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흔적 위에 서 있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 동안,
문병을 가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출근을 했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이 흐릿했다.
까닭을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이
하루의 표면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슬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형태가 없었다.
그저 떠올랐다.
내가 불러온 것도 아니었고,
내가 걷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기운은 그냥 거기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잠식돼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이었고,
그 현실이 마침내 도래했을 때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슬픔이 뿜어져나왔다.
그것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 감정을 막을 수 없었고, 막는 방법도 몰랐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슬픔은 책임감이 되었고,
책임감은 무거움이 되었으며,
그 무거움은 나를 책상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개념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남긴 감정이
그 방향을 스스로 찾아간 것이었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차갑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버지는 흔적이 되어 내 안에 쌓였다.
투병 기간의 형태 없는 무거움,
그날의 절망적인 슬픔,
그 이후 천천히 방향을 찾아간 감정들.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지층이 되었다.
삶에 대한 책임감,
죽음을 향한 탐구,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아버지가 있다.
나의 정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하며 형성되었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감정들을 살아낸 방식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흔적으로 남았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나를 형성하고 있다.
나는 기분 앞에서 무력했고,
감정 앞에서 무너졌으며,
그러나 그 감정의 방향을 끝내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지금의 나라는 형식이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흔적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