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선택에 결정의 무게를 싣는다
어릴 때의 일이다.
나는 어머니께 부탁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학원에 보내달라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친구 한 명 없는 곳에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것.
그것이 내가 내밀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이 나의 각오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실존적 선택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누군가 권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골랐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골랐다.
스스로 공부하기를 선택했고,
책을 읽기로 했고,
운동을 시작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친구가 됐고,
직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인생을 함께 할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쌓였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쌓인 자리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선택을 그냥 선택으로 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고르는 순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고른 것이니 내가 책임진다고.
내가 원한 것이니 끝까지 가보겠다고.
그 말은 누구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선택을 결정으로 만들었다.
고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른 것을 향해 발을 내딛겠다는 의지,
그것이 더해질 때 비로소 선택은 결정이 됐다.
나에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그 한마디가 메워왔다.
내가 골랐으니, 내가 간다.
그렇다고 그 선택들이
언제나 옳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틀린 선택도 있었고,
후회한 순간도 있었다.
선택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르는 순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의지뿐이다.
그러니 선택 앞에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 두려움이
선택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고,
존재는 선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니까.
나는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골랐다.
그리고 고른 것에 의지를 실었다.
나의 자유로, 나의 의지로.
고르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고른 것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을 결정으로 만들어온 방식이다.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내가 고른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