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7). 믿음, 신뢰

존재가 타자와 맺는 방식

by 책 읽는 호랭이

우리는 믿음과 신뢰를 구분 없이 혼용한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놓인 결은 분명히 다르다.




믿음.

순우리말. 어원은 '믿다'에서 비롯된다.


믿음은 대상을 향한 인식적 수용이다.

그것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길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믿음은 머릿속에서 완결될 수 있다.

대상을 전제할 순 있어도

관계를 반드시 전제하진 않는다.

믿음은 혼자서도 성립한다.


믿음은 객관적 근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증명되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검증되지 않아도 믿음은 성립한다.

그래서 믿음은 때로 취약하다.


그러나 그 취약함이 믿음을 가치 없게 만들지는 않는다.

믿음은 확인 이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행위다.

그 손 내밈이 없다면 어떤 관계도 시작될 수 없다.




신뢰(信賴).

믿을 신(信), 의지할 뢰(賴). 믿고 기대는 것.



신뢰는 믿음과 다르다.

뢰(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다.

기댄다, 의지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신뢰는 믿음이 관계 속에서 변화하며 나타난 것이다.


신뢰는 혼자서 떠오르지 않는다.

반드시 대상을 전제한다.

나는 그를 신뢰한다고 말할 때,

거기엔 그에게 기댈 수 있다는

관계적 선언이 담겨 있다.




여기서 두 개념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믿음은 인식의 언어다.

신뢰는 관계의 언어다.


믿지만 기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대려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


믿음은 신뢰의 전제조건이지만,

믿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신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신뢰 사이에는

하나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건너는 것은

내면의 인식이 아니라,

외부로 뻗쳐나가는 나의 결단이다.


그 결단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기꺼이 대상에게 허용하는 것,

나를 열어젖히며

그 영향에 자발적으로 노출되겠다는 것.


신뢰는 존재를 거는 문제다.

믿음이 인식의 문제라면,

신뢰는 그 이상이다.

나는 타자 앞에서 취약해지는 것을 감수하며

그 관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신뢰(信賴)의 반대편에

무뢰한(無賴漢)이 있다.


없을 무(無), 의지할 뢰(賴), 사람 한(漢).

기댈 곳 없는 사람.

의지할 관계망이 없는 존재.


무뢰한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신뢰의 구조 바깥에 놓인 존재다.

기댈 수도, 기댐을 받을 수도 없는 사람.


그 존재가 막돼먹은 사람으로 귀결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신뢰가 없는 곳에서

관계는 성립하지 않고,

관계 없는 곳에서

존재는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믿음이 시간과 경험을 통과할 때 신뢰가 된다.


한 번의 믿음이 신뢰가 되지는 않는다.

믿음이 관계 속에서 반복되고,

그 반복이 검증될 때

비로소 믿음은 신뢰로 굳어진다.


그 검증은 특별한 순간에서만 오지 않는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딘 경험,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를 나란히 통과한 경험,

함께했기에 더 선명했던 기쁨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층층이 쌓여 신뢰가 된다.


신뢰는 믿음의 축적이다.

그리고 그 축적은 존재가 타자와 함께

시간을 통과해온 방식의 결과다.


그렇게 형성된 신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서가 기분과 감정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이듯,

신뢰는 믿음들이 쌓여 만들어진 관계의 지층이다.

그 지층 위에서 존재는 타자와 함께 세계를 살아간다.




신뢰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존재가 타자에게 기대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다.

타자 역시 신뢰를 보내는 이에게

자신의 신뢰를 허락한다.


그 허락 속에서

관계는 비로소 깊어진다.


존재는 신뢰를 통해

혼자가 아닌 방식으로

세계 안에 놓인다.


그것이 신뢰가

존재에 남기는 형식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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