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온도 3. 겨울, 성호호수

by 소요 김영돈

침묵의 아우성이 멈추었다. 이삭을 찾아 나는 참새 소리만 분주하다. 노랑 분홍 빨강 연꽃의 풍장은 끝났다. 눈무늬 말무늬를 보고 떠난 사람들은, 귀를 닫고 모두 귀가했다. 성호 호수에는 갈색 묘지석이 즐비하다.

싸락눈이 병풍속 그림처럼 내려 들판을 앞세운다. 호수를 따라 멕타스퀘이어 열매가 굴러다닌다. 도토리인가, 아니 개암을 닮았다. 흔들 그네를 구르던 연인의 팬 발자국 위로 눈이 쌓인다. 이 적요를 남기고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발자국은 모두 호수 입구에서 돌아섰다. 마지막 연이 툭 떨어질 즈음 서리가 내렸을 것이다. 서리는 연의 입을 틀어막고 진흙과 함께 꿀꺽 말을 삼켰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뿌리로 연결된 형제자매 친구들까지 모두 고꾸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뿌리가 움찔하는 순간, 논두렁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허기진 족제비와 쥐다. 호숫가에 쌓인 멕타스퀘이어 잎에 빨갛고 따끈한 피가 묻어있다. 호수로 가는 다리 위에 세상 끝으로 도망쳐 나온 연인이 부둥켜안고 있다. 싸락눈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소록소록 떨어진다.

'연을 애도할까요'

'침묵을 넘는 애도가 있을까'

'봄은 어떤 모습일까요'

'멀미가 나겠지''

'너무 아름다워요'

'추억 때문인가?'

'따듯해요'

'여행의 종착지는 집이니까'

'허기가 져요'

'시래기 찜을 먹어봐요'

'내 구미를 어떻게?'

'볕, 바람, 세월, 달, 별에 연의 계절을 잘 살아냈으니'

'살아냈다는 건 어떻게'

'긴 침묵사이 시선, 말본새, 기도, 기도로 사는 거니까'

'그걸 알아요?'

'저수지가 많은 마을이니까'

'저수지?'

'겨울 저수지에 다들 모여있어요. 애도를 거부하는 침묵의 수다'

'...... '

'여행의 시작과 끝이 거기 있거든'


들판 한가득 들리는 침묵의 아우성이, 목쇤 바람으로 눈보라를 몰고 온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전하지 못한 말들은 진흙 깊숙이 파고들어 격자무늬로 성긴다. 두루미 한쌍이 들판을 지나 이쪽으로 날아온다.


눈발이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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