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끌치유 Oct 19. 2023

아이에게 암을 전달하는 법

아픈 엄마도 괜찮아

암 진단을 받은 첫날부터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머리가 삭발이 된 오늘까지도 아이에 대한 걱정은 한 시도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아픈 엄마를 보고 아이가 놀라거나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는 건 내가 원치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아이가 내가 암에 걸린 사실을 


‘엄마가 아플 수도 있구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주길 바랐다. 


나는 어릴 때 엄마의 힘들어하는 모습, 가난한 삶, 부모의 불화 등을 보고 자라면서 늘 걱정이 많았다. 마음이 편안해야 할 어린 시절에 너무 걱정이 많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으로 자랐고, 아무 일 없이 편안한 것이 되려 불안했다. 


정글에서 사자에게 언제 잡혀 먹힐지 몰라 쫓기는 사슴처럼 불안에 항상 대비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 성향이 내 몸속에 암이 자리 잡게 해 준 또 하나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이는 아이답게 순수하고 맑고 행복하게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어른이 아이들을 불안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줄 의무가 있듯이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괴로움, 슬픔, 가난, 고통, 환멸 등의 부정적인 세상의 모습을 전부 보고 자랄 필요가 없다.


어느 시기가 오게 되면 저절로 알아질 삶의 어려운 면들을 굳이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게 해서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세상은 살기 힘든 것이라는 인식이 주입되면 아이는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억눌린 세상 속에 갇히게 된다. 


부모는 절대적으로 아이가 세상과 어른을 걱정하면서 자라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양육 철학이다. 


다른 건 어떻게든 내색을 안 할 수가 있지만 머리가 삭발이 되면 아이는 놀랄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는 항암 치료가 시작되기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디너 톡을 시작했다.  

 

“윤하야, 엄마 오른쪽 가슴에 작은 혹이 생겼어. 얼마 전부터 가슴에 구슬 같은 게 잡혀서 병원에 갔더니 주사도 맞고 수술해서 빼내야 된데. 근데 걱정할 건 없고, 치료하면 낫는 병 이래.” 


“그래? 엄마 힘들겠다.”


제법 공감능력이 있는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근데, 치료 약이 좀 독해서 그 주사 맞으면 머리카락도 다 빠진데. 너 엄마 빡빡머리 되면 어떨 것 같아?”


 “어? 머리카락이 전부 빠진다고?!... 한 올도 없이?????”


“어”


좀 놀라는 듯하던 아이는 이내 씹던 밥알을 삼키더니,


“좀 이상하긴 할 것 같은데, 난 괜찮아. 엄마가 속 상하겠지. 근데 진짜 대머리 되는 거야?”


“응. 엄만 머리카락 없는 거 하나도 안 속상한데, 윤하가 엄마를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될까 봐 그건 좀 염려스러워.” 


“엄마 가슴에 생긴 종양을 사람들이 암이라고 부르거든… 혹시 암이 뭔 지 들어봤니?”


“TV에서 본 것 같긴 한데, 머리 빡빡 밀고 병원 복 입은 사람들이 암에 걸린 건가?”


“어 맞아. 항암 치료라고 하는데, 그 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빠져. 치료약이 독해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건데 그래서 약이 잘 듣는데… 그리고 엄마 식습관도 전부 바꿔야 된대. 너도 알다시피 엄마 그간 고기 너무 많이 먹었잖아. 마블링 엄청 많은 소고기. 그리고 와인도... 우리 프라이드치킨도 엄청 많이 시켜 먹었지? 그땐 참 행복했는데 말이지…"


"기름진 음식 너무 많이 먹고 잠 안 자고 운동 안 하면 암이라는 병에 걸린대… 지금까지 엄마 운동이라고는 안 했잖니… 잠도 잘 안 자고, 치즈, 소고기, 초콜릿 너무 좋아하고…. 20년 넘게 그런 것들 먹어서 걸린 병 이래…근데 잘 됐어. 이 참에 너도 같이 식습관을 확 바꿔버리자.” 


열 살이 된 아이는 다행히 암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고, 코로나 시대를 함께 거쳐가면서 병으로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죽음이란 단어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아이는 건강하고 편안해 보이는 나를 보면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고, 지금으로서는 엄마의 삭발이 가장 두렵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보였다. 


‘애들은 애들이다.’ 싶었다. 


엄마는 대범해야 한다. 아이 앞에서 울고불고, 불안에 떨면 아이는 세상의 전부가 흔들리게 된다. 아이의 전부인 세상, 엄마가 무너지면 안 된다. 


내 엄마가 나에게 그러했듯, 나 또한 내 아이에게 별 일 아니라는 듯 내 병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앞으로 치료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덤덤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가 치료에 전념하는 동안 윤하는 지금처럼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늘 윤하가 하던 대로 일상을 유지하면 돼. 할머니가 학교 픽업은 해주실 거고, 엄마도 병원에 갈 때 제외하고는 집에 있을 테니까 윤하가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어. 엄마는 건강해지려고 항암치료를 받는 거니까 그건 윤하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알겠지?” 


다행히 아직 암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는 엄마가 좀 아픈가 보다 정도로 이해를 했고, 내 머리카락이 전부 빠질 거라는 사실에만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여느 날의 저녁 식사 때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엄마가 죽음이라는 접점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이 아이를 위해 살고자 했으므로 죽을 거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역으로 한만청 박사의 말대로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생명의 연장을 위해 항암 치료를 받고 일단 종양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꽤나 많이 성장한 아이에게 엄마의 투병 의지를 알리고 어머니를 포함, 아이도 함께 아군이 되어 내가 항암 치료를 무난히 받을 수 있도록 팀원들의 정신 무장까지 모두 마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