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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Oct 11.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6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세계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설거지 실력을 발휘하다.


2월 13일 목요일. 

카미노 제3일. 아스토르가에서 라바날까지. 21.4Km


  새벽 3시 30분 잠에서 깨어나다. 누워서 mp3로 시간 보내기 2시간. 도저히 더는 못 참고 나온다. 다행히 리셉션 사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어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가족에게서 온 카톡 점검하고 오늘 일정을 점검하고 일기를 쓴다. 어제 체크인할 때 아래층에 주방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내려가 본다. 아무도 없는 주방 긴 탁자에는 어젯밤 마시고 남은 빈 병과 잔들이 몇 개 보인다. 정리해서 넣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냄비에 밥이 있다. 아까 리셉션 방명록에 한국인 ‘마이너스손’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의 기록, 냉장고 밥은 1월 24일 지은 것이라는 내용이 있더니 이 밥이 그 밥이로구나. 날짜를 계산해 보니 약 보름은 지났지만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고 끓여 먹기로 한다. 계란 두 개도 보이기에 한 개를 집어넣고 끓이려는데, 웬 동양인이 다리를 절며 주방으로 들어온다. 자그마한 체구가 일본인 같아서 “곤니찌와?”라고 인사했더니, 자기는 타이완인이란다.  내가 끓이고 있는 밥을 본다. "Is this yours?" 그렇단다. 먹어도 된다기에 염치 불고하고 먹는다. 우유도 있기에 따라먹는다. "Is this yours, too?" 이번에는 자기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기가 샀을 뿐이란다. 어라 이 자식 봐라. 제법이네 내가 50년 걸려 깨달은 것을…… 새파란 놈이…… 어쨌든 마음에 든다. 각자의 카미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Would you mind going with me?" 했더니 괜찮단다. 그런데 자기는 느리게 걷는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바로 그것 때문이야. 나의 이전 동행자들은 너무 빨라서 갈아 치우는 중이란다. 

  방으로 올라와 2일간 생사를 함께한 씩씩한 두 마리 암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바이바이한 후 타이완 청년 리포와 카미노 제3일을 시작한다. 

  9시 출발. 비가 조금씩 내린다. 리포는 대학(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보니 타이완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1년을 마치고 세계여행 중인데 수단, 우간다, 동유럽을 거쳐서 여행 중에 처음 들은 카미노 정보를 가지고 지금 카미노 중이란다. 얼굴에 심한 흉터가 있어서 물어보니 아프리카 산에서 추락하여 치료한 흔적이란다. 사고 직후의 사진을 보여 주는데 얼굴 부분을 거의 붕대로 감고 있다. 그 상태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까지 6개월 이상 이역 땅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먼저 번 두 여성은 너무 속도가 빨라서 나를 힘들게 하더니 이 청년 리포는 너무 느리다. 다리가 온전치 않은 것 같아 내 스틱을 하나 빌려 준다. 커플 스틱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걷는다. step by step.

  아스토르가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무지개를 우리가 통과해야 할 대문처럼 앞에 두고 넓은 마당을 지나가듯이 평원을 걷는다. 

 비가 살짝살짝 뿌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맑음이다. 오늘은 좋은 날씨다. 길도 대체로 완만하다. 넓은 평원에 난 길 위에서 카미노 중인 나의 모습을 리포에게 부탁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무지개는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걸려 있고 잠깐 쌍무지개가 되기도 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벌판이다.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평원을 차도 옆으로 난 보도로 걷는다. 리포는 여전히 걸음이 가볍지 않고, 프랑스 암말들은 물론이고 내 속도에도 맞지 않다. 계속 이렇게 속도를 못 내면 ‘파트너 갈아 치울까?’, ‘내가 저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갈까?’ 두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완만한 구릉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우리가 머물렀던 아스토르가 마을이 대평원 한가운데 그림처럼 놓여 있다.       

  3시간 여 지나, El Ganso의 바에 들어가 베이컨, 포테이토 등의 메뉴 하나로 점심식사를 한다. 리포는 아침에 남은 밥으로 싸 온 점심을 먹는다. 서로의 점심을 나누어 먹고 다시 출발.  프랑스 암말들은 첫날 점심 먹는데 두 시간, 둘째 날인 어제는 4시간 걸렸는데, 리포는 한 시간 만에 점심을 끝낸다. 프랑스 사람들의 점심식사 문화는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리포 쪽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덜 마른 수건을 배낭 뒤에 매달아 자연건조시키며 걷는다.  오후 5시 오늘의 목적지 Rabanal De Camino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들어가는 길목에 예쁘고 자그마한 성당이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산타마리아 성당으로 베네딕트 사제들이 저녁예배(저녁 7시)와 밤 예배(저녁 9시)를 주관하고 순례자들을 축복하고 고해성사도 본다는 한국어 안내가 있다. 나도 7시 미사 참례하리라 생각하며 pilar 알베르게에 든다. 이 알베르게는 우리나라 시골 마당 있는 집처럼 생겨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먼저 리셉션으로 사용하는 넓은 주방에 들어가니 그동안 순례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여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두 여인, 제임스, 이탈리아 청년 졸루카, 처음 보는 서양인, 프랑스어 외에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프랑스 70대 할아버지 등. 벽난로 앞에 신발을 벗어 말린다. 프랑스 여인들은 우리보다 두 시간 먼저 도착했단다. 헐! 모두들 자기 배낭에서 식재료를 꺼내어 식사 준비를 하는데, 나는 가진 것이 전혀 없어서 구경만 한다. 마을마다 알베르게가 많이 있으나 겨울이어서 공립 알베르게는 하나뿐이고 이 공립 알베르게는 손님이 없어도 열려 있고, 이 알베르게의 주방 형편과 인근에 슈퍼마카도(슈퍼마켓의 스페인어)의 유무 등이 안내 책자에 있는 듯하다. 제임스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식탁에 펴 놓고 와인병으로 밀고 있다. 우리나라 칼국수 만들 때처럼. 얇게 만든 밀가루 반죽을 기름 두른 팬에 바삭하게 구워 설탕을 뿌려 준다. 차파티?

  나는 7시 미사 참례하러 갈 거라고 했더니 사과수프와 고기와 콩이 들어간 수프를 준다. 조금 먹고 나서 7시에 맞추어 성당에 갔다. 예쁘고 자그마한 성당에는 사제가 단 한 명의 신자를 놓고 미사를 집전 중이다. 나까지 신자는 단 두 명. 말은 못 알아듣지만 대충 따라 하고, 성가는 나 혼자 주님의 기도를 부른다. 그 사제와 신자는 목소리도 좋고 크게 잘 부른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자, 그 신자가 나에게 와서 손을 잡고 평화를 빌어 준다. 나도 "Peace"라고 말해 주었다. 복음을 읽는 시간이 되자 사제가 나에게 묻는다. 영어가 되냐고. 예스. 다른 미사책(성경)을 가져다가 오늘의 복음을 읽는다. 영어로. 

  나는 이번 여행에 「오늘의 미사」를 가지고 가서 매일 아침 읽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 오늘의 복음을 읽었기 때문에 영어 복음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방인 여인이 예수님께 더러운 영이 든 자기 딸의 치료를 요구하자 예수님이 자기 자식을 먼저 먹여야 한다고 거절한다. 이 여인이 강아지에게도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먹게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그녀의 집에 있는 딸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았다는 내용의 복음. 

 「매일미사」의 내용이 전 세계적으로 같이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성체 후 미사가 끝나고, 사제는 나를 위해 영어로 특별기도를 해 준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카미노를 무사히 끝내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감사하다. 나의 buen camino를 위해 나도 기도한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그 한 명의 신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성당에 올 때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이 약간 걱정되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 신자가 나를 알베르게로 데려다준다. 나의 신은 언제나 내 앞에 좋은 것을 준비해 두고 계신다. 

  숙소로 돌아와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몸집이 크고 앞니가 다 빠지고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되는 프랑스 할아버지(하느님의 축복으로 불치병을 치료한 감사의 뜻으로 카미노를 한다고 한다)는 우리랑 식사도 대화도 안 하고 먼저 침대에 계신다. 

  나는 오늘의 식사에 식재료도 요리하는 수고도 제공하지 않았기에 설거지를 맡았다. 이미 씻어 놓은 그릇들에도 거품이 그냥 붙어 있네. 한국 주부 9단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릇도 다시 씻고 식기 엎어 놓은 곳, 받침대까지 씻어준다. 아름다운 순례자, 아름다운 세계 젊은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젊은 그들은 한창 재미있게 논다. 나는 여기서도 early bird, 그들을 두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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