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8). 선택, 결정 [에세이]

나는 내 선택에 결정의 무게를 싣는다

by 책 읽는 호랭이

어릴 때의 일이다.


나는 어머니께 부탁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학원에 보내달라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친구 한 명 없는 곳에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내밀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이 나의 각오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실존적 선택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누군가 권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골랐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골랐다.


스스로 공부하기를 선택했고,

책을 읽기로 했고,

운동을 시작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친구가 됐고,

직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인생을 함께 할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쌓였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쌓인 자리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선택을 그냥 선택으로 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고르는 순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고른 것이니 내가 책임진다고.

내가 원한 것이니 끝까지 가보겠다고.


그 말은 누구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선택을 결정으로 만들었다.


고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른 것을 향해 발을 내딛겠다는 의지,

그것이 더해질 때 비로소 선택은 결정이 됐다.

나에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그 한마디가 메워왔다.

내가 골랐으니, 내가 간다.




그렇다고 그 선택들이

언제나 옳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틀린 선택도 있었고,

후회한 순간도 있었다.


선택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르는 순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의지뿐이다.


그러니 선택 앞에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 두려움이

선택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고,

존재는 선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니까.


나는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골랐다.

그리고 고른 것에 의지를 실었다.

나의 자유로, 나의 의지로.


고르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고른 것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을 결정으로 만들어온 방식이다.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내가 고른 삶을 살고 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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