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6). 기분, 감정, 정서 [에세이]

나는 아버지의 흔적 위에 서 있다.

by 책 읽는 호랭이

아버지의 투병 생활 동안,

문병을 가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출근을 했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이 흐릿했다.

까닭을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이

하루의 표면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슬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형태가 없었다.

그저 떠올랐다.

내가 불러온 것도 아니었고,

내가 걷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기운은 그냥 거기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잠식돼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이었고,

그 현실이 마침내 도래했을 때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슬픔이 뿜어져나왔다.

그것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 감정을 막을 수 없었고, 막는 방법도 몰랐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슬픔은 책임감이 되었고,

책임감은 무거움이 되었으며,

그 무거움은 나를 책상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개념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남긴 감정이

그 방향을 스스로 찾아간 것이었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차갑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버지는 흔적이 되어 내 안에 쌓였다.

투병 기간의 형태 없는 무거움,

그날의 절망적인 슬픔,

그 이후 천천히 방향을 찾아간 감정들.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지층이 되었다.


삶에 대한 책임감,

죽음을 향한 탐구,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아버지가 있다.


나의 정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하며 형성되었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감정들을 살아낸 방식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흔적으로 남았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나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기분 앞에서 무력했고,

감정 앞에서 무너졌으며,

그러나 그 감정의 방향을 끝내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지금의 나라는 형식이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흔적 위에 서 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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