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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삶은 우리를 엄습해오지만, 그럼에도 아름답다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

by 책 읽는 호랭이

대학교 때 읽고 몇 년 만에 읽은 김애란 작가의 작품.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는걸 보니 내가 그 당시에는 이 작가의 진가를 알아보기엔 내공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꽤 인상 깊은 점들이 있었는데, 삶의 비애와 애통을 청소년의 시점으로 먹먹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듯 풀어가는 게 그중 하나였다.

우리는 어쩌면 본인의 삶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포함이다. 우리는 이 가족을 통해 수많은 삶의 애환을 겪는다. 작품의 주인공 지우, 소리, 채운 세 명은 가족 중 누군가를 잃었다. 있을 때 더 잘할 걸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후회 앞에서 그들은 삶의 끝없은 시작을 놓친다.

때때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 외면은 과거와 미래를 가리지 않는다. 슬픈 순간들이 대개 그렇다.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났던 순간, 언젠가 찾아올 가족이 세상을 떠날 순간. 우리는 그 필연을 경험했고, 경험할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멈추지 않는다. 되레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우리의 시선을 땅으로 이끌지만, 마침내 고개를 추켜들어 내 삶을 있는 힘껏 마주하고 그 끝없는 시작을 맞는 것이다. 이게 혹독한 세상에 어떤 의지도 없이 내던져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삶에게 '그럼에도'를 수없이 외쳐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현전할 때, 우리는 '그럼에도' 시작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수용하든 저항하든 상관없다. '그럼에도'라는 삶에 대한 태도만 있으면 된다.

마침내 연필을 거머쥐게 될 지우처럼, 지우와 만나 '그럼에도' 시작될 삶을 마주하는 소리와 채운처럼, 고개를 들고 마주하자. 책 표지 속 소매를 걷어올린 채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있는 소녀를 보라. 다음에 이어질 당찬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녀가 그려갈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수많은 고통과 슬픔이 찾아오겠지만, 우리도 그때마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마음을 다잡자. 그럼에도 시작될 삶이기에 내 삶은 아름답다고. 그럼에도 자유로이 살아가야만 하는 내 삶이 찬란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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