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by 소란

현수의 어린이집에서는 일주일 안으로 진급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3개월간 어린이집에 간신히 적응한 현수를 또다시 국공립 유치원으로 옮겨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였다. 원생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린이집은 계속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핼러윈 데이, 가족 걷기 대회, 미술 전시회 등, 키즈 뱅킹으로 이만 원, 삼만 원 잘도 빠져나가는데도 현수가 좋아하니까, 어린이집이 활기가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잘 따라가야 했다. 국공립 유치원으로 옮길 마음이 있어도 진급 신청서에 거부를 표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합격 여부도 확실치 않았지만, 현수의 진급은 3개월 후,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나 가능했다. 어린이집에 더 다니지 않겠다고 말해버리면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엄마들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년 전 나의 가족은 첫째 아이 은수가 들어갈 초등학교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방 도청이 이전하면서 만들어진 신도시였다. 남편의 가족이 모여 있는 인근의 소도시에서 신접살림을 하던 나는 늘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으로 지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그 증상이 더욱 심해졌고, 근처에 신도시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나에게 구세주와 같았다. 나는 아이들 교육을 핑계로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신생 아파트의 월세집이 싼값에 쏟아지자 곧바로 기회를 잡았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엄마들하고는 금세 친해졌다. 엄마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어렵게 아이를 낳은 경험과 자유를 잃어버린 채 한창 아이를 기르는 중이라는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지에서 이사를 와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들끼리 나이가 같다면 금상첨화였다.

놀이터 엄마들끼리도 무리가 나뉘었는데, 내가 속한 무리의 멤버는 네 명으로 정리가 됐다. 둘째 아이와 나이가 같은 세 살짜리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었다. 둘째 아이는 나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첫째이거나 외동이었지만 엄마들의 나이는 모두 엇비슷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이터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번갈아 가며 자신의 집을 놀이터로 내놓았다.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정신없이 공동육아를 하다 보면 금세 저녁이 됐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육아의 긴 터널도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현수가 곧 네 살이 되는 겨울 초입에 아이 엄마들끼리는 단체로 어린이집 상담을 예약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그 누구도 아이가 네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자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 없이 오롯한 자유를 누릴 그 시간들을 즐겁게 상상하며 어린이집으로 향했고, 현수는 놀이방에 가는 줄 알고 신이 나서 따라왔다. 걸을 때마다 현수의 통통한 볼이 돌돌 흔들렸다. 이토록 귀여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날이 오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현수를 임신하고 다섯 살짜리 은수를 처음 유치원에 보냈을 때, 은수가 담임 선생님만 졸졸 따라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를 맞은 어린이집의 원장은 피로해 보였고 목소리에는 어딘지 교태가 섞여 있었다. 원장 옆에 서있는 사람은 앞으로 아이들을 맡게 될 담임이라고 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보풀이 일어난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담임의 얼굴은 경직돼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말이 신도시지, 그 지역은 여전히 농어촌 전형이 유효한 곳이었다. 법으로는 교사 한 명당 만 2세 아이들 일곱 명을 돌보게 돼 있었는데, 때에 따라 더하기 두 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잠정적 아이들 아홉 명이 생활할 방은 내가 사는 스물네 평짜리 아파트의 가장 작은방 사이즈였다. 둘레둘레 교구가 들어섰고 가운데 원탁 테이블이 있는 그곳에서 어떻게 아홉 명의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다는 건지 의아했다.

“여기에서 아이들 아홉 명의 생활이 가능한가요?”

내가 물었다.

“어머, 어머니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들은 다 이래요. 활동 중심의 수업은 유희실에서 하니까 걱정 마세요.”

원장은 거실을 가리켰다. 유희실은 거실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연령별로 두 개씩, 여섯 개의 방마다 가득 들어찬 아이들이 모두 언제나 거실에서 자유롭게 놀 리 없었다.

“애들이 낮잠은 어디서 자요?”

엄마 중 한 명이 물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는 이 테이블을 접어요.”

원장이 탁자를 접어 교구장 옆으로 끼워 넣으며 대답했다. 엄마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최대한 멋을 낸 엄마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여기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멀리 있는 어린이집으로 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을 더 물었고, 질문을 할수록 답은 선명해졌다.

이듬해 차가 없는 엄마 한 명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엄마 세 명은 인근에 새로 개원한 ‘숲 체험’ 테마의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차를 타고 이십 분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이가 많고 인자한 인상의 원장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심신이 건강해질 거라고 말했다. ‘적응만 잘하면’이라는 단서가 신경 쓰였지만, 아파트 어린이집을 본 이력이 있는 터라 자연친화적인 넓은 공간에 마음이 갔다.

일주일의 적응 기간에는 부모가 함께 등원했는데, 아이들과 숲으로 소풍을 나온 기분이었다. 적응 기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린이집 버스에 올랐다. 현수는 내가 타지 않은 상태에서 차 문이 닫히자 겁을 먹고 울먹이기 시작했고, 옆의 아이들도 따라 울먹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원장은 능숙하게 휴대폰으로 동요를 틀었고 차량 선생님은 급히 차문을 닫았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남겨진 엄마들의 표정은 얼얼했다. 엄마들은 우는 아이들이 탄 어린이집 차량 뒤꽁무니에 대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더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들은 죄책감과 설렘이 뒤엉킨 표정으로 가까운 카페로 몰려 들어갔다. 우리는 그 카페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와 빵을 시키고 어색하게 둘러앉았다. 막상 아이들이 없는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캐러멜시럽이 뒤범벅이 된 사각형의 식빵을 포크로 찍어 입에 욱여넣었다.

다행히 현수는 어린이집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아침에 차를 탈 때는 여전히 삐죽거렸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활기를 찾는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둘째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보냈으니 나도 내 일이 하고 싶었다. 은수를 임신하기 전에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저녁엔 학원 강사로 일하며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았지만 벌어서 나를 먹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꿈이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교수도 되고 작가도 되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하고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배가 불러서까지 논문을 쓰겠다고 낑낑대는 학생이 불쌍하고 한심했는지, 지도교수는 논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석사학위를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태교에만 전념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배가 불러서까지 일하는 여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여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중한 일은 임신이라는 사건이며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순진하게도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를 나는 한동안 즐겼다.

정신이 번쩍 든 건 첫째 은수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출산 과정도 기가 막히게 놀라웠지만 태어난 이후가 더 문제였다. 갓 태어난 아이는 기저귀와 물티슈, 분유부터 계급이 나뉘었다. 산모들은 산부인과에 돈을 많이 내면 마사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조리원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누구는 시부모로부터 얼마를 받았다고, 누구는 꽃바구니 몇 개가 병실 밖에까지 늘어서 있다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제대혈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수유실에서 분주히 오갔다. 나는 그때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는 기쁨과 수술 후유증으로 살짝 정신이 나가 있었는데 어정쩡한 돈을 가진 나와 남편은 뭔가는 하고 뭔가는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그 이후로도 나는 뭔가를 수없이 선택해야 했는데, 선택의 기준이 되는 건 언제나 수중에 가진 돈이었다.

사실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남편은 아침 일곱 시 반에 출근하고 저녁 여섯 시 반에 퇴근하는 직장에 다녔고 회식이 잦았다. 회식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들어왔다. 평소 섬세하게 나의 감정을 읽어주던 남편은 술만 마시면 돌변했다. 우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집에는 꾸역꾸역 찾아왔지만,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새벽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누운 채로 오줌을 쌌다. 마치 고문을 받는 사람처럼.

나는 술에 취한 사람을 붙들고 소리를 지르고 때리고 울었다. 남편은 세상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제일 두려웠던 건 은수가 커가며 제 아빠의 술 취한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은수는 술 취한 아빠의 모습보다 아빠를 보고 절망하는 나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았다. 은수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나를 위로했다.

“엄마 괜찮아. 아침이 되면 괜찮아.”

정신이 돌아온 남편은 뭐든 시키지 않아도 척척 내 보조를 맞췄고 내 악다구니에 철저히 미안하다는 말로 응수했다. 남편의 그런 태도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남편 복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그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은수만 아니라면. 아니, 나는 남편과 돈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잘 나가는 여자는 이혼녀라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직업도 없는, 아이 딸린 서른 중반의 여자는 절대로 잘 나갈 수 없었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임신과 동시에 멈춰버린 서재에서 오래된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겼다. 어느 날 은수를 재우고 책을 읽어보겠다고 일어났을 때 나는 거울에 비친 낯선 여자를 마주했다. 눈꺼풀 위로 잔주름이 보이고 입 꼬리는 내려간, 묘하게 균형이 깨진 얼굴. 두둑한 뱃살도 만져졌다. 아이를 낳은 여자의 배.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서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며칠 후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

현수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내가 시작한 일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강사 자리였다. 강사가 강좌를 제안하면 사서가 마음에 드는 수업을 채택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보수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일을 시작하자 남편은 내심 반기는 기색이었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방과 후 수업에 돌봄까지 해야 하는 은수는 엄마가 분주해지자 덩달아 바빠졌다. 현수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한 매일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면 현수는 새끼 원숭이처럼 악착같이 내 몸에 붙어 있다가 선생님 품으로 힘없이 옮겨졌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현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나는 집을 대충 치우고 수업 준비를 했다. 늘 시간에 쫓겼다. 그제야 내가 어린이집 차량 시간에 마주치던 일하는 엄마들이 왜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녔던 건지 이해가 됐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강의 계획을 여러 군데 도서관에 보냈고, 불러주는 대로 출강을 나갔다. 강의 준비는 내 머리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쥐어 짜내는 일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 공을 들이냐에 따라 수업의 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망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툭하면 질서를 잃었다. 아이들의 주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수업이 끝나면 겨드랑이며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나타나기만 해도 깔깔대며 좋아했고 참관 교사들도 내 수업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커갈수록 나는 교사로서의 권위도 지키면서 아이들 눈높이로 낮아지는 일을 계속 연구해야 했다.

중, 고등학교 아이들은 의외로 책 이야기를 풀어주면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아이들과의 미묘한 감정싸움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초롱초롱한 몇 명의 아이들 위주로 편하게 수업을 이끌어가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했다. 내가 정교사가 아니라는 점은 큰 약점이었다. 관심과 정이 갈급한 아이들은 스치듯 왔다가는 외부 강사에게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기대를 건 건 성인반 수업이었다.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어쩌면 그중에서는 진자 말이 통하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성인반 수업 첫 시간, 도서관 강의실에는 열한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각자의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진정으로 나는 그들이 궁금했다. 어디에서 무얼 하다가 평일 낮 오전 시간에 이런 수업에 들어왔는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만들어갈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아이들처럼 쭈뼛거리며 자기소개에 소극적인 그들에게 미리 준비한 질문을 풀어냈고, 그들의 얘기를 일일이 받아 적으며 관심을 표시했다.

어렵게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는 앞으로의 수업 방향과 그동안 내가 책을 통해 어떻게 사는 힘을 얻었는지를 열심히 피력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타인을 가르치는 일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경험이었다. 수업 중에 감동을 받은 건 나였다. 강의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다들 고무된 표정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다 큰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기쁨에 차서 강의실을 나왔다.

하지만 잔뜩 멋을 부리고 간 그다음 주 수업에서 내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딱 세 명이었다. 내가 첫 시간에 기대에 차서 눈여겨본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첫날 떨리는 내 목소리를 감지한 사람, 성인반 수업이 처음이냐고 물어 나를 당황하게 했던 그 사람이 맨 첫 줄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앉아 있었다. 그 뒤로는 도서관의 모든 수업을 듣는다는 한 여성과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여성이 떨떠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의욕이 꺾인 나는 준비한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다. 그나마 나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책도 읽어오지 않았고, 시종일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노트에 뭔가를 끼적였다. 내 학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문학 수업에 들어가 교수 얘기를 무턱대고 노트에 받아 적던 날들. 그런 나를 보고 한 교수는 말했었다. 그런 쓸데없는 얘기 다 적어다 어디에 쓸 거냐고. 나 역시 그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첫 수업에도 참관했던 도서관 사서는 내가 첫 시간에 너무 많은 의욕을 부렸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시킴으로써 부담을 주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거 싫어해요. 발표하는 거. 여기 오는 분들은 책을 읽으며 힐링하고 싶은 분들인데……. 사람들이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후로도 학생은 세 명, 네 명이 전부였다.

네 번째 수업이 끝났을 때 도서관 사서가 들어와 출석부를 살폈고 고개를 저었다. 민망해진 내가 이대로 강의를 계속해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할 수 없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얼굴을 붉혔다. 때마침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동화 구연 자격증반 수강생들이 몰려나왔다. 사서가 금세 미소를 띠며 강사에게 다가가 말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최대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이후로도 수업이 혹여 폐강될까 봐 남은 사람들을 구워삶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프리랜서 강사의 가장 큰 설움은 직업은 있지만 직장이 없다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이었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을 나갔을 때, 교장 교감이 되고도 남았을 나이의 한 중학교 담당 교사는 자신이 국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작은 키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을 한 그녀에게 나의 강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동안 내 눈이 아닌 내 입을 쳐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설명을 끝내고 입 주변을 손으로 훑었다.

“그렇게 빡빡하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 아이들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아요. 편하게 하세요. 우리는 여기 오시는 강사님들 그렇게 힘들게 안 해요.”

그녀는 2학기에는 수업을 안 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줄 수도 있다는 말을 선심 쓰듯 덧붙였다. 분명히 내 편의를 봐준다는 말이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편의라는 말의 불길함은 그날 밤에 확실해졌다. 아이들을 밤늦게 재우고 있을 때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강의계획을 이 문자 보는 대로 바로 메일로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낮에 충분히 설명했고 도서관에서 전달했을 게 분명한 강의계획이었다.

나는 ‘감사하다’와 ‘죄송하다’는 말을 한 문장에 말하는 사람이 싫다. 나는 누운 채로 어떻게 답문을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냥 자버리고 문자를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이미 봤고,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메일은 보내고 답문은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할 말은 있어야 하므로 내가 할 일은 하고 한밤의 문자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메일을 확인했을 때 나는 교사가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한 번은 그녀가 수업 시간을 바꿔 달라고 했는데, 하필 점심 전에 한 시간, 점심 이후에 한 시간이라고 했다. 중간에 낀 점심 식사가 문제였다.

“선생님 점심은 어떻게 하지요? 죄송하지만 학교 식당 밥은 딱 인원을 맞춰서 준비하기 때문에 외부 강사 밥까지는 제가 뭐라고 말해드릴 수가 없네요.”

나는 또 바보처럼 ‘정말로 괜찮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토록 비굴해지는 순간이 있었어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는 건 내 자존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나는 어린이집 차량에 손을 흔들다가도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화장이 과한 건 아닌지 옷은 어울리게 입었는지를 확인했다. 아침마다 옷을 빼입고 진한 화장을 한 내게 엄마들은 예전처럼 친근하게 굴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나 역시 그녀들과 나를 구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이제 일을 하는 여자였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은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선생님 중에서도 가장 경력이 많고 인자한 분이 맡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은수의 첫 선생님이 무척 궁금했다. 신도시가 생기고 처음 만들어진 초등학교라 신입생은 삼백 명 가까이나 됐다. 잔뜩 기대하고 간 입학식에서 은수의 담임은 하필 숱 없는 머리를 한껏 띄우고, 굵은 뿔테안경으로 표독스러운 인상을 가린 할머니 선생님이 소개됐다. 교장은 그녀가 학년 주임이라고 했다. 나이가 가장 많다는 건지 가장 유능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입학 설명은 형식적이었다. 은수도 다른 아이들을 흘끔거리며 난생처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머리가 새하얀 교장은 요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자아이가 1번이고 여자아이가 2번인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식적으로 들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방과 후 돌봄 교실도 이례적으로 다 받아서 엄마들이 경력단절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학교에서 돕겠다고 했다. 이상했다. 이미 한 달 전에 은수의 돌봄 신청이 거부 됐다는 통지를 받은 터였다.

각 반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고, 나는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헤매다가 간신히 은수 반으로 찾아갔다. 은수는 나를 보자 짝꿍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말하며 키득거렸다. 그새 친해진 모양이었다. 은수 또래의 아이들 삼십 명이 질서 정연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뻐근했다. 며칠 전만 해도 조그만 유치원 교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자유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었다. 부모의 역할이 이제야 제대로 시작된 것 같았다.

은수의 담임은 웃으며 이제 다 오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출석부를 손에 든 그녀는 아이들 출석부대로 ‘누구 부모님!’하고 호명했다. 부모들은 아이처럼 자기 차례에 손을 들었다. 담임은 자신이 일 학년만 십이 년째 맡았고, 주임이 된 지는 오 년이 넘었다고 했다.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들이 너무 과민해요. 아이들은 다 알아서 잘하는데 부모들이 문제예요. 이제는 학교에 시험도 없고 성적표도 없습니다. 장난을 치다가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데 말이죠.”

담임은 말하는 내내 교실 벽이나 바닥을 쳐다봤다. 전형적으로 자기 경력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는 사람이었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눈이 아니라 주변 공간을 쳐다보며 자기 말만 하는 치들, 초등학교 6년부터 대학원 2년까지, 도합 18년 동안 수강생이었던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을 세 명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돌봄이 취소된 경위를 물었고 담임은 행사가 끝나고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담임의 전화를 받고 내가 다시 교실로 찾아갔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담임은 자리에 앉아 입학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담임은 안경 너머로 나를 힐끔 보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저기에 앉으시고, 여기 신청서 다시 써주세요.”

담임은 어느새 차가운 인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들 책상에 앉으니 무서운 선생님의 통제 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종이에는 부모가 맞벌이인지, 한 부모인지, 기초 생활수급 가정인지, 외국인 가정인지, 여러 곳에 체크할 항목이 있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서류 정리에 정신이 없는 담임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프리랜서 강사라서 건강보험증 같은 서류를 첨부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요?”

담임은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은수 어머니, 무슨 일 하시는데요?”

“아, 네 저는 인문학 강사인데요.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독서토론 수업 같은 거 하고 있어요. 매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내 입으로 내가 하는 일을 인문학 강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렸고, 독서토론 수업이라고 하니 시시하게 들렸다.

“은수가 그래서 돌봄 신청이 안 됐나 보다. 작년에도 그런 엄마 있었어요. 그 엄마가 집에서 팽팽 놀아요. 왜 다른 엄마들이 더 잘 알잖아. 그 엄마가 일하는지 노는지, 그런데 자기가 일한다고 돌봄 신청했다가 나중에 아주 개망신을 당했잖아.”

담임의 반말 반 존댓말 반인 말을 듣고 나는 기가 막혀서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 그게, 제가 일을 안 한다는 게 아니고요.”

담임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서 아예 팔짱이 꼈다.

“어머니. 여기 합당한 서류 못 내면 다 탈락해요. 그리고 돌봄 하는 애들 다 불쌍해. 그냥 하교 후에 방과 후 수업 있잖아. 그거 하나쯤 하고, 학원은 안 다녀요? 그런 거 하나 하면 되지 않을까? 은수 어머니도 매일 일하는 거 아니면 그냥 그렇게 해요. 그리고 은수 어머니가 정식으로 제대로 된 직장에 가면 그때 다시 신청해도 안 늦어요.”

마치 옆집 언니가 아는 동생에게 충고해 주는 것 같은 담임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대답을 하고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학부모와 담임의 첫 만남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나는 담임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빈 종이를 내고 돌아왔다. 잘 알겠다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까지 말하며. 돌아 나오는 길에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이 계단에 끼어 하마터면 앞으로 구를 뻔했다. 내 한심한 뒷모습을 담임이 쳐다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남편은 은수를 걱정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처음 만남으로 어떻게 다 알겠냐고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은수가 절대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남편의 방관자적 태도와 남을 먼저 배려하는 듯한 태도에 짜증이 났다. 내가 화를 내자 남편은 내가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며, 선생님을 그런 사소한 일로 고발해서 은수에게 뭐가 좋을 것 같으냐고 따졌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은수가 이제 갓 들어간 초등학교였고,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된 최적의 장소였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은수를 전학시킨다는 것도 겁이 났고, 선생님 눈 밖에 난 은수가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교장에게 이 일을 이른다고 해서 조용히 넘어가리란 보장도 없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군의 그들은 이미 몇십 년을 함께 일한 동료일 것이었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게 돼 있었다. 나의 적은 남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조용히 이 일을 덮고 지켜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어떠냐고 묻는 내 말에 은수는 천진한 얼굴로 담임이 너무 재미있다고까지 했다. 은수는 작년에 어떤 아이가 복도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앞니가 다 깨졌었다며, 선생님이 앞니 빠진 사람 흉내를 냈다고, 진짜 웃겼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재미있는 얘긴가 싶었지만 아이는 그 뒤로도 작년에 있었던, 옆 반에서 벌어진 끔찍했던 사고들을 시시 때때 얘기하며 깔깔댔다. 담임은 아이들을 단속하기 위해 지난날의 불행을 끌고 와 웃음으로 승화하는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언이었다. 나와의 첫 만남에서 담임은 자신이 엄청 위트 있다고 자부했을지 몰랐다.

은수가 학교에 다닌 지 한 달이 됐을 무렵에 학부모 상담이 시작됐다. 나는 다시 그 작은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교실에서 은수의 담임과 일대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알아야 했다. 은수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담임에 대해, 나는 남편에게 상담을 미뤘다.

그날 월차를 내고 상담을 하러 간 남편은 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집에 돌아왔다.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담임이 어땠냐는 내 질문에 남편은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담임이 그렇게 이상하진 않던데?”

남편은 다른 학부모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은수 칭찬을 하느라 상담을 길게 해 줬다고 흐뭇해했다. 내가 예상했던 남편의 태도였다. 누군가와 갈등하는 것을 최악으로 여기는 사람. 남편은 어디서나 예의가 바르고 매너가 좋았다. 그런 남편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은근히 예민한 나와 비교하며 남편 칭찬에 입을 모았다. 그들은 몰랐다. 예의도 바르고 매너도 넘치고 자상하고 순한 사람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편은 내가 화가 난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어떻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더라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어? 그럼 내가 첫 만남 때 오해라도 했다는 거야? 내가 사람을 또 잘못 봤다고 말해주고 싶은 거야?”

남편은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곧 현수의 어린이집도 상담 기간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일일이 방문 상담과 전화 상담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바빠서 정신도 없었지만, 굳이 낮에 방문 상담을 하면 어린이집에서조차 나를 집에서 노는 여자로 착각할 것 같아서 나는 전화 상담을 요구했다.

예의 상냥한 태도의 어린이집 선생님은 극존칭을 썼다. 말끝마다 ‘네 어머니’라며 현수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내게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저는 사실 워킹맘이라서 전적으로 선생님께 많은 걸 의지하고 있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맡겨서 송구스럽네요. 어린이집 운영에 최대한 협조할게요. 우리 현수 잘 좀 부탁드려요.”

어린이집 선생님을 최대한 존중하고 믿어야 했다. 선생님에게 나는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는 현명한 엄마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금방 간파해 냈다.

“어머니, 능력 있어 보여요. 프리랜서 강사라고요? 멋지세요. 저도 아이들 둘이 있어요. 이제 다 컸지만요. 저는 애들 중학교 갈 때까지는 집에서 아이들만 돌봤어요. 저는 아이 어릴 때는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냥 애들 보면서 이것저것 자격증 공부했던 것 같아요. 보육교사 공부도 그때 한 거예요. 어쩔 수 없죠. 제가 잘할게요.”

전화를 끊고 뭔가가 찜찜했다. 단정한 생머리에 한 듯 안 한 듯 화장을 세련되게 한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어린이집 수첩의 이야기들은 모두 바쁜 엄마를 훈계하는 내용이었다. 무언가를 내가 잊었거나 못 챙겨서 현수가 힘들었다는 얘기(준비물을 잘 챙기지 않으면 현수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 어떤 엄마가 보내줬다는 간식을 현수가 잘 먹었다는 얘기(아이가 잘 먹으니 간식 좀 보내라는 얘기),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지 말라는 얘기(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얘기)를 적은 수첩의 내용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선생님은 문자 끝에도 그 흔한 이모티콘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의 내용은 늘 건조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줏대 없이 엄마를 혼란에 빠뜨리는 선생님보다는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가는 전문가다운 선생님이 나았다. 나는 그 이후로 더 전적으로 ‘선생님을 믿는다.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을 수첩에 적었다. 내가 더 자세를 낮출수록 내가 더 깍듯할수록 수첩의 답글도 정성스러웠다.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강의가 늦게 끝나는 날이었고, 나는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있었다. 현수가 탄 어린이집 버스가 오려면 삼십 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마트의 냉동식품 판매대를 기웃거리는 중에 현수와 같은 반 아이 엄마와 마주쳤다. 아이 엄마는 반색하며 방금 지나간 차량에 현수가 타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 엄마는 현수가 차에서 한참 나를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현수가 울자 차가 급히 떠났다고 했다. 선생님 전화를 받은 것 아니었냐는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마트에서 뛰어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늘 선생님이 헷갈릴까 봐 강조해서 말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흥분을 한 건 오로지 나였다. 선생님은 자신이 요일을 착각했다고 했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고 묻자 선생님은 지금 막 하려는 참이라고 했다. 나는 흥분해서 현수가 차에서 얼마나 놀랐겠냐고 다그쳤다.

“어머니 일과까지 저희가 다 파악하기 어렵고요. 현수를 그 시간에 받을 수 있었다는 말씀이세요?”

전화상으로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어떤 사과를 받고 싶은지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놀란 아이를 당장 데리고 와야 했다. 현수가 한 시간 가까이 차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생각을 하자 운전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현수는 어린이집 현관에서 신발을 신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아이를 배웅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선생님을 몰아붙였다.

“선생님은 제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전혀 모르시는 것 같네요. 아니 어떻게 아이 차량 시간을 잘못 알고, 실수를 했으면 부모한테 바로 전화해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우는 애를 어떻게 어린이집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올 생각을 하셨어요?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처음으로 내 민낯을 본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제가 실수했네요. 그런데요. 어머니. 그 시간에 아이를 받을 수는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은 나를 놀리고 있었다. 내가 그 시간에 아이를 받을 수 있었는데도 내 시간을 더 갖기 위해 놀고 있는 엄마,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놓고 팽팽 노는 엄마. 참을 수 없었다.

“아니요. 선생님. 제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늦게 끝난다고 몇 번을 말해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다른 엄마한테 부탁해서라도 현수를 받았을 거고, 연락만 주셨으면 차량을 따라가서 다른 곳에서라도 아이를 픽업할 수 있었을 거라고요!”

선생님도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 어머니 스케줄을 다 알아요. 실수했지만 말씀드리려고 했고, 아이가 우니까 엄마가 없으니까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온 것뿐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이게 별일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아까부터 하도 화를 내셔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쨌든 제가 실수했네요.”

선생님은 그 말을 하며 어느새 차분해진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실수했다고 인정하는데도 나는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제야 옆에서 우울하게 우리를 지켜보는 현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 가방을 받아 들고, 그 와중에도 현수에게 인사를 시켰다.

어린이집을 나오는데 뒤에서 미닫이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끝이었다. 죄송하다는 말도 공손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내 아이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원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원장은 어떻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다 있냐며, 자기도 왜 현수가 차량을 잘못 탔고 선생님이 부모에게 전화 한 통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어린이집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원장은 붙잡지 않았다. 대신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어머니, 저도 힘들어요. 크게 마음먹고 어린이집을 열었는데 정작 이 어린이집을 차려서 저는 빚더미에 앉았답니다.”

진짜 끝이었다. 나는 곧장 새로운 어린이집을 탐문했다.

현수의 새로운 어린이집은 신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그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던 어린이집이었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모두 엄마처럼 잘해줘서, 일하는 엄마들이 신경 쓰지 않게 알아서 척척 해줘서, 일찍이 자신의 아이 둘도 믿고 맡겼다고 말해준 건 아파트 상가 카페 사장이었다. 그 사장의 자녀들은 벌써 중학생이었다. 어린이집은 옆보다 위로 높은 삼 층짜리 건물이었다. 온통 분홍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그나마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촌스럽다는 인상을 줬다. 오래 근무한 선생님들이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원장의 말이 절박한 내게 와닿았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 것 같던 현수가 어린이집 차량 시간만 되면 딴청을 부렸다. 현수가 아직 놀이가 덜 끝났다며 막무가내로 버티는 날이 많아지자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은수의 긴 머리를 묶다가, 한 손으로는 현수의 입에 계란 비빔밥을 밀어 넣었다.

“어린이집 싫어, 집에서 놀 거야”

텔레비전만 틀어놓으면 밥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현수였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말하며 거의 뛰다시피 방을 오가던 내가 그날따라 유난히 삐죽이는 현수와 처음 눈을 맞췄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게 될까 봐, 어린이집이 싫은 이유를 현수가 또박또박 말할까 봐 나는 겁을 내고 있었다.

“선생님이 화가 났어. 무서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왜 화를 낼까? 엄마도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화낼 때가 있잖아. 선생님도 현수가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바지가 안 내려가서 화났어. 내가 양말을 못 벗어서 화났어. 선생님이”

그때쯤 현수는 바지에 오줌을 싸서 여벌옷으로 갈아입고 올 때가 많았다. 양말을 신을 때마다 자기가 해보겠다며 그 앙증맞은 손으로 낑낑대기도 했다. 현수가 이제는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할 때라고 선생님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러 아이 중 유독 손이 많이 가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아이가 반가울 리 없었다.

며칠 후에도 현수는 말했다.

“무서운 선생님이 또 화났어. 세모난 선생님이 왜 자꾸자꾸 화를 내?”

세모난 선생님이라면 담임을 말하는 게 확실했다. 짧은 단발머리를 파마한 현수의 담임은 얼핏 보면 스핑크스가 떠올랐다. 덩치가 크고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이 현수에게 무서울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밥을 흘렸다는 이유였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날 아침 차량을 담당하는 원감에게 내가 물었다.

“원감 선생님, 저희 아이가 자꾸 선생님이 무섭다고 해요.”

원감은 활짝 웃으며 엄마들을 응대하다가 내 말을 듣자 표정이 변했다.

“어머님, 현수가 많이 정적이에요. 말도 잘하고. 어머님이 아시다시피 현수가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많이 여성스럽잖아요.”

원감은 이 바닥에서 이십 년 가까이 부모들을 상대했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아이가 문제라는 식의 대답을 듣다니, 아이가 정적인 것도 말이 많은 것도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원감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최대한 화를 누르고 이성적으로 물었다.

“그래서요? 현수가 선생님을 힘들게 하나요? 단체 생활에 문제가 될 만큼 눈에 띄나요?”

“좀 그래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애들이 이걸 가지고 놀다가도 빨리 정리하고 다른 활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수는 그게 잘 안 돼요. 현수가 놀이터에선 잘 놀아요? 혁이는 안 그래요. 어머니도 아시죠? 혁이는 아이고, 혁이는 달리기도 잘하고 아주, 아이고, 어머니도 아시죠?”

혁이는 차량을 같이 타는 다른 반 친구였다. 어린이집 차를 보내고 나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담임에게 알림장을 썼다. 괜히 어설프게 불만을 제기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꼴이었다. 분하고 억울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나는 현수가 담임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다는 말은 쏙 빼고 썼다.

‘우리 현수가 단체생활에서 눈에 띌 정도로 잘못하는 게 있나요? 오늘 원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쓴 말을 온종일 회자하며 그들끼리 수군댈 것을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담임은 원감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현수의 더 멋진 모습을 기대한다는 뜻이었다고, 앞으로 더 많이 신경 쓰겠다고 했다. 이제 겨우 네 살짜리 아이가 뭘 얼마나 더 잘해야 멋져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결국 들을 수 있는 최선의 말은 ‘더 많이 신경 쓰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날, 마침내 나는 현수의 진급 신청서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가방에 넣었다. 어차피 시간이 남아 있었고 아이들이 남아도는 신도시에서 국공립 유치원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수를 등원시키기 위해 차를 출발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어린이집 번호였다.

“지금 어디세요? 오늘 소풍인데 현수가 안 와서요.”

소풍이라니, 차를 돌리고 싶었지만, 다음 날은 중요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 수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수업은 엉망이 될 터였다. 나는 다행히 소풍 출발 직전에 현수를 버스에 태웠다. 준비물은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지만, 원감은 다른 아이들 간식을 나눠 먹이겠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현수의 담임은 보이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안 보이시네요?”

“아, 선생님은 오늘 드디어 출산을 해서 병원에 계세요. 예정일보다 아이가 빨리 나와서 아직 공지에는 못 올렸어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담임의 앞치마 사이로 배가 유난히 나왔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게 임신 때문이었다니 말이 안 됐다. 어쨌든 축하할 일이었다.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니. 그런데 왜 나는 몰랐을까. 어린이집 담임이 임신했다는 걸 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있는 걸까? 나는 얼떨결에 새로 오셨다는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 버스에 탄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바뀌는 일은 중대한 일이었다. 만삭이 되도록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돌본 담임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무서운 선생님이 이제 없어서 좋아해야 할 일인가? 원감의 전략이었을까? 부모들에게는 쉬쉬하고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는 버텨보자는 심보? 엄연히 일에서 사생활은 존중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 일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아직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 현수가 그토록 무섭다고 말하던 세모난 선생님. 이제 뭔가가 짐작됐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소풍날이었다.

현수의 하루는, 점심밥은 오롯이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달려있었다. 곧 원감에게 문자가 왔다. 현수가 버스 안에서 활짝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국공립 유치원에 붙는다고 하더라도 현수가 유치원에 가려면 아직 석 달이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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