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KS Jul 04. 2021

[독서 기록] 공간과 헤게모니

유현준의 <공간의 미래>를 읽고


임대라도 '내 집'이란 공간을 갖게 되면서부터, '공간' 자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어떻게 공간을 채울지, 어떤 공간이 내게 유의미한지 고민했다. 한참 동안 혼자 생각하고 난 후 <공간의 미래>를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내 공간이 변화했다. '내 집'은 원래 일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책상을 따로 사지 않았다. 상이라곤 밥상밖에 없었고 의자라곤 휴식용 리클라이너밖에 없었다. 그렇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업무공간을 사무실에서 방으로 옮겨야만 했다. 독서대로 노트북을 높이 올려도 맞지 않는 시선, 중앙이 자꾸 가라앉는 유일한 상, 침실이자 식당이자 업무공간까지 되어버린 10평이 되지 않는 방 크기.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그때 나는 정말 일하기가 힘들었다. 등 뒤로 채 마르지 않은 빨래가 널려져 있었다. 한때 나를 방어하는 방공호라고 생각되었던 공간이 나를 힘들게 하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게 참 힘들었다. 나는 웬만하면 사무실에 앉아서 일한다. 당직으로 한 명만 나와야 한다면 내가 되고 싶다. 책상은 구비되었지만 여전히 의자 대신 화장대에 앉아서 타이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미래>는 나처럼 원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공간부터 여러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용의 공간까지 수많은 공간을 다루고 있다. 총평을 하자면, 나는 이 책이 공간의 '미래'를 담고 있기보다는 '권력(헤게모니)'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그가 말하는 미래는 너무 추상적이고 먼 이야기로 들렸고, 그가 말하는 현재는 너무 뼈아프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공간은 권력의 산물이다'라는 것이다.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1 원칙'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중에서




이 공간을 방문한 방송 프로그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율 좌석제를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반반 정도 나왔다.
의외의 결과는 말단사원 중에서도 자율좌석제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매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 매일 앉는 것은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4장 출근은 계속할 것인가>



주택에서 정부 소유의 임대 주택 비중이 커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임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럴수록 정치가의 힘이 커지게 된다.
전체 주택 중에서 임대 주택의 비중이 커질수록 정치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주가 된다.
-<9장 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주거 공간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법규로는 변혁이 불가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는 지금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히 변화의 물결은 흐르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생각도 하고 있다.






개인적 감상을 슬펐으나 이 책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건축가의 것으로만 느껴지는 건축 이론을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유현준 작가의 위트가 살짝살짝 묻어난다. 문장이 참 좋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림이나 도면이 묻히고, 글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책은 360쪽으로 적은 페이지는 아니나, 여백이나 그림 배치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게 구성하였다.

여는 글에서 스크랩해놓은 부분을 공유한다. 유현준 작가가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 부분이다. 공간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의 도시는 과거 아파트 발코니에 널린 빨래를 통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도시의 표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발코니 확장으로 이 모든 표정들은 반사되는 유리창 뒤편으로
숨어 버리게 되었고,
도시의 모습은 삭막해졌다.
마스크는 마치 발코니에 달린
알루미늄 새시 유리창처럼
모든 사람의 표정을 지워 버렸다.
-<여는 글>에서
작가의 이전글 [독서기록] 희망의 BLUE로 풍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