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이, 나를 믿었다.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 낙천적이에요."
걱정이 담긴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다만 나는, 별 이유 없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근거가 없었다.
긍정적인 미래를 약속하는 어떤 조건도,
내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어떤 증거도 없었다
그냥 믿었다. 나를.
돌이켜보면 그게 시작이었다.
믿음은 처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증명을 기다리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으며,
그냥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그렇게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에게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나에게.
그 손 내밈은 무모했다.
그러나 그것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의 삶은 그 믿음을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
원하는 대로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삶이 찬란하다고 느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고,
그냥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노력과 우연이 뒤섞인 채로.
처음에는 그 순간들이 놀라웠다.
근거 없이 믿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덜 놀라게 됐다.
놀라움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그 지점에서,
믿음은 조용히 신뢰가 되어갔다.
믿음이 경험을 만났고,
경험이 믿음을 두껍게 했다.
두꺼워진 믿음이 다시 다음 경험을 만들었다.
그 순환이 켜켜이 쌓여
지층이 됐다.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특별히 대단한 성취가 아니어도 됐다.
작은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인 날,
포기하고 싶었지만 버텨낸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봤던 순간들.
그것들이 층층이 쌓여
나는 나를 신뢰하게 됐다.
그 신뢰는 자만이 아니다
나의 한계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대기로 한 것.
그것이 신뢰다.
지금도 그 순환은 계속된다.
나는 나를 믿고,
그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한 걸음이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린다.
틀렸을 때도 나는 나에게 기댄다.
다음에는 다르게 해보자고,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나에게 말한다.
그 기댐이 쌓여 다시 믿음이 되고,
믿음이 다시 신뢰가 된다.
이 순환에는 끝이 없다.
신뢰가 완성되는 순간이란 없다.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신뢰하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뢰하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그 낙관이 때로 근거 없어 보일지라도,
나는 안다.
근거는 믿음 이후에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