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팬케이크

부풀린 만큼 쉽게 터진다

by 한열음





열아홉 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억누르고 좋은 결말만을 상상하던 나이. 7월에는 논술시험이 있었고 그걸 핑계로 서울에 놀러 갔다. 언니네 집에서 머물면 되니까 올라간 김에 서울구경도 하고. 엄마의 제안은 거절하기엔 달았다.



서울은 나에게 너무 멀었고 무서웠다. 거리만큼 두려움도 컸다. 가족여행으로 갔던 게 열한 살 정도였는데 그때도 우와, 우와, 하고 감탄의 연속이었다. 두리뭉실한 기억들만 남아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눈이 왔었고 서울 사람들이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게 신기했고, 아파트도 멋있었고 빛이 꺼지지 않았다. 티비에서 보면 신촌이나 홍대, 명동을 놀러 다니는 게 부러웠다. 도대체 뭐가 있을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열아홉은 어렸다.




서울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서 언니에게 달려갔다. 어디를 가고 싶냐는 물음에 신촌, 홍대, 명동을 외쳤다. 서울의 여름은 너무 더웠다. 무슨 일인지 본래 따뜻한 남쪽보다 더웠다. 날씨가 더우니 오후에 나가자고 했다. 분명 그 제안엔 언니가 야행성인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거다.





오후 4시쯤에 집을 나섰다. 홍대와 명동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경로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 다행히 언니는 평소에는 친절하지 않지만 창원에서 올라온 동생을 위해서 한 번 정도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홍대와 명동을 모두 돌아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특히 기대하던 건 디저트 가게였는데 창원에는 예쁜 카페라는 개념이 별로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다. 다들 초등학생 때 봤을 꿈빛 파티시엘을 고등학생에 봤고 온갖 디저트에 잔뜩 사로잡혀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홍대의 디저트 사진들을 보면서 서울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언제든지 먹으러 갈 수 있다는 게 부러워서 서울로 대학을 가면 매주마다 케이크를 먹으러 다녀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중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명동에 있는 i사의 수플레 팬케이크 집이었다. 단어부터가 몽글몽글했다. 수플레, 촉촉하고 폭신하고, 너무 달지 않은 맛이 날 것 같은 발음이다. 눌러보고 싶게 부푼 모양이 호기심을 일으켰다. 한 입 베어 물면 폭신한 기분이 들어서 입 속까지 녹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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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았고 가격은 비쌌지만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끈따끈한 수플레 팬케이크를 받아 들고 나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한 입만큼 잘라서 입에 넣었을 때는 한숨이 나올 뻔했다. 내가 풍선이라면 분명 바람 빠지는 소리, 푸쉬이이익, 하고 김새는 소리가 났을 거다. 적어도 마음에서는 그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수플레 팬케이크는 그저 계란빵 맛이었다. 몽글몽글한 계란구이를 먹는 기분. 입에서 계란 맛이 가시지 않았다. 언니도 별로인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입에 구겨 넣고 카페를 떠났다.





그래도 그 후에는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밤은 시원했다. 다들 그걸 아는지 축제의 날처럼 사람이 많았다. 매번 이런 인파가 모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의 기억이 강렬해서 아직까지 수플레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언젠가 또 기대하면서 그 따뜻한 접시를 받아볼 날이 있겠지. 이제는 무슨 맛인지 알면서도 괜히 거기에 다른 생각들을 덧대고 덧대서, 또 먹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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