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

상상을 맛보다

by 한열음



관광지라고 불리는 곳들에 가면 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먹거리들을 파는 노점상과 기념품 가게들, 안내 책자나 가이드북.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집은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나는 어딜 갈 때마다 기념품을 갖고 싶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기념품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고, 혹은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나면 엄마 아빠는 기념품을 사준다고 달랠 정도였다. 특색 있는 것들보다 내 마음에 드는 여행지의 물건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들은 안동 하회마을에서 사 온 자개 거울, 경주에서 사 온 전통 우산, 선비촌에서 샀던 전통 부채 등인데 지금 떠올려도 예쁜 물건들이다. 어쨌든, 기념품을 손에 넣을 수 있던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원활하게 얻을 수 있던 것은 '음식'이었다. 예를 들면, 솜사탕 같은.















사실 솜사탕은 관광지가 아니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솜사탕이 보일 때마다 사달라고 졸랐다. 내 안에서 솜사탕은 여행의 상징인 동시에 축제의 상징이요, 잔뜩 부풀려진 모양새가 행복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식탐이 많아 무엇이든 먹고 싶다고 했다는 나는, 하늘의 구름이 그렇게 탐이 났다. 파란 하늘을 채우고 있는 저것들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고 비행기를 탄 것도 10살이 처음이라 가까이서 본 적도 없었다.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가까워질 것 같았지만 그곳에 올라서도 절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새털구름, 뭉게구름, 구름의 종류를 열심히 외우면서 얘네는 무슨 맛이 날까 곰곰이 생각했다. 생김새가 비슷한 솜사탕 때문에 자꾸 달달하고 바스라지는 맛이 날 것 같아서 상상하는 것도 그만뒀다.






솜사탕은 하늘의 구름을 조금 떼다가 색을 입혀 만든 것 같다. 닿지 않을 구름처럼 입에 넣으면 사라락, 하고 녹아 없어진다. 분명 남아있겠지만, 없어진다.



익숙해졌겠지만 하나하나 되새기며 음미해보면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다. 날개옷을 되찾은 선녀처럼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군다. 달콤함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이게 하늘의 맛인가, 싶은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어느 풍경이든 솜사탕이 더해지면 아름답다. 몇 번이나 찾아갔던 벚꽃축제에서도, 친구와 처음 간 한강에서도, 어릴 적 주말마다 뛰어놀았던 운동장에서도, 솜사탕이 있으면 새롭게 느껴진다. 특별함을 더해준다.


분홍빛, 푸른빛, 주황빛, 초록빛, 보랏빛, 하얀빛. 수많은 솜사탕들이 언제나 나를 반긴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내가 찾아갔을 때의 일이었고 둘째는 내가 찾아가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솜사탕을 마음껏 먹은 날이었다. 군것질은 하루 한 개가 원칙이던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벚꽃 축제마다 우리 외가 친척들은 항상 모였는데 큰 외숙모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원하는 만큼 솜사탕을 사줬다. 그 때는 큰 솜사탕이 유행할 때여서 다른 사람들은 반도 못 먹고 버리는 솜사탕을 혼자서 두 갠가 세 개를 먹었다. 달콤함이 사라질까 봐 겁내지 않아도 되다니! 솜사탕과 함께 보는 벚꽃도 더 달콤했다.





그리고 재수하던 때, 집에서 꽃도 보지 못하고 홀로 공부하던 나를 위해 엄마 아빠가 솜사탕을 사 왔다. 커다란 솜사탕을 사놓고 녹을까 봐 오는 길 내내 에어컨을 틀면서 왔다며 부모님은 고충을 토로했지만-축제 주간이어서 차도 막혔다고 한다-정작 난 비닐에 둘러싸인 솜사탕을 받아 들고서 그게 뭐라고 웃음이 나왔다. 왜 하필 솜사탕이냐고 했더니 좋아하지 않냐고 했다. 좋아하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랜 길을 달려온다고 솜사탕은 겉이 축축해져 있었지만 속은 보슬보슬했다.







어떤 길이든 지루해진다면 솜사탕을 찾아보자. 구름 대신 닿을 수 있는 달콤함을 맛보자. 땅 위의 구름을 들고 걷는 기분이라면, 언제든 그 구름을 한 입씩 맛볼 수 있다면, 어떤 길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몽글몽글한 하늘






keyword
이전 24화마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