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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Oct 11.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8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길동무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을 때까지 무서움에 떨다.


2월 15일 토요일. 카미노 제5일. 

몰리나세카에서 폰페라다 경유 카카벨로스까지. 25Km


졸루카는 바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오겠다고 하여, 나는 리포와 함께 폰페라다로 간다. 그동안 걸었던 길과 다르게 인가나 대로가 있는 길이다. 마침 주말이어서 그런지 복장을 갖춘 조깅족, 사이클족, 편안한 복장으로 손잡고 산책하는 부부를 본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인가는 어쩌면 이다지도 예쁠까?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새것이면 새것인 채로, 낡은 것이면 낡은 것인 채로, 모두 꽃과 풀을 작고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집들이다. 

  나도 저런 집을 가꾸며 살고 싶다. 소득으로 치면 저들보다 적지 않을 텐데 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렇게 여유롭게, 행인마저 치유해 주는 집을 갖지 못하고 있는가? 왜 집이 부의 기준이고, 부의 과시 수단이고,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는 고통의 진원지여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이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든다. 

      유선방송의 휴채널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길이나 이렇게 아름다운 가정집을 촬영하여 음악과 함께 방송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부럽긴 했으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포근한 일상을 떠나 잠자리까지 배낭에 지고 내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보는 이 광경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워킹이나 싸이클링으로 주말을 즐기는 스페인의 노부부나 젊은이들이 시선을 끌던 마을이 끝나고, 다음 여정을 이어간다. 리포가 좀 깊은 명상을 하려고 나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어 달라고 한다. With Pleasure. 나는 리포를 앞서 걷는다. 간간이 뒤돌아보며. 나도 명상에 잠긴다. 무엇보다 지금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리포가 나의 안내자가 되어 주고 있는 오늘에 또 감사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례객의 명상을 위하여 오랜 시간 세심하게 만들어진 곳이 많지만, 지금 지나는 길처럼 차도를 옆으로 두고 있는 길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뒤돌아보니 이 무슨 시추에이션? 리포가 보이지 않는다. 리포가 너무 천천히 걸어오는가? 좀 기다려본다.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되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리포의 모습을 확인한 후 약 30분이 경과한 것 같다. 시간으로 거리를 계산해 본다. 15분(1Km) 전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곳에 흐리지만 노란 화살표시가 있다. 주의 깊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지나가는 바이크 족들에게 두어 번 확인하고 방향을 잡고 걷는다. 나 혼자서. 무서운 마음이 든다. 이 화창한 백주 대낮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포도밭과 빈 들판을 지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리포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은 마을에 이른다. 마침 토요일이라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 가끔 행인이 있다. “Camino de Santiago?" 키 작은 동양여자의 이 한 마디에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스페인어로. 대충 손짓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또 걷는다. 이제 내 마음에는 평화 대신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금방 마을은 끝나고 다시 들판이다. 이렇게 혼자 갈 수 있을까? 지난 5일간의 순례경험은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하루정도 버틸 양식이 있고 비 오지 않고 또 춥지도 않으며 내가 만난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으니. 몸도 마음도 넉넉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살아남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걷는다. 리포가 여러 달 집을 떠나 지구 곳곳을 주유하며 명상을 하는데 내가 많이 방해가 되었나 보다. 이제는 헤어질 운명인가 보다. 할 수 없다. 잘 가라, 리포. 맛있는 것 좀 더 많이 사 줄 걸. 몇 조각의 비스킷과 통에 든 마요네즈와 치즈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던데. 1인분의 스페인 식사가 나에게는 언제가 양이 많아서 리포와 나눠먹기 좋았는데. 내 등산용 스틱은 큰맘 먹고 블랙야크에서 거금을 들여 산 것인데. 그 스틱 한 개가 너의 buen Camino에 도움이 되면 나에게는 큰 영광이겠다 생각하며 들길을 걷는다. 오르막이다. 새싹이 돋는 나뭇가지도 보인다. 광활한 포도밭에는 어제부터 가지를 손질하는 농부들도 보인다. 길가에는 벌써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커브길을 도는데 앞에 리포가 보인다. 혼자서, 천천히 거북이처럼 걸어가고 있다. 반갑다. 6․25 때 헤어졌던 내 식구를 만난 기분이다. 너를 영영 놓쳤을까 많이 걱정했다고 했더니 자신도 나를 걱정했단다. 나를 놓치고 내가 지나간 길을 생각해 내었고, 얼마쯤 지나면 그 길도 자신이 걷던 길과 만날 수 있는 길인 것을 알아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어쨌든 고맙다. 가족도 아닌데. 

 "Are you OK? " 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한다.

 긴장하고 빨리 걸어서인지 내복이 땀에 젖어서 걷기에 많이 방해된다. 리포를 앞으로 보내고 들판에서 동양여자가 내복을 벗어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또 걷는다.      

  함께 폰페라다에 닿는다. 성의 규모에 비하여 관광객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인지 안내소 직원도 친절하다. 안내소에서 가방을 맡아준다. 무료로. 친절하게. 스페인의 넉넉함이 고맙다. 준비해 간 공책이 새벽마다 쓴 기행일기로 꽉 차서 새로운 공책을 2유로에 사고, 광장에서 점심도 먹기로 한다. 관광지라서인지 바의 앞에 내민 간판에 적힌 음식가격이 조금 비싸다. 눈치 빠른 리포가 잽싸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6유로에 수프와 빵이 가능한 바를 찾아내었다. 처음으로 2인분을 시킨다. "I'll pay for you." 넉넉해진 리포와 나는 12세기에 지어졌다는 성을 마음껏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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