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의 투병 생활을 거치고 이제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였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더 오래 가는 것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는 스스로의 치유력으로 눈에 보이는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상처는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어쩌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몸도 정상 수준으로 회복이 되어가고 있고 고통스런 시간도 다 끝났는데 왜 무엇이 더 힘들다는 건가?" 혹은 "1인 병실에 갇혀 있을 때는 너무도 힘들고 외로웠다며. 그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이제 기적 같이 바깥 세상으로 다시 나왔는데 아직도 괴로워 할 이유가 뭐야?"
나도 지금 돌아서 그때를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토록 괴로워 했었나 싶다.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힘조차 없었다. 온갖 부정적이고 암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어서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 개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어린이들은 길가에 개미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서 장난을 친다. 참 많은 개미들이 허망하게 다리가 부러지거나 몸통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유도 모르고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개미도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해서 '왜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이 닥친 걸까?'하고 괴로워 하면서 자살을 택하지는 않는다.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원래 가던 길을 간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점에서 개미랑은 참 다른 것 같다. 인간은 고뇌를 한다. 큰 시련에 빠졌을 때 인간은 제일 먼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를 고뇌한다. 만약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야!'라고 탓하고 욕을 하고 털어버린다. 하지만 도저히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인간은 큰 혼란에 빠지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개미랑은 다르게 오직 인간만은 '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리가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그것으로 인해서 목숨을 스스로 끊을 이유까지는 없는데도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당시의 나도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처음 난데없이 희귀병을 진단 받았을 때는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희귀병에 걸린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납득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갑자기 학교를 휴학해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왜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학교를 못 나가야 하는 건가? 얼마 뒤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너무 답답해서 잠깐 외출을 했다가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한참 동안 혼난 적이 있다. '면역력이 안 좋기 때문에 절대 밖에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벌어진 모든 일들이 하나 하나 나에겐 받아들이기 버거운 일들이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일들까지 겪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매번 나를 괴롭게 했다. 항암제를 투여받고 내장기관이 모두 정지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그랬고, 암환자들이 쓰는 항암제에 비하면 훨씬 약한 약이라고 하는데도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삭발을 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하수구를 봤는데 방금 빠진 머리카락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을 때,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다. 누군가의 골수를 이식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죽게 놔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든 상황이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결국 모든 사고를 포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그냥 한 마리 동물이 되기로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잠시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아침에 피검사를 하러 피를 뽑으면 손을 내민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식사가 나오면 씹어서 넘길 뿐이다. 그렇게 가장 힘든 시간을 겨우 버텨냈다.
나중에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갈 때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눌러놨던 정신적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고장나 버린 내 정신이 받아들인 세상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버린 전쟁터 같았다. 처음에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의 고장난 정신이 바라본 세상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에 처음 복학했을 때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와 입학 동기였던 친구들은 벌써 졸업을 하고 의사가 되었다. 정해진 스케줄 대로 착실하게 인생을 살면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내가 죽어라 노력하더라도 동기들에 비해 최소 몇 년 이상이 차이가 난다. 게다가 이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어 보였다.
나에겐 처음 의대에 들어가면서 꿈꿨던 목표가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전 세계의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명예로운 일을 하겠다는 꿈이었다. 이국종 같은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가고 관련 경력을 쌓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런데 의대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한참이나 뒤처진 나에게 꿈이나 목표가 무슨 소용일까? 인생이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았다.
거창한 꿈은커녕, 지금으로서는 의대를 졸업하는 것부터 신경써야 할 일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고관절 수술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고관절이 다 망가진 상태였다. 제대로 걷는 것도,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 않았을 때였다. 특별히 교수님이 편의를 봐주셔서 나만 사용하는 편한 의자를 가져다 놓고 지정석을 만들어서 학교를 다녔다. 처음 보는 한참 아래 학번의 후배들이 안 그래도 낯선데, 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역시 이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분하고 억울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와야만 하는 건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던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에 대한 정당한 벌을 받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왔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했던가. 의사가 되겠다고 아둥바둥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도 웃기고, '꿈을 가져라!'라는 말도 가소롭게 느껴졌다. 자기계발서의 달콤한 말들은 나같은 시련을 겪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이미 한 번 망가진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했다.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을 생각들이지만 그때는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올라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내 인생의 문제였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육체적으로는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외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던 것이다.
철학 책도 읽어보고, 죽음에 관해서도 찾아보고, 종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찾아도 보았다. 한없이 방황하는 시간들이었다.
만약 내가 지하철 역에 서 있다가,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발을 헛디뎌서 나를 살짝 밀쳤다고 하자. 나는 지하철 선로로 튕겨 나갔고, 하필 열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오던 중이었고, 열차에 치어서 중상을 입었다. 나를 치고 지나간 사람은 나에게 해를 입힐 의도는 전혀 없었다. 지하철도 나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는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누구에게 책임을 물고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인생이란 참 부조리한 것이다. 생각없이 던진 돌에 죄없는 개구리가 조용히 맞아 죽어도 세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맞아 죽은 개구리는 너무나 억울하다. 이것이 인생인 걸까? 원래 인생은 커다란 돌을 산 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고통으로 가득한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인생의 괴로움이 조금은 납득이 갈까? 혹은 굳이 이렇게 고통스런 인생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갖고 태어난다. 내가 오늘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서 내일 그에 대한 응징을 받는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떨까? 살아오면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인생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모든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에겐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인생의 불행이 있어도 참고 견뎌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죄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분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신이 없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올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한창 병원에서 생활할 때 종교를 가지신 분들도 병문안을 왔었다. 그분들은 나의 선호와는 관계없이 내 앞에서 손을 잡고 진실된 기도를 해주시고 찬송가를 불렀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은 물론 다른 방법으로 기도해 주셨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때에 어떤 신이건 가릴 때가 있겠는가. 어쩌면 그 신들은 모두 같은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을 정도로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많다던데, 나는 종교를 갖게 되지는 않았다. 종교적 교리에는 관심이 가지만 '믿음'은 갖게 되지 않았다.
한 번은 죽음에 관해 알아보다가 죽음을 앞둔 한 시인의 유고시집을 읽게 된 적이 있다. 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썼다는 그 시인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사를 헤매고 있을 때 글을 쓰기는커녕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단어로 써 놓은 시에 담긴 의미가 나에게는 참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나도 항암제를 맞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갔던 것 같다. 시인이 죽는 날까지 쓴 시들을 모아서 시인의 아내가 유고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으로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사람은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다시 삶을 얻어서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이미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의 글을 읽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위안이 되기는 해도, 더 큰 용기를 갖게 해주진 않았다. 그저 고통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
어느 날 글을 읽다가 수필 한 편을 발견했다. <특급품>이라는 제목이었다. 사실 고등학생 때 수능 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문학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잠시 여러분에게도 특급품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
'특급품'은 바둑판 중에서도 가장 좋은 품질의 바둑판을 말한다. 잘 알다시피 바둑판은 나무로 만든다. 어떤 나무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도 좋은 바둑판이 나뉘는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둑을 둘 때는 바둑알을 탁, 탁, 소리를 내면서 두는데 이때 소위 '손맛'을 중시한다. 비자나무는 탄력이 매우 좋은 나무라서 바둑알을 둘 때마다 손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고 한다. 명장이 좋은 나무로 만든 비자나무 바둑판의 가격은 무려 1억 원짜리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에도 등급이 있다. 3급품, 2급품, 1급품 등으로 나뉜다. 물론 1급품이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런데 1급품보다 더 좋은 등급으로 '특급품'이라 불리는 바둑판이 있다. 도대체 특급품은 무엇이 다르기에 1급품보다 더 좋은 것일까? 이것이 아주 특이한 점이다. 특급품은 1급품과 모든 면에서 똑같은데, 단지 표면에 희미한 스크래치가 나 있으면 특급품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은 1급품에 비해 무려 2~3배가 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스크래치가 있다는 것은 불량품이라는 뜻인데, 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르는 걸까?
그 이유는 특급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1급품 바둑판이 될 비싼 나무로 최고급 바둑판을 만들다 보면, 가끔 바둑판에 큰 상처가 나기도 한다. 고급 재료를 놓고 바둑판에 금이 갔으니 안타까울 것이다. 원가 이하로 싸게 해서 처분해 버리거나 그냥 버릴 수도 있지만, 이 바둑판을 버리지 않고 버리지 않고 잘 감싸서 보관해 둔다고 한다.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가만히 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지나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시절을 보내게 둔다.
그러면 비자나무가 가진 고유의 탄력으로 인해서 바둑판에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게 된다. 몇 년 후에 금이 간 바둑판을 다시 꺼냈을 때 비자나무 스스로의 회복력으로 상처를 회복한다면,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스크래치 하나를 남겨둔다면, 이 순간 드디어 특급품이 탄생한다. 금이 가서 폐기처분 되기 직전이었던 일급품 바둑판은 스스로의 치유 능력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세상에 둘도 없는 '특급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에게 왔던 시련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시련이라는 것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구나. 오히려 시련을 통해서 내가 가진 고유의 회복력을 증명할 기회를 준 것이구나. 금이 간 비자나무가 오랜 세월의 회복 과정을 거쳐 마침내 희미한 스크래치 하나를 훈장처럼 갖게 된 것처럼, 나의 인생도 금이 가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둘도 없는 '특급품'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
그렇다. 시련은 시련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시련에 대처하고 회복하는 자세가 그 사람을 특급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내가 시련을 당해서 그것으로 무너져 내린다면 나는 특급품이 될 수 없다. 내가 시련을 당해서 세상을 저주하고 남을 탓하며 살기만 한다면 나는 특급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비자나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나의 시련을 감당해내고 언젠가는 마침내 치유해낼 수 있다면, 특급품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첫 번째 특급품의 선물이다.
누구나 노력하고 갈고 닦으면 1급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특급품이 될 수는 없다. 왜일까? 특급품에 난 스크래치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상처는 다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해가는 방식도 모두 다 다르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상처의 흔적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다. 전 세계에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스크래치를 훈장처럼 달고 있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두 번째 특급품의 선물이다.
스티븐 호킹이 그러했다. 불치병을 판정받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후로 수십 년을 더 살면서 하늘이 준 수명을 다 누리다 갔다. 살아있는 동안 블랙홀과 우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으로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손가락도 움직이기 힘들어서 눈 한 번 깜빡 거리는 것으로 한 글자를 써가면서 책을 완성했다. 스티븐 호킹도 나처럼 젊은 시절에 인생에 커다란 금이 생겼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스티븐 호킹의 삶은 인간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호킹이 남긴 인생의 스크래치였다. 호킹의 인생은 단 하나밖에 없는 특급품이 되었다.
성악가 크바스토프도 그러했다. 그는 동시대 바리톤 가운데 최고의 반열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장애를 갖고 있었다. '탈리도마이드' 장애였다. 뼈가 자라지 않아서 키가 132cm에 불과하고, 팔과 다리가 짧고 손가락은 없거나 물갈퀴처럼 생겼다.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음대에 입학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성악가가 되었다. 그가 살아서 숨쉬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자체가 위대한 인간 정신의 최고의 표현이다. 크바스토프의 인생 또한 특급품이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9살에 친척에게 강간을 당하고 미혼모가 되었고, 아이는 2주 만에 죽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숱한 인종 차별을 받았지만 이 모든 시련이 그녀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도 입양아로 태어났고 대학을 자퇴했으며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결국 애플을 세계 최고 회사로 만들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들이 위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등은 모두 인생의 커다란 시련이 있었고 때로는 시련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인류에 길이 남을 특급품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은 예외없이 시련을 겪고 특급품이 된 사람들이었다.
<특급품>은 고등학생 때 시험 공부를 위해서 읽었던 수필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7~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삶의 굴곡을 겪고 나서 방황하던 나에게 커다란 희망을 선물해 주었다.
'왜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는가?'
라는 질문에 이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에게 특급품이 될 자격을 주기 위해서이다.'
내 양측 고관절에는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남은 상처가 있다. 약 10cm 정도 되는 상처가 이제는 거의 아물었지만, 여전히 붉은 자국이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 남은 첫 번째 스크래치이다.
두 번째 스크래치는 겨드랑이와 발목에 남은 튼살 자국이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하면서 급격하게 몸이 불어났다가 또 급격하게 빠지면서 1~2주 사이에 10kg 이상이 오르락 내리락 한 적이 있다. 그때 살이 찢어지고 갈라졌다. 지금은 튼살 자국으로만 남아있다.
세 번째 스크래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CT나 MRI 등을 찍어야만 보인다. 이 역시 치료 과정 중에 생긴 척추의 이상이다.
나는 위의 세 가지 스크래치를 스스로 시련을 잘 이겨냈다는 보증 수표, 혹은 졸업 증서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거울을 봤을 때나 양말을 신을 때 이따금씩 내 눈에 스크래치들이 눈에 띌 때마다 '오늘 하루도 신나게 즐기자!'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를 쓰러뜨릴 수 없는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