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 3개월
16시간~18시간의 공복을 마치고 마주하는 밥상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다르다. 식재료는 인간의 몸을 아프게도 살리게도 한다는데 그래서 더욱 고귀한 존재로 여기게 되는 요즘이다. 금식 후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 탄수화물, 고기류 순으로 먹는데, 경험상 식이섬유를 넉넉히 채우지 않으면 변을 보는데 어려움이 온다. 이를 막기 위해 섬유질이 많은 다양한 나물이나 된장국 또는 미역과 같은 해조류도 넉넉히 먹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장을 볼 때는 저렴하면서도 섬유소가 풍부한 채소들을 찾아 오래 머물고 머릿속으로 적당한 조리법을 떠올려본다.
마트나 시장에서 데려온 식재료를 식탁에 꺼내고 주방에 선 후엔 처음으로 다듬는 야채가 오늘의 매인디시가 된다. 오늘 생각해 낸 주인공은 봄동무침과, 고등어묵은지조림이다. 칼로 먹기 좋게 자른 봄동을 깨끗이 씻은 후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적당히 털어낸 후 마늘, 고춧가루, 간장, 매실액, 등을 차례로 뿌리고, 들기름과 액상 조미료를 한 숟가락 둘러 비닐장갑을 낀 후 아기 다루듯 부드럽게 무쳐내었다. 벌써 하우스에서 나온 달래가 있어 달래도 숭덩숭덩 잘라 추가했다. 고춧가루로 붉게 물든 봄동무침을 보자마자 식욕이 확 올라온다. 인덕션 위에는 고등어묵은지조림이 뚜껑을 들썩이며 힝~힝~ 김을 뿜어내며 끓고 있다. 게다가 구은곱창김을 뚜껑 달린 통에 담고 참기름, 깨소금과 넉넉히 썬 달래를 넣은 양조간장 그릇을 식탁 위에 올리니 봄과 겨울의 조화로운 식탁이 된 듯하다.
청소년 아들은 하루에 열두 번은 냉장고를 여닫는다. 성장기라 자주 먹거리를 찾는데, 지난여름 방학엔 나가서 끼니를 수시로 해결했던 거 같다. 엄마가 외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번 겨울에도 외식을 나가 자고 한다. 매 끼니가 소중하지는 않았던 때가 오래도록 있었다. 세끼 식사라는 강박으로 어떻게든 끼니를 때우고, 귀찮았지만 거르지 못했던 식사시간이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시간제한 섭취를 시작한 후, 금식 후 외식을 하게 되면 식당에서 먹게 되는 밥상의 내용은 주로 면이나, 흰밥, 채소부족, 과한 조미료 사용으로 건강을 채우기엔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생겨났다. 며칠 전에 물미역을 사다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었는데, 알싸하고 시원한 바다맛이 일품이었다. 자연의 맛을 즐기는 시간도 좋았고, 아들도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주부가 바뀌면 집안의 분위기도 바뀐다. 내가 바쁘고 지치고 요리할 시간이 없다면 그 집안 구성원들의 건강도 어려울 수 있다.
쉰이 다가오는 시점, 꺾어진 오십 대, 내 아버지는 오십대 중반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현대는 의학의 발달로 살 날이 더 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제부터라도 건강한 날을 차곡차곡 만들어가면된다 더 늦기전에. 하루 한 두 끼 귀한 식사와 나머지는 금식으로 식탁에는 변화가. 내 몸에도 변화가. 음식에서는 해방되는 기쁨이 찾아왔다. 부디 이 습관과 초심의 마음이 오래가길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