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awurbreath Sep 25. 2023

2# 본격 세계여행 준비

백수의 삶이 시작되었다. ‘여보, 이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말한다.

시골의 전세 아파트에서 우리는 분주하지 않은 아침을 맞이한다. 커피 한잔도 여유롭게 내려마실 시간도 없이 정시없이 출근을 준비하던 게 꿈만 같다. 집안에 커피향이 가득하다. 로마에 가서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나를 상상해본다.


체크리스트를 편다. 여행을 떠날 때 들 20L짜리 배낭은 미리 사두었다. 빨간색과 녹색. 우리의 여행도 크리스마스 같을까? 상상하며 비키니, 티셔츠 3장, 바지 2장, 속옷, 양말, 비상약 등등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적어놓은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짐을 챙긴다. 배낭을 싸서 매보고 줄일 수 있는 짐은 빼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싸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정도는 챙겨가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다 들고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가서 그림도 그리고 좋아하는 사진도 맘껏 찍어야 하고, 블로그도 남겨야 하니까 노트북도 챙기고 스쿠버 다이빙도 해야하니까 마스크랑 스노클까지 챙겼다. 또 여름나라에서 놀다가 바로 겨울나라로 떠나야 하니까 반팔부터 긴팔에 롱패딩까지 챙겼다. 배낭이 족히 17키로가 넘어간다. 뒤로 매는 배낭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바로 카메라를 꺼내거나 지갑이나 노트 등을 꺼낼 수 있게 앞으로 매는 보조가방도 함께 매야한다.

'아, 무겁다. 무겁다. 진짜 무겁다' 그런데 


재밌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백수생활이 이렇게 좋은 거였나 싶었다. 초,중,고,대학교 까지 남들 다 하는대로 마치고 또 취직까지 바로 되서 K장녀의 착실한 삶을 차근차근 밞아왔다. 그렇게 참고 견디면 즐거운 삶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교를 오면서 시작된 서울살이는 고통 그 자체였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열등감. 

돈은 항상 부족하고 살던 상가건물 자취방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왔다. 그냥 '인생 뭐 있어?' 하며 도서관에서 빌려읽던 책에 의지해 4년 잘 버티고 취직해서도 결혼까지 하며 또 잘 참고 버텼지만

도저히 그러고 싶지가 않아졌다.


더이상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빨리 잠들고 알람을 맞추는 삶을 살기가 싫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1 남편이랑 같이 퇴사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