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주키 Mar 27. 2021

기분 나쁠 때 드는 생각은 다 거짓말이다

2019 Cactus and Sunset, Jeju

 여행을 그토록 많이 다녔지만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은 딱히 없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후로는 혼자 떠나면 떠났지, 가족들을 위해 소중한 내 휴가를 사용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기적이었다.

 특히 머릿속에서 단어를 조합하는 일종의 시스템은 어머니와 여행, 이 두 단어를 조합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사실 이 두 단어를 조합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유전적으로 여러 가지가 닮았는데, 내 눈썹 뼈가 툭 튀어나온 만큼 고집이 센 부분도 물려받은 듯했다. 그래서 둘이서 데이트를 할 때면 종종 아무 일도 아닌 것들로 티격태격하곤 다투곤 했고, 여행에 가서 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여행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물론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또한 엄마였다.(아버지는 일하러 홍콩이나 중국 쪽도 자주 다녔을 테니까.) 나 혼자서만 이런 축복을 누리는 건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엄마는 옛날 사람이어서 익숙한 곳. 예를 들면 어머니의 고향인 강원도, 제부도처럼 서울에서 가까운 곳을 다니기는 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나와 내가 어른의 모습으로 자라나는 동안 제주도에 다녀오는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후로는 새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엄마와의 효도 여행’이라는 단어를 늘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 단어를 현실로 바꾼 것은 누나가 결혼하고 난 다음 해였다. 누나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엄마가 무료해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 드디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몇 해가 지나도록 수첩에만 적어오던 계획 위에 쌓인 케케묵은 먼지를 탁탁 털고 보니, 반짝거리는 꽤나 괜찮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머니와 내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적 영역은 내가 결혼을 하기 전의 시간, 그리고 어머니가 활동적으로 다닐 수 있는 시간의 교집합 영역이었다. 그 영역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 가자, 놀러 가자!”하는 말들은 친구들에게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었으나, 오히려 가족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엄마 이번 여름에 같이 여름휴가 가자!”

 그 말을 뱉고 나서야 여행지를 결정했다. 고심 끝에 결정한 여행지는 여수였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어머니가 가보지 않은 곳, 비행기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곳(몇 해 전 사천공항을 방문한 경험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을 찾다 보니 여수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상다리가 부서질 것 같이 차려진 남도음식을 먹었다. 어머니는 시인이셔서 그러한 음식을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검은색 모래로 뒤덮인 해수욕장, 그토록 유명한 여수의 밤바다 등 여행지를 다니는 동안 온갖 신선한 표현을 쏟아내셨다.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새롭고 풍부한 표현을 들으며 감정을 공유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은 너무도 더웠고, 심지어 남쪽 도시라니. 신원불명의 짜증의 어디선가 감정이 마구  솟구쳤다. 그럴 때마다 카페와 같은 실내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열기와 함께 감정도 차갑게 식히곤 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산 중턱 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 향일암에 찾아갔을 때 정오가 되기 전의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무척 뜨거웠다. 사찰의 검은 기왓장과 함께 내 몸까지 녹아 흘러내릴 지경이었으며, 게다가 산 중턱에서 에어컨을 찾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신비로운 향일암과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어머니와 티격태격 마음에도 없는 못난 말을 뱉어댔다.


 다행히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커피 대신 에어컨 바람을 파는 것 같은 어느 카페를 발견해, 에어컨 바람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중간에 뱉었던 속좁고 못난 말들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저 그 날의 날씨가 유독 더웠고, 주요 관광지의 교통체증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뿐인데, 그게 어머니 때문이라고 뇌에서 계속 거짓 정보를 뱉어댔다. 여행과 어머니라는 두 단어를 처음으로 조합하는 동안 오류를 일으킨 내 머릿속이 더운 열기를 만나 최종적으로 경고음을 크게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문득 ‘기분 나쁠 때 드는 생각은 거짓말’이라고 했던 친구의 한 마디 조언이 떠올랐다. 

 예전에 외국 생활을 할 때 초반에 주위에 아무도 없어 외롭고, 돈도 적게 들고 가서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한국과 시차가 반대여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상담을 하기도 애매했고(아침 감성과 밤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괜한 걱정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상담을 구했던 친구는 파리에서 2년 간 파티시에 공부를 하는 S였다. 그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바로 ‘기분 나쁠 때 드는 생각은 다 거짓말이야 임마. 힘내’였다. 그렇게 툭하고 뱉었던 한마디 조언 덕분에 초반에 힘들다고 느꼈던 감정을 이겨낼 수 있었고, 누구보다 재밌게 나만의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여수를 다녀온 다음 해에는 어머니와 여수보다 더 긴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했다. 그 여행을 하는 내내 친구가 내게 했던. 그리고 지난해 여름, 후회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여행을 이어갔다.

 더위나 교통체증들에서 비롯된 짜증들도 다 거짓 감정이라고 생각했고, 어머니와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 나갔다. 순간적인 기분에서 비롯된 거짓 감정을 이겨내고 나니, 나 또한 시인인 어머니처럼 풍부하고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여행 내내 우리가 만났던 제주도의 풍경들처럼, 예쁜 말들이 우리 안에 담겨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시인처럼 느끼셨고, 또 어떤 순간에는 시인이 되기 더 이전으로 돌아가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이 여행은 내 평생 해왔던 여행 중에 가장 잘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머니와의 여행을 계획 중이고, 우리에겐 앞으로 더 많은 여행들이 남아있다.(사실 우리의 일상 또한 여행의 연속이겠지만.)

 그때마다 내 친구의 조언이 귓가에 맴돌 것만 같다. 


 기분 나쁠 때 드는 생각은 다 거짓말이다.


이전 11화 바다니까, 다 괜찮지 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