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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어제 Aug 09. 2021

아이가 아빠의 유튜브를 껐다

외할아버지가 된 나의 아빠

우리는 공동육아 준비 중

 병원 입원실에서 2박 3일, 산후조리원에서 9박 10일을 보내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출산 예정일 3주 전에 내가 친정으로 오면서 우리 부부는 연말까지 주말부부가 되기로 했다. 내년 초에는 경기도권에 집을 얻어 친정 부모님과 완전하게 합가 할 계획이다. 우리는 '공동육아'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육아에 대해 처음부터 나와 남편, 친정부모님, 우리 네 명의 마음이 모두 일치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럿이 모여 북적이는 가정을 바란 나의 남편은 결혼 전부터 친정 부모님과의 합가를 희망했고, 엄마는 합가보다는 가까이 살며 육아를 도와주시겠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스무 살 이후 십 년 이상 혼자 살았고, 그 기간만큼 일궈온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미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와 매우 많이 달라져있었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엄마, 아빠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역시 엄마의 의견과 같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옆 동 정도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공동육아와 합가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었던 건 아빠였다.

 아빠는 아이 키우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엄마가 너무 힘들어질 것이라 걱정했다. 합가가 문제가 아니라 공동육아 자체에 대해 반대했다. 하지만 출산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딸의 의지와 강남까지 왕복 세 시간 출퇴근을 하고 있는 딸 부부의 현실에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권에서 합가를 해 힘을 보태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 집 두 채를 준비하는 것보다 한 집에서 같이 살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최근 수도권의 부동산 시세가 치솟은 때문이었다. 어쨌든 맞벌이, 육아, 부동산 시세 등의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곧 한 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며 공동육아를 할 예정이다.


익숙한 아빠, 낯선 할아버지

 최근 7-8년 간 친정집에서 엄마, 아빠와 일주일 이상을 보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 만삭으로 경험한 엄마, 아빠의 일과는 아주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아빠는 아침 여섯 시쯤 일어나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출근을 한다. 아빠의 아침과 출근을 챙겨준 엄마는 잠시 책을 읽거나 TV를 본 후 집안 청소를 하고, 해가 너무 높아지기 전 산책 겸 운동을 다녀온다. 점심식사 이후 마트에 다녀오거나 은행, 시장 등 외출을 다녀와 저녁 준비를 한다. 아빠의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나면 엄마, 아빠는 TV 앞 소파에 앉아 각자의 핸드폰을 손에 쥔다. 아빠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유튜브를 보고, 엄마는 TV와 핸드폰을 번갈아가며 본다.

 내가 집으로 오며 변화한 것은 엄마의 아침 산책과 집안 청소에 동반자가 생겼고, 저녁 시간 TV 앞에서 조잘대는 방청객 하나가 늘어난 것 정도였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로만 전해 들었던 ‘심심한’ 일상을 함께 보낸 지 2주가 지나며 지루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오며 일어난 변화는 내가 왔을 때와 천지차이였다. 아이를 낳고 12일 만에 만난 아빠는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첫 손주를 품에 안은 할아버지는 달랐다. 아빠는 아이가 오는 날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내 기억으로 그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손편지(라고 하기엔 아주 짧은)를 들고 귀가했다.


 아이 이불과 모빌이 엄마, 아빠의 티테이블을 밀어내고 거실을 차지했다. 아빠는 퇴근하면 바로 씻고 나와 아이의 이불 옆에 엎드려 한참이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대답은커녕 눈 맞춤도 못하는 신생아를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의미 없는 아이의 배냇짓 웃음에도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틈이 나는 대로 아이를 안아보고 싶어 하고, 아빠의 품에 안겨서 아빠의 팔을 '쫍쫍' 소리 나게 빠는 아이를 보며 껄껄 웃는다. 공동육아를 반대했던 아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빠는 아이에게 푹 빠져버렸다. 유튜브는 켤 새도 없었다. 아이는 아빠의 유튜브를 끄게 만들었다.

 낯선 모습이었다. 아빠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날 키울 때도 그랬을까. 아빠는 줄곧 내가 태어난 다음 해 봄, 운전을 하고 가던 중 산등성이에 진달래가 핀 모습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다고 이야기했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만물이 생동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제껏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 나와 내 동생을 키울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아빠가 되었을 때는 아이를 키우며 처음 마주하는 일들에 마음이 급하고 걱정이 앞섰다면, 할아버지가 된 지금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새로이 보인다며 또 한껏 웃는다.

 사실 나는 우리 집에서 항상 아빠와 가장 상극에 있었다. 사이가 나쁘진 않았지만 집에서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건 항상 아빠와 나였고 우리는 성격과 취향, 입맛까지도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모는 아빠와 가장 닮았지만. 그런데 요즘은 나 역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를 보며, 주말이면 평일 내내 보지 못했던 아이를 안고 먹이고 재우는 남편을 보며 나도 무수한 밤 아빠의 품에서 아빠의 흥얼거림을 들으며 잠들었겠구나. 내가 기억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아빠는 나를 안고 어르고, 사랑했겠구나. 아빠가 그랬겠구나.

 오늘도 아빠는 아이를 재우며 집안을 서성인다. 혹시나 아이의 눈이 부실까 불이 꺼진 방에 들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요를 부른다. 아빠가 동요를 부르다니. 아이는 아빠를 할아버지로 만들었고, 나를 가르쳤다. 할아버지가 되기 한참 전부터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아빠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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