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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r 18. 2022

혼자서도 밥은 잘 먹습니다만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을 읽고

완연한 재택근무자가 된 지는 오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 밥을 먹게 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으므로, 점심은 각자 해결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혼자 출근을 한 날이나 점심을 먹는 날에는 배달을 시켜먹었다. 마감 때처럼 모두가 점심까지 함께하는 날에는 김밥을 사와서 자기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같은 메뉴를 공유하지만 식사 시간은 공유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독자적인 시간에 만족했지만, 나는 꽤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탓에 금세 외로워했다.




직장 생활의 꽃 1위는 월급,
 2위는 점심시간인 만큼
점심시간만 되면 회사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했다.
한 시간 가지고는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꾸역꾸역 그렇게 했다.
그것도 다 같이 몰려가는 걸 선호했다. 종일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하고 밥까지 같이 먹고 싶어요? 진심이에요?

  _김신회, <구내식당 덕후>




그러니까요.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누군가와의 식사를, 그것도 회사 사람들과의 식사를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외로움이란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게 하는 무서운 감정이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 식사는 업무량에 따라 달라진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면, 11시쯤 배달의 민족을 켜고 단골집에 주문을 한다. 그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집 앞에 밥이 오면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바쁘지 않은 때라면 되도록 밥을 해먹었다. 엄마의 정성이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 맵찔이인 나는 식당에서 파는 빨간 메뉴를 거의 먹을 수 없다. 매콤한 게 당긴다면 직접 요리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밥 차리기에는 진심이라, 쟁반 한 가득 국과 반찬을 늘어놓아야 만족했다. 밥상의 절반 정도 되는 쟁반을 꽉 채운 후에 사진을 찍곤 한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 “오늘은 이렇게 먹습니다” 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나에 대한 걱정들이 커서, 밥은 잘 먹고 있다고 알리는 게 버릇이 됐다.




이 습관 때문에 바른 식사를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식사는 예뻐야 했고 균형적인 영양이 돋보여야 했다. ‘예쁘다’는 것은 심미적 기능 외에도 내가 나를 대접해준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예쁜 식사를 차리면서 만족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 일도 살짝 시들해질 때가 있다. 마침 그럴 때였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을 구매했을 때가 말이다. 예쁜 식사를 차릴 때처럼 내적 만족감을 높이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점심시간에 시작해서 밤까지 읽어서 하룻밤 만에 다 읽어버렸다. 신기했던 건 주제가 ‘점심시간’에 포괄된 모든 것이었다는 것이다. ‘식사’에 한정되지 않아서 좋았다. 아무래도 회사원으로 오랜 기간을 보내서인지, 프리랜서들의 점심시간보다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공감됐다. 세상 사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한 끼 식사를 통해 느낀다.



점심이라는 산은 어쩌면 나에게만
해발 8000미터의 가파른 산이고 선배들에겐
동네의 야트막한 언덕쯤일지도 몰랐다.
한참 고개를 처박고 음식에 집중하다 앞을 보면 선배는 이미 식사를 다 끝낸 뒤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거나,
눈은 TV에 고정하면서도 귀로 소리를 듣지는 않는 모양새로 나를 기다린다.
눈이 마주치자 선배는 나에게 천천히 먹으라며 웃어준다.
그런데 선배, 계산을 마치고 믹스커피까지
탄 뒤에 천천히 나오라고,
본인은 밖에 있겠다고 하면 제가 어찌하나요. 선배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눈물로 남은 국밥 원샷!

_원도, <가파른 맛>



책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외롭지 않았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 슬펐다. 더 이상 정을 붙이면, 결국 힘든 사람은 나니까. 그리고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한 지 너무도 오래됐다. 무던해졌다고 여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단단한 고독을 만들었다. 그 마음을 활자로 함께하는 점심식사를 통해 조금은 녹여낸 것 같다. 혼자 하는 식사에 외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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