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온도 1. 여백 설원

by 소요 김영돈

꽃송이 같은 눈, 두런거리며 내린다. 어깨를 부대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논 밭 산자락, 화살나무 백송 수국 느티나무 삼나무 할 것 없이 모두가 여백, 백색의 송이눈이다. 눈송이는 점점 더 굵어지고 엉킨 실타래는 지상에 켜켜이 쌓이는데 눈부신 백색의 솜털로 무엇을 짤까요. 떠나간 첫사랑 목도리를 짤까요, 못다 한 사랑 벙어리장갑을 짤까요.


지상에 내린 실타래가 켜켜이 쌓여 길을 덮으면 내 갈 곳은 비로소 여백이 됩니다.

갈색 눈보라 너머에 초록이 올까요? 노랑연두 주황이 올까요.

아니, 어느덧 깨어 생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당신은 아실는지요.

250여 년 전의 괴테가 이 소리를 들을까요. 60년을 쓰고 죽음을 앞두고 다시 한번 꺼내서 고쳐 쓴 파우스트는 구원받았을까요. 뒤꽁무니라도 따라잡겠다고 다짐한 촌장 전영애의 함박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가 붙여준 여백(如白)이 가장 여백다운 날. ‘일찍부터 하는 대로 살아보고, 그래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노학자의 아버지는 저 눈발을 볼 수 있을까. 우전(友田)도 시정(詩亭)도 모두 설원인데, 눈발을 바라보는 노학자(전영애)의 환대가 눈 속으로 퍼져 하늘로 올라간다.


눈보라의 실타래로는 아무것도 짜지 마세요.

단지, 하얀 습자지에 먹물을 뿌리듯, 당신의 숨결 손길, 온기 조금 전해주세요.

2023.12.30 오늘, 지금, 여기!

여백은 설원입니다.


오늘 붓과 먹물은 당신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