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휴식
문순태의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을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피와 땀과 눈물로 우리나라를 지켜낸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은, 작가나 그 시대를 살아낸 민초님들께 너무 죄송한 표현이기는 하나, 나의 필력이 부족한 소치이니 양해를 바라면서 이 글을 이어가 본다.
등장인물이 수십 명 나오지만, 편의상 ‘웅보’를 주인공으로 보면서 이 소설을 읽어 나갔다. 「그래도 제대로 제2화」에서는 ‘웅보’와 그의 직계를 중심으로 소설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웅보의 동생 ‘대불’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휴식’에 대해 쓰려한다.
‘대불’은 어깨너머로 겨우겨우 배운 언문(한글)을 읽고 쓰는 정도의 학력이지만, 심성이 바르고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는 잡초의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 시대 최고의 지성을 가진 제물포의 여인 ‘순영’을 알게 된다. 이 여인을 제물포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일본인 ‘하야시’가 겁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대불’은 그 ‘하야시’를 이 세상을 깨끗이 떠나라는 뜻으로 적절한 물리력을 가한 후 쪽배에 실어 제물포 앞 깊은 바다에 투기하고 자기는 제물포를 떠난다.
경성에서 유학하는 ‘순영’을, 독립운동가들 주위에서 맴돌던 ‘대불’이 만난다는 사실을 안 ‘하야시’가 ‘대불’을 미행, 체포하여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후 깊은 콘크리트 방에 던져 놓는다. 며칠이나 걸레처럼 던져져 있었는지도 모르는 ‘대불’이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온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후유증으로 일어설 수도 없는 지경이고 목은 갈증으로 타들어 가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인데, 콘크리트 방 저 높은 곳에 걸린 한 뼘 햇살을 마주하게 된 ‘대불’은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진다.
첫날은 방안을 조금 걸어 다니고, 다음날은 조금 더 걸어보면서 햇볕을 있는 대로 흡수하여 조금씩 생명으로 나아간다. 드디어 그 쪽창을 통해 탈출에 성공하는 ‘대불’. ‘대불’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축축하고 어둡고 깊은 죽음의 방에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짧은 휴식, 긴 휴식, 그리고 잠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이 돌아온 첫날의 상태로는 그 방을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나, 휴식(?)의 시간에 주어진 산소와 햇볕이 그를 생명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다.
노후를 위하여 근력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 가지 기구를 20회씩 3세트 진행한다. 1세트를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무 번 하면 더 이상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조금 쉬고 나면 꿈과 같이 다음 세트를 진행할 수 있다. 1분 미만의 그 짧은 휴식이 극도의 힘듦을 상쇄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내 자녀들이 한창 공부할 때 이런 깨달음이 있었다면, 잔소리를 훨씬 덜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2025. 05.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