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

잃어버리지 않은 한 조각의 애틋함

by 한열음




가장 무난하게 주고받았던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마카롱일 것이다. 대학에 와서 특히 친구들과 많이 주고받았다. 고마움의 의미로 마카롱을 받았고 당이 필요할 것 같은 친구에게 마카롱을 선물했다.



형형색색의 귀여운 마카롱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 것을 좋아하지만 먹고 나서 물이나 우유가 생각나는 단맛은 좋아하지 않는다. 달기보다 목에 커다란 설탕 덩어리 하나가 걸려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 기분이 그리울 때가 있어서 또 마카롱을 먹는다.









여태 먹은 것 중 가장 달고 맛이 없었던 건 중학생 때 처음으로 먹은 마카롱이다. 아직도 마카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짙은 초록빛의 마카롱이 머릿속에서 빙글 뱅글 돌아간다.



북한군보다 중2가 무섭다는 말이 유행했을 시절에 중학교 2학년이었다. 나의 사춘기는 참 요란하게도 지나가서 아직도 엄마 아빠는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는다. 그때는 인생의 좋은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온갖 불행들이 달려들어서 나를 뜯었다. 내가 만든 불행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것들도 있어서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사람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 않게 됐다.


할 말 안 할 말 구분하지 않고 속에 있는 걸 참지 못해서 부모님과 많이도 싸웠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 꽤나 먼 지점까지 달려갔구나, 싶다.




아빠나 엄마나 나나, 때론 언니까지도, 이상한 곳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곤 했는데 아빠와 내가 느끼는 지점이 비슷했다. 내가 먹는 건 용돈이 아깝지만 다른 가족이 먹는다고 하면 집에 가는 길에 무언가를 사 가고 싶다거나, 길에서 파는 꽃을 보고 엄마에게 사다 주거나, 밤중에라도 급하게 선물이나 기념할만한 걸 사 오는 것 같은, 생각지도 않은 순간의 소소한 애틋함이었다. 이 애틋함은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작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집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결혼기념일이었고 그 날이 되면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를 사서 초를 불었다. 별 의미가 없는 촛불은 이 가정이 아직까지 평화로운 데에 대한 감사 인사 같기도 했다. 2013년의 결혼기념일에 나는 여전히 화가 많았고 아침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싸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애틋함을 이기지 못해서 엄마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갑 하나를 들고 홀로 집 근처 제과점으로 뛰어갔다. 4월 말은 5분 걸리는 거리를 뛰어가기에는 더운 계절이었다.



용돈으로 만원을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하는 시절이어서 케이크를 살 돈은 없었다. 그래서 카스테라를 사고, 생크림을 사고, 처음 보는 마카롱을 샀다. 비싸고 알록달록해. 초록빛 과자는 무슨 맛일지 상상도 가지 않아서 카스테라보다도 비싼 과자를 샀다.

나오는 길에 점원이 밀크쉐이크 한 잔을 건넸다. 새로 나왔는데 한 번 먹어보시겠어요, 그 하얀 아이스크림 같은 걸 단숨에 삼키고 다시 집으로 뛰었다. 맛있다고 얘기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착해서 혼자서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었다. 크림을 바르고 초콜릿과 마카롱으로 장식을 했다. 엄마 아빠는 케이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온순한 감정상태의 딸을 보고 감동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케이크는 분명 맛있는 것들로만 만들었는데 견디지 못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크림은 느끼하고 빵은 달고. 초록빛 마카롱은 너무 달았다. 물 한 모금이 아니라 한 잔은 족히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달고 딱딱했다. 엄마는 너무 달아서 파이다, 하면서도-너무 달아서 별로다- 계속 먹었다. 아빠랑 둘이서 열심히도 먹었다.





고등학생 때 다른 마카롱 집이 생겼다. 제과점에 있는 것보다 색이 더 다양했다. 파란색도 먹고, 분홍색도 먹었다. 그렇게 달지 않아서 가끔씩 사 먹었다. 너무 달게 느껴질 때는 여러 가지 맛을 사서 친구나 언니와 나눠먹었다.



처음 만났던 소중한 친구가 마카롱을 선물로 줬다. 두 번째 수능을 치기 전에 친구가 힘내라고 마카롱을 줬다. 같이 수업을 듣던 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카롱을 줬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마카롱을 들고 왔다.


내가 아마 마카롱을 좋아한다면 그 안에 있는 마음을 좋아하는 거다. 반가움, 응원, 고마움, 애틋함. 여러 마음들이 그 동그란 오색빛깔의 과자 안에 담겨서 흘러들어온다. 그게 너무 달다면 마음을 너무 많이 담은 탓이다. 그 마음이 그리울 때마다 마카롱을 찾는다. 이번엔 어떤 마음이 들어있을까.







내 안에 꼭꼭 담은 수많은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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