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레온산맥 최고봉의 바람에 내 몸을 맡겨 보다.
2월 14일 금요일.
카미노 제4일. 라바날에서 몰리나세카까지. 26.5Km(경사로 감안 29.5Km)
3시 30분 잠에서 깨어난다. 또 mp3로 2시간을 버티다가 나가본다. 주방으로. 다행히 전등불을 켤 수 있다. 추워서 잠자리에서 쓰던 모포로 온몸을 감싸 본다. 그래도 너무 추워서 벽난로를 켜기 위해 1시간가량 애썼으나 실패. 춥고 배고프다. 싱크대에 쌀봉지가 있다. 1Kg, 1,2유로 스티커가 붙은 채. 나와 리포를 위해 3인분의 쌀을 씻어 적절히 불린 후 점화, 냄비 밥에 도전한다. 적절한 불과 적절한 압력으로 밥을 짓는 중 리포가 나온다. 10분 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더니 그는 차를 한 잔 마신 후 내가 지은 밥을 같이 먹는다. 한 서양인이 오기에 밥을 나누어 준다. 반찬 없는 맨밥이다. 내가 집에서 준비해 간 고추 장아찌 조각 몇 개를 리포에게 준다. 그는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이다. 서양인은 주방 이곳저곳을 뒤져 후추와 소금을 넣어서 먹어 본다. 나랑 밥 먹는 것이 재미있는지 같이 밥그룻 든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고추피클도 구해다가 몇 술 더 도전하더니 남은 밥을 버리려 한다. 내가 그냥 두라고 하니 밥을 두고 나간다. 냄비에 남은 밥이 좀 적지만 깨끗한 비닐에 담아 리포의 점심으로 주고, 냄비에 붙은 누룽지와 서양인이 먹다 남긴 밥을 다시 물로 헹구어 끓여 먹고 아침 식사를 마친다.
제임스가 나오더니 어제 만든 밀가루 반죽을 찾는다. 나는 모르는 일,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결국 못 찾고 요기도 못 하고 길을 떠난다. 프랑스 여인들은 또 약간의 식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온다. 빵과 차로 아침을 대신하더니 간단한 뽀뽀도 나눈다. 프랑스 할아버지도 짐을 챙겨 떠나고 나도 리포와 함께 길을 나선다.
09:00
어제 참례한 성당과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순례의 길을 나선다.
햇빛이 비친다. 고맙다. 리포와 나는 이 지역의 작고 소박하지만 예쁜 집들로 된 이 마을이 정말 예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카미노 표지를 따라 걷는다.
어제 숙박한 라바날은 고도 1,200m였는데, 오늘 일정 중에는 고도 1,500m로 전 카미노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도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각오를 단단히 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교감님이다. 오늘 아침에 잠깐 인사발령일이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치더니 역시 그 이야기다. 날더러 신학년 OO부장을 하란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그 가능성을 약간 열어두기는 했지만, 내 교직 인생에 OO부장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한 일이다. 국제전화 수신요금은 자꾸 올라가고 있다. 이말 저말 한 두 마디 하다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해직 기간을 제외하고도 30년 가까운 교직생활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매일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매 순간 새로운 일들과 부닥쳐 왔고,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매뉴얼로 대처하고, 월급 받아 아이들 키워 출가까지 시켰다. 아침도 못 먹고, 또는 반찬 한 가지 없는 맨밥 먹으며 겨울 카미노를 하고 있는 내가 그깟 일 못하랴 싶다. 아니다. 그 역이다. 매일 만나는 힘든 일상,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일들도, 여러 날잠 못 이룰 정도로 고달팠던 일들도 떠오른다. 밥도 못 삼킬 정도로 힘들었던 가정과 직장의 수많은 일들을 헤쳐 나온 그 힘이 오늘의 카미노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내가 산티아고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보내 준 진심 어린 성원이 힘이 되어 오늘까지 무사히 카미노를 하고 있듯이, OO부장을 해도 나의 동료들은 성심껏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라시아스.
걷는다, 오른다, 카미노 표지를 따라서. 해가 쨍쨍하다. 너른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또 오른다. 레온 산맥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리포는 어제보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 걷는 아스팔트길 좌우에는 50cm가 넘는 눈이 쌓여 있다. 도로는 눈이 녹은 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지난달, 혹은 일주일 전에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두 시간 정도 가다가 졸루카를 만난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기 전 마을 근처에서 차를 마신다.
고도는 점점 높아진다. 바람이 거세다. 도로 옆에 있는 어린 나무는 보호철망 속에 갇혀 있으나 보호 철망과 함께 꺾인 것도 여럿 보인다. 바람의 세기는 내가 경험한 것 중 최고다.
앞에 가고 있는 리포-아마 나보다 몸무게가 작으리라-도 흔들리고 나도 흔들린다. 배낭이 없었으면 더 많이 흔들렸겠지.
강한 바람에 내 몸을 맡겨 본다. 다리를 벌리고 서 있어 본다. 내 몸의 깊은 곳까지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시원스레 경험하지 못한 바람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한다. 시원하다. 기분 좋다.
레온산맥 최고봉에 있는 ‘순례자 성야고보의 길’의 영원한 상징의 하나인 ‘철십자가’에 다다른다. 고도는 1,505m.
이 길을 지나간 수많은 순례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을 다시 생각하고 내 카미노의 안녕과 신의 가호를 빌어본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이 연옥을 면제받게 된다면 이 강한 바람과 눈과 비를 거부하지 않고 고생한 대가리라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하고 곳간에 몇 대가 먹을 양식을 숨겨둔 사람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이른다. 단돈 1유로를 아껴가며 카미노를 걷는 리포를 비롯하여 이 지구상에는 최소한의 생존도 위협받는 사람이 수 억 명이라는데 말이다.
거의 1시가 다 되었는데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없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오두막이 보인다. 개들이 여러 마리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나 보다. 문은 열리지 않고 입구에 종을 흔들라는 뜻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흔들어 본다. 기척이 없다. 다시 흔들어 본다. 60세도 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두 분이 나온다. 밥은 안 되고 차만 된단다. 우리 셋은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곳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들의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졸루카는 커피를, 나는 우유 하나를 시켜 리포와 나누어 먹는다.
리포는 배낭에서 자신의 비상식량인 비스킷과 마아가린과 치즈를 꺼내고, 나는 멸치를 휴대용 간식으로 만든 <멸치아삭>과 하나 남은 찹쌀떡을 꺼내어 나누어 먹는다. 이 눈물겨운 식사는 우리 셋을 가족과 같이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두운 실내는 침대와 난로와 나무 탁자, 그리고 간단한 주방 기구 등, 이 할아버지들이 이 산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최소한의 장비만 있다. 졸루카가 내 차 값까지 지불했단다. 고맙다. 나오다가 그 좁고 어두운 공간 한 구석에 눈길이 닿았는데, 헐! 여자의 큰 가슴 사진이 표지에 시원스레 실려 있는 SEXUAL 잡지가 수 십 권 쌓여 있다.
오늘은 강한 바람과 만나는 날이다. 가끔 눈길 교통사고의 흔적도 보인다. 며칠 전 이 길을 지나간 순례자들은 대단한 눈길을 걸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바람은 강도는 세지만 크게 차가운 바람은 아니어서 견딜만하다 생각해 본다. 여러 시간 걸려 두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다음 목적지 몰리나세카로 가는데 만만치 않다. 산길이 이어진다. 눈 녹은 물이 작은 시내를 이루어 흘러내린다. 앞서가는 리포도 나도 신발이 깨끗해지고 있다.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만만치 않아 신발의 위아래, 속까지 깨끗해진다. 새 신발처럼.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바에 들어간다. 졸루카가 미리 들어와 있었다. 노트북을 켜놓고 음악을 들으며 점심을 먹고 있다. 졸루카는 언제나 우리보다 속력이 빠르다. 미리 들어가서 각종 기기로 카미노 떠나오기 전의 생활을 잠시 즐긴다. 그만의 카미노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리라.
나와 리포는 천천한 걸음으로, 그러나 쉼 없이, 그리고 점심시간도 아껴가며 촐루카를 따라잡는다. 아니 평균적인 카미노 속력을 유지해 나간다. 우리는 set메뉴(12유로)를 시켜 나누어 먹는다. 무거운 짐을 진 프랑스 할아버지는 그 짐에 도시락까지 들고 다니더니, 점심 식사는 이미 하셨는지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촐루카는 음악 소리를 키워 놓고 연신 상반신을 흔들어 대면서 즐거워한다.
다시 출발. 졸루카가 가방에 비닐을 씌우기에 “오늘은 비가 안 오니 그런 것 필요 없어!”라고 말해 준다. 그러나 촐루카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닐을 씌운다. 레온 산맥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린다, 심하게. 그러다 이내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가까운 곳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날리기도 한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는 안내책자 주의를 되새기며 한발 한발 조심해서 또 걸음을 옮긴다.
마을을 지나고 가끔 넓은 평원과 양 떼 목장을 지난다.
리포가 묻는다 말고기 먹어 봤냐고? 아니. 여기 사람들은 말고기도 먹는데 쇠고기 값의 두 배란다. 헐!
자기는 카미노 초반에 사슴 두 마리가 카미노 길 건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눈길을 건너간 사슴의 발자국을 확인한다. 산기슭에 작은 마을들이 보인다. 예쁘다. 저곳의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살까?
여행은 확실히 젊음과의 만남이다. 나의 편안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 나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과 만난다. 오늘 리포와 함께 걸을 수 있고, 리포와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리포가 나를 거절하지 않아서 고맙다. 이러한 기회를 위해서라도 나이를 핑계 삼지 않는 지속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외국어 공부를 포함하여.
리포도 나도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에 감탄한다. 나지막한 집들. 작은 집들. 오손도손 소박한 한 가정의 희비를 그려본다.
이곳의 집들은 지붕은 거의 검고 얇은 돌로 되어 있다. 높지 않은 지붕이, 행인에게 잘 보이는 지붕이, 모양이 일정하거나 다른 얇은 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치유 효과가 있을 줄이야……
저녁 7시. 비를 맞으며 오늘의 목적지 몰리나세카에 도착한다. 분명히 열려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온 알베르게가 닫혀 있다. 늦은 시간 젖은 몸은 빨리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알베르게를 찾아야 하는데. 내 주위를 살피니 내 카미노 5일 만에 처음으로 소규모 슈퍼마켓을 발견한다. 과일 몇 개, 치즈 몇 개를 산다. 주인이 권하는 토산품 수제 소시지도 약간 산다. 리포와 촐루카에게 오렌지 하나씩을 준다. 젊은 그들은 계속 숙소를 검색한다. 마을에 호텔이 있다. 셋이 한 방을 쓰고 60유로란다. 젊은 그들은 난색을 표한다. 알베르게는 아무리 비싸도 1인당 10유로. 내가 이런 제안을 한다. 너희는 10유로씩 내고 나머지 40유로는 내가 부담하면 어떨까? 나는 카미노 중에 가끔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예산을 마련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젊은 그들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단다. 우리나라는 나이 많은 사람이 이 정도 부담하는 것은 미풍양속인데, 서양에서는 철저한 더치페이 문화라서 수용이 안 되나 보다. 내가 오렌지를 까먹으며 호텔 앞마당에서 기다리는 사이, 채 20분도 안 되어 가까이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내어 우리 셋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각 10유로에 주인은 우리를 한 방으로 안내했는데, 졸루카가 나보고 다른 방을 쓰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아무래도 내가 불편한가 보다. 좋아. 나는 옆방에 혼자 들었다. 더블침대에 거울까지 있는 방. 이 조건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동안 서울 내 방에서 쓰던 더블침대가 이토록 행복한 것이었는데, 그동안은 그 행복을 모르고 살았구나.
점심때 헤어진 70대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춥고 젖은 몸을 누이고 있을까? 내 부모인 듯이 걱정이 된다. 같이 가자고 할 걸 후회된다. 할 말은 그때그때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언제나 있을 것 같은 시간도 어느 순간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음을 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