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Feb 14. 2023

라이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혼자는 외롭잖아요

후루야에게 가장 큰 축복은 같은 학년에 사와무라가 있는 거야.



몇 십 번이나 보면서도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대사. 처음 이 대사를 봤을 때의 나는 고등학생이라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노력하는 녀석이 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다. 나열했을 때는 차곡차곡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당연한 세상의 진리처럼 느껴졌고 와닿지 않았다. 그렇지, 뒤처지고 싶지 않으니까 같이 노력해 나갈 수 있구나. 그리고 5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나는 그저 내가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추악한 인간이라서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건전한 마음으로 번져나가게 되자 그게 순수한 라이벌의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지고 싶지 않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 승부욕은 욕구 중 하나라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는 탐욕스러운 것으로 인식됐다.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앞서기 위한 욕망을 순수하게 드러내도 되는 것인가. 그 욕망이 추악하거나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부류의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을 줄곧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노력하게 되는 순간이 뒤처지기 싫은, 탐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유치하고 지질한 승부욕만큼 나에게 적절한 연료가 없었다. 









라이벌. 스포츠물의 주인공이라면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라이벌이 존재한다. 라이벌은 어디에도 있다. 팀 안에도, 밖에도, 옆에도, 너머에도. 라이벌을 생각할수록 불타오르는 주인공을 보며 뜨거운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그러고 있었다. 




내가 이전에 운동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 그 사실을 나 자신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노력했다. 나는 우연찮게 한가했고 시간이 많았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독기도 있었고 격려해 줄 사람도 있었고.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졌다.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팡팡 쏟아지는 시간을 살았다. 머리 한 곳이 중독된 것처럼 찌릿찌릿했는데 그때의 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운동하러 가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상은 이미 빡빡하다. 모르는 사람들, 외국인들 사이에서 외국인이 되어서 깊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운동을 한다. 가끔 그게 나를 갉아먹는다는 생각도 든다. 놀랍게도 운동을 쉬고 있는 지금이 나에게 더 즐거우니까.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하기 싫은 날도 있다. 나는 연료통이 비면 쉽게 채워지지 않는 사람이라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그런 나를 다시 불타게 하는 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다. 



매일 같이 죽어라 운동하고 체력을 기르면서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기술들을 성공하는 언니들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질 수 없다는 뻔한 대사가 절로 나온다. 저 사람이 발전하는 동안 뒤처지고 싶지 않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못한다고 깔본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 뒤처진 채로 남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몇 년을 했음에도 달라지지 않는 허송세월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마구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싶다. 나를 다 연소해서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삶. 서로가 있어서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만큼 긍정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꾸준히 하는 건 지친다. 마라톤도 원래 혼자 달리면 지친다. 아무도 달리지 않는 길을 혼자 질주하는 건 언젠간 멈추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뛰어넘으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 이 길 끝까지 가보자는 무모하고 바보 같은 말이 성립하게 된다. 혼자가 아닌 사람은 강하다.



그 안에서 질투도, 시기도 당연히 필요하다. 질투하지 않으면 노력할 수 없다. 패배를 느끼고 분해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쏟게 되니까. 패배는 뼈저리고 잔인할수록 좋다. 다정하지 않은 패배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완전히 부서졌다 다시 일어난 사람은 더 그렇다. 부서질수록 단단해진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방향이 타인을 향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자신만을 향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만을 탓하며 현재 상황을 달라지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몇 개월동안 연습한 걸 한 번에 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신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노력해도 얻지 못할 수 있는데 그들은 당연하게 갖고 있는 거니까. 마음껏 부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여길 게 아니라 라이벌로 생각해야 한다. 부러우니까 따라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부족한 만큼 시간을 들인다.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 원래 정론인 법이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도 부러움을 털어내는 게 어렵다. 보고만 있어도 부럽다. 필요하지 않은데 저런 능력이 있다는 게 부럽다. 나를 한탄하게 되고 나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왜 나한테는 없는 거지? 그런 생각에 자칫하면 매몰되어버리고 만다. 그럴 때면 나를 다독인다. 그런 시간도 사치야. 그럴 시간에 노력을 했으면 뭐가 달라져도 달려졌을 텐데 바뀔 수 없는 일로 한탄해 봤자 시간낭비야.



내 라이벌은 오늘도 달려가고 있고 잠깐 서있는 나는 그들을 마음껏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함을 알고 있기에. 나의 부러움은 그들의 원동력이 되고 그래서 그들에게 부러움은 언제나 가감 없이 전한다. 대단하다, 멋지다, 부럽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솔직한 감상은 나의 감정을 배출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면 그들도 나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승자다. 누구와 함께 어디에 서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한 만큼 노력한다. 이 당연한 진리가 나에게 당연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험이 필요했는지. 이렇게 당연함을 알게 될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친숙해지고 넓어진다. 마음껏 분해하자, 마음껏 부러워하자. 그럼 나는 또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는 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