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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Sep 25.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5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대평원의 오두막에서 잠깐 알퐁스 도데의 <별>의 주인공이 되다.


2월 12일 수요일. 눈. 맑음. 

카미노 제2일. 아스토르가까지 17Km


  시차가 많이 극복되어 간다. 오늘은 네 시 넘어서 잠이 깼다. 내일 정도면 다섯 시 이후까지 잘 수 있을 것 같다. 제임스는 몇 차례 흡연 후 먼저 출발했다. 나는 프랑스 여인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식당에서 빵과 음료를 먹으려다 그녀들이 일어나면 같이 먹으려고 일단 나의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런데 9시 넘어 일어난 그녀들은 배낭을 챙기더니 바로 출발한다. 아침도 안 먹고. 나보고 언제 일어났냐, 밥 먹었냐 이런 것 안 물어본다. 오히려 편안하다. 

  9:30분 출발. 가시거리가 100m도 안 되는 짙은 안개를 뚫고 간다. 길을 잘못 들어 10분 정도 되돌아가기도 하다가 본격 카미노. 마을도 지나고 구릉도 지나고 평원도 지나고 지평선도 본다. 오르비고의 마을은 정겹고 집도 동화처럼 예쁘다. 우리나라도 마을을 예쁘게, 집을 예쁘게 하고 살면 좋으련만, 각 고장의 특색을 잘못 살리는 정책이 안타깝다. 프랑스 여인들 엄청 체력 좋다. 한국에서는 나보다 잘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저 여인들 앞에 나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걷는 실력으로는. 저 여인들 빠르게 걷는다. 힘차게 걷는다. 날 버리고 갈까 봐 물집 잡힌 내 발의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도 열심히 따라간다. 아침에 혼자 요기 안 했으면 순교할 뻔했다. 눈과 비가 내린다. 우박도 내린다. 잠깐 오다가 그친다. 너무 힘들다. 대평원에 오두막 같은 집이 나타난다. 그녀들이 들어간다. 다행이다. 난로를 하나 두고 요리에 필요한 온갖 집기들을 두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렇게 5년간이나 지내왔단다. 이미 이탈리아 청년 한 명이 와 있었다. 작년 12월 31일에 세비야에서 출발하여 우리와는 다른 루트로 카미노를 하고 있단다. 카미노용 작은 수레에 적절한 침구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싣고서. 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보니 나와 똑같은 폰이다. 한국에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내 폰이 가장 후진데, 사무엘은 삼성폰 너무 좋단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경제 격차인가……조인성보다도 디카프리오보다도 잘 생긴 이탈리아청년 사무엘의 폰에도 내 사진이, 내 폰에도 사무엘 사진을 남긴다. 오늘 카미노길에 식사할 곳이 없단다. 여기서 나에게 “안녕하세요?”로 인사하는 주인 스페인 청년 누마헬에게 초코라테 주문하여 마신다. 오전 세 시간을 가끔씩 지평선도 보이는 평원을 하염없이 걷고 점심때가 되어도 인근에 요기할 만한 데가 없어 만들어진 우리식 주막과 같은 곳이다. 한 몸 편하게 앉을 곳도 누울 곳도 없는 이 누추한 곳에서 주인 누마헬은 숙식을 한단다. 양말도 안 신고. 찢어진 슬리퍼, 더러운 운동복 바지 입은 채 난로를 이용하여 간단한 요리도 한다. 핫쵸코만 마시고 한 시간째 앉아 있다가 그녀들이 일어서길래 인사하고 갈 채비를 차리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여기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당근 되지.    

  우리는 너무 정해진 스케줄대로만 살아왔다. 간다고 했다가 안 가게 되면 이제 뭐냐고 불평을 할 텐데, 그럴 처지도 아니고. 내 몸은 심하게 휴식을 원하고 있으니, 여기 오래 있을수록 좋다. 


  이탈리아 청년 사무엘, 그리고 프랑스 여인들이 가방에서 식재료 이것저것 꺼내고 주인장 누마헬, 그리고 주인을 도와주는 초로의 남자가 모두 힘을 합해 요리한다. 

  나는 누마헬이 깔아준 종이에 벗은 발을 올려놓고 난로에 몸을 쬐고 있다. 스페인 북부의 한 평원에서 이들이 모두 그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하여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사무엘은 통통한 새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나에게 나누어 준다. 초로의 아저씨는 또르띠야를 만들고, 누마헬은 마카로니와 건조토마토를 넣은 수프를 만들어 준다. 이미 배도 부르고 입맛에 맞지 않아 깨작거리고 있으니 누마헬이 다 못 먹겠으면 달란다. 밖에 두면 새가 먹는다고. 고맙다. 센스쟁이다. 그도 제법 영어를 할 줄 안다.    

  내가 감옥 창살에 실에 묶은 콩을 두고 새를 잡아먹었다는 죄수들의 이야기, 한국에는 참새구이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 나도 먹어 보았다는 이야기 등을 영어로 들려주었다. 대충 알아들은 눈치다.

  피곤하고 졸린다. 눈치 빠른 누마헬이 자기 자리를 조금 더 내어 준다. 피곤한 몸이 쪼그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운지 자기 가슴도 내어준다. 잠깐 누마헬 가슴에 기대어 있는데, 왜 갑자기 도데의 <별>이 생각날까? 목동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잠자고 있는 아가씨가 되어 본다. 

  미안해. 누마헬.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 할머니가 네 가슴에 기대고 있어서.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여기서 자고 가려냐고 묻는다. 나는 지금의 난로 옆 소파에서 자란다. 자기는 바로 옆 평상에서 자겠다고. 동행한 프랑스 여인들도 묻는다. 여기서 잘 거냐고.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내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이 오갔다.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나면 나는 내가 여태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고, 누마헬은 멋진 야생마에서 한 마리 찌질한 조랑말로 전락하고 마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한 남자에게 지은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것도 이번 순례의 큰 이유 중 하나인데, 또 한 남자를……그럴 수 없다. 잠깐이라도 희망을 주면 안 된다. 바로 “No”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과일 요리(작고 노란 사과 수십 개를 넣고 끓이는)가 되는 동안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급하게 변경한 다음 목적지 아스토르가까지는 6Km가 남았단다. 

  사무엘이 일기를 쓰기에 나도 일기장을 가져온다. 내가 어디서 보고 적어 놓은 ‘La Vita es Bella!’(이탈리아어.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여주었더니 갑자기 나에게 친근감을 보여 온다. 그동안은 나를 코리아로 부르더니 이름도 다시 물어본다. 그리고 그 이탈리아영화 봤냐고? 세 번도 더 봤다고 했더니 나에게 더 관심을 표해 온다. 그리고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를 봤는데 좋은 영화였다고 한다. 그리고 연락처를 달란다. 저렇게 예쁜 청년이, 아낄 이유가 없지. 과일 수프 요리가 완성되어 나누어 먹은 후 다시 출발. 오후 5시다. 4시간 반을 쉬었다. 나에게는 황금보다 값진 휴식이었다. 

  이 대평원에 있는 누마헬의 오두막은 나에게 오늘의 카미노를 즐겁고 또 극도의 피로감에서 해방시켜 준 구원자라 아니할 수 없다. 해먹도 있네. 해먹에 누워 시원한 여름을 보낼 누마헬을 상상해 본다. 배움도, 돈도, 여자도 없으나 대자연과 함께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얼마를 내느냐 물으니 Free란다. 그럼 누마헬은 뭘 먹고살아? 기부는 할 수 있단다. 아낌없이 10유로를 기부한다. 서로의 볼에 뽀뽀까지 하는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예쁜 이태리 청년과도. 어디에 있었는지 성당에서 울리는 듯한 종이 울린다. 누마헬 천막에서의 아름다운 시간이 끝나는 종이.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뗀다. 오늘도 어제처럼 점심 후에는 눈도 그치고 맑은 하늘이다. 희한하네 하며 걷는데, 멀리서 종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바라보던 누마헬이 우리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 한 번 더 종을 울린 것이다. 돌아보고 영원히 마지막이 될 손을 흔들어 준다.      

  완만한 내리막을 걸어 걸어 내려간다. 주위 풍경도 내 마음에도 평화가 깃든다. 미즈가 큰 볼일을 보려는지 두루마리 화장지를 가지고 으슥한 곳으로 들어간다. 나데즈가 나보고 그냥 가자고 한다. 천천히 걸어간다. Do you have boyfriend? 내가 물었다. No란다. 그럼 미즈는? 그녀도 없단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서 그 둘은 sexual minority임을 알게 되었다. 괜히 물어보았네. 아무리 tolerance의 프랑스라지만 minority로 살아가기엔 거기도 신산함이 없으랴?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동성결혼도 법적으로 허용되었다고 해 주었다.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아이도 원하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모른단다. 이쯤에서 이 이야기는 끝내기로 한다.

  볼일을 끝내고 온 미즈가 와서 우리는 또 걷는다. 미즈가 오늘밤은 한국인이 있는 알베르게로 갈 거라고 한다. 상당히 세밀한 정보까지 나와 있는 가이드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떠나오기 전에 검색한 바와 마드리드에서 첫날 숙박한 알베르게(이 알베르게는 네이버의 까미노친구연합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순례자’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기아차 마드리드 지점 근무로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운영하고 있음)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그렇게 한국인이 많다는데 나는 아직 한 명도 못 만났다. 동양인도 한 명도 못 만났다. 한국을 떠나온 지 며칠 안 되었지만 한국인을 만난다는 말에 기대에 부풀어 아스토르가의 알베르게에 든다. 알베르게에 드니 제일 먼저 한국인 호스피탈레로가 맞아준다. 내 큰 딸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아가씨다. 너무 반가워 “안녕하세요?” 하면서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데 저쪽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공식적인 알림 사항만 알려 준다. 왜 이럴까? 한국인들이 너무 아는 척하는 것이 싫은가 보다. 나도 마음을 접는다. 좁은 방에 2층 침대 5개. 처음으로 2층 침대의 2층에 자게 되었다. 미즈가 자기 1층과 바꿔 준다는데, "No thank you. That's O.K." 누마헬의 천막에서 먹은 음식들이 아직 뱃속에 그득하여 저녁을 거르기로 한다. 침대 1층에도 누군가가 잘 것이므로 최대한 내일 아침까지 내려오지 않도록 필요한 물품들을 좁은 침대 한편에 정리해 두고 샤워 후 잠을 청한다.  아직 7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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