다고 정우는 생각했다.

“나는 한번 버렸다, 당신이 주워 온 거다.”

정우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2주라는 기간은 포유류의 상처가 회복되기에 충분한 시간인가 보았다. 고양이는 수술하고 정확히 2주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집안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양 식탁 위로도 피아노 위로도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남편은 캣타워를 사줘야 하나 혼잣말을 했고, 옆에 있던 정우는 안 된다고 빽 소리를 질렀다. 더는 고양이에게는 한 푼도 더 지출하고 싶지 않았다.


정우가 드디어 길고양이 협회장과 만나기로 한 날은 중성화 수술비를 지원받는다는 명목이었다. 정우는 역시 두 아이와 함께였다. 동물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마침표를 찍게 될 소중한 체험이 될 터였다.

회장은 정우가 상상하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흰머리가 성성했고 얼굴 군데군데에 부스럼과 검버섯이 피어 있어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 같았다. 그녀의 손은 유튜브 수의사처럼 성한 곳이 없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세상에 그렇게 비싼 수술까지 시켜주시고 감사합니다. 라떼라고 했죠? 라떼가 참 복이 많네요.”

회장은 말할 때마다 자동차 흔들이 인형처럼 고개를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강단이 있었다. 그녀는 격양된 톤으로 중성화 수술 지원 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실 바깥에 있는 고양이들도 다 잡아다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못하고…….”

회장은 유튜브에서 자주 나왔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고양이의 씨를 다 말리는 게 아닌가를 정우가 생각하는 사이에 회장은 보호소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 사진을 보여 주었다. 협회 사이트에는 고양이의 프로필이 잘 정리돼 있었다. 정우는 색깔도 모습도 모두 조금씩 다르게 생긴 게 새삼 신기했다.

“여기 꽃이 그려져 있잖아요. 국화가 표시된 아이들은 모두 다 안락사된 애들이에요.”

회장은 곧 울 것처럼 말했다.

“안락사를 어떻게 시키는 줄 아세요?”

“주사약으로…….”

정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뇨, 약값도 아까워서 다 굶겨 죽인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런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해요.”

회장의 절규 비슷한 말에 놀란 건 정우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 엄마를 쳐다봤다. 회장은 정우에게 넌지시 말했다.

“옛날부터 그런 얘기가 있어요. 고양이를 안 키우는 사람은 있어도, 한 마리 키우는 사람은 없다고…….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생기면 라떼도 더는 밤에 울지 않을 거예요.”

채는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우를 졸랐다.

“엄마, 우리 라떼 친구도 데려오자.”

순간적으로 정우는 고양이보호소에 당장 가겠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어느새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했다. 고양이는 정우가 창문을 열어놓으면 조용히 방충망 바깥 풍경을 관찰했다. 바깥은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기에 딱 적당해 보였다. 이제 정우가 현관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고양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고양이에게 정이 든 아이들 때문이었고, 고양이에게 희생하고 투자한 본전 생각이 나서였다.

유튜브 미녀 수의사의 말에 의하면 고양이는 창 너머의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는데 그게 꼭 바깥에 나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냥 재미로 본다는 것인데, 정우는 이제 유튜브 수의사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이렇답니다’라는 말은 순전히 통계치였고, 이 고양이는 이 고양이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었다. 고양이들에게 바깥세상이란 전쟁터라는 수의사의 말이 맞기를 바랄 수밖에.

뻣뻣했던 고양이 털에서는 점점 윤기가 흘렀고 고양이는 이제 밤에 울지 않았다. 정우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기미를 뺀 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우는 자기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옅게 웃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책방 친구였다.

“여보세요?”

“잘 있었지? 라떼는 여전히 귀엽고?”

책방 친구가 다정하게 물었다.

“암요.”

“정우야, 근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응, 말해.”

정우는 무방비 상태로 대답했다.

“어제 우리 책방 앞 슈퍼 지붕으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떨어졌어. 간신히 구조해서 내가 맡았는데, 혹시 라떼 친구 안 필요하냐?”

정우는 슬쩍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고개를 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여가며 창밖만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갈수록 얼굴이 눌린 듯 넓어지며 뭔가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새 친구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휴대폰 화면 속에는 검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얼룩덜룩한 새끼 고양이가 마치 엄지공주처럼 친구의 손안에 들어있었다. 족히 다이아몬드 3캐럿은 되어 보이는 양쪽 눈망울을 불안하게 굴리며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작은 생명체. 정우는 다시 정신이 몽롱해지며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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