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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Oct 19. 2023

백혈구를 지켜라!

면역의 메커니즘

혈액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던 종양내과 의사는 2차 항암약 투여를 위한 백혈구 및 호중구 수치가 양호하다며 2차 항암약 투약을 바로 진행하자고 했다.


1차 때 부작용이 어땠냐고 묻길래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고 말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지 두 번째 투약 일에는 주사실로 당차게 걸어갔다. 처음엔 아직 겪어 보지 못 한 부작용이 두려워서 겁이 났지만 구토, 오한, 발열, 탈모, 모두 겪어 보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특히 머리를 밀고 나선 마치 모든 번뇌와 괴로움 속에서 해탈한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탈모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머리카락만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욕심이 있었지만, 다 밀어버리고 나니 항암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겸허해졌다.


머리카락도 다 밀었는데, 더 이상의 고통이 찾아오면 그저 스님처럼 심호흡을 하며 다스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항암치료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아직 젊어서 그럴 수도 있었고, 1회 차 밖에 진행되지 않아서 아직 화학약물 누적의 부작용은 겪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1, 2회 차만 같았어도


‘항암 뭐 이까지 꺼, 별거 아니네….’


하고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2회 차 항암 약 투여 후에도 약간의 구토와 구내염, 체력소실 정도의 부작용만 있어서 마지막 한 주 남겨 놓고는 골프도 치러 나갔다.


항암 약 투약 후 2주 간은 꼼짝 못 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지낸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3주 차가 되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단, 일과 관련되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일체 만나지 않았고, 만나면 마음이 편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렸다. 3차 항암 때까지도 투약 2주 후엔 정상 컨디션이 돌아와서 골프 약속을 한 차례 잡았다. 내가 항암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동반 플레이어들이 멤버가 너무 좋으니 하루 더 치자며 그다음 날도 갑자기 일정을 잡아 버렸다.


항암 중이라고 말도 못 하고, 어영부영 분위기에 휩쓸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다른 일이 있다고 핑계라도 댔어야 했는데 나도 수술 후에는 감시 림프절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니 골프는 치기 어려워질 것 같아서 공이나 실컷 휘두르자는 마음으로 흔쾌히 다음 날 18홀을 또 돌겠다고 한 것이다.


18홀을 다 돌고 나면 건강한 일반인들도 피로를 느낀다. 골프 선수들도 이틀 연속 경기엔 출전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는 기초 체력이 없는 데다가 항암이 3차까지 진행되니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동반 플레이어들이 배려가 넘치는 분들이라 유쾌하게 둘째 날도 플레이를 할 수 있었지만 9홀 정도 돌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몸에서 계속 신호가 오는 듯했다.


 ‘너 무리하고 있어. 이러다 큰 일 나겠어!’


그 후, 4차 항암약을 투약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서 4차 항암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양내과 의사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상하다, 왜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 낮아졌지? 지난번까지는 문제없었는데…”


아차, 싶었다. 건강한 사람도 골프를 이 틀 연장 치면 골병이 날 것이다.


종양내과 선생님이 항암 중에 내가 이 틀 연속 18홀을 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서 기절을 했을 것이다. 원인은 내가 알고 있으니 의사에게는 함구했다. 이런 세세한 사항들을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공유하지 않으니 대다수의 의사들은 원인은 모르고 수치로 나온 결과에만 의존하여 환자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예정되어 있던 항암치료는 못 받으시고요,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가세요. 항암치료는 1주일 연장할게요.


가슴이 철렁했다. 8번의 선 항암을 예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벌써 1주일 연장되고 말았다.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 중요하다니…’


백혈구 수치는 내가 무리해서 떨어진 것이 확실하지만 항암 약 투여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얼른 포털에서 찾아보았다.


백혈구는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이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담당한다. 호중구는 백혈구 내에 있는 세포로서 전체 백혈구의 54~62%를 차지하는데 우리가 아는 백혈구가 하는 역할 중의 대부분을 호중구가 담당한다.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골수가 타격을 받게 되면서 호중구 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백혈구의 정상수치는 보통 100만 분의 1리터당 4000~1만 개라면 호중구는 1500개를 기준으로 삼는다. 호중구 수치가 줄어들면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을 잡아먹지 못하고 노폐물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항암 중에는 날음식과 젓갈 류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되고 사람들마다 항암 중에 가려야 될 음식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일단 감염의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항암 치료 중에 감기나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위험한 이유도 바로 이 호중구 수치가 몸속에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을 막아낼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혈구 속의 호중구가 표준 수치 이상 있어야 항암 중에 염증이나 감염이 생기게 되면 면역세포가 저항을 할 수 있게 된다. 백혈구 수치가 없으면 세균감염이 심해져 패혈증까지 올 수 있고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항암 중에는 호중구 수치가 낮아지면 추가로 항암 약을 투약받지 못하는 것이다.


무리하면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나는 그때 몸이 피곤한 것을 스스로 느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기분에 맞춰주느라 거절을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잘 맞추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향이 20대의 나를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되도록 만들었다.


거절을 잘 못하고, 남의 부탁은 잘 들어주면서도 정작 나는 사람들에게 요구나 부탁은 별로 한 적이 없이 살아왔다. 서비스 직에 오래 몸 담고 있으면서 나는 늘 ‘예스 걸, 긍정 걸’이었다.


내 기분이야 어떻든 사람들 기분이 유쾌해지도록 분위기를 맞췄고,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내 기분을 맞추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 나는 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해 주거나 위로해 주려고만 했지, 정작 내 기분을 돌보거나 내 감정을 들여다보며 위로해 주거나 보살펴 준 적이 없었다.


‘젠장, 지난 40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병이 찾아왔지!’


항암 치료 중에 지속적으로 암에 걸린 원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래야 항암 치료가 끝나고 나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만약 이전의 삶의 패턴으로 되돌아간다면 암세포가 내 몸에 다시 번식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암세포가 증식하게 된 원인을 모두 찾아내어 치료가 끝나면 원인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어야 내 몸이 살아날 것이다.


다들 스트레스가 암의 주요 원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긍정적인 편이라 내가 스트레스가 없는 줄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은 예민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고 늘 웃고 다녀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오랜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화가 날 때에도 웃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몸이 힘들거나 기분이 언짢아도 나는 늘 웃었다. 그래야 된다고 교육받았고, 실제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냥 웃어 버리면 별일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상처받고 지친 내 마음도 위로해 주면서 살았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살뜰히 챙겨주지를 못하며 살아왔다.


‘힘들었지 마음아, 웃을 기분 아닌데 웃느라 수고했어. 행복하고 즐거운 척하느라 힘들진 않았니? 나는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느라 네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타인들에게 웃어줬던 것을 알아. 네 감정을 살펴보지 못해서 미안해. 지치고 힘들면 남들한테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아. 좀 덜 웃어도 괜찮아. 씩씩하고 즐거운 척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하니까… 내가 늘 네 곁에 있어줄게 마음아.’


라고 위로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 챙김에 대한 공부는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 감정은 보살피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내 몸 안에서 일어났을 힘든 감정을 정화시키지 않고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온 것이 상당 부분 독소가 되어 암세포가 된 것을 단박에 깨우치게 되었다.


백혈구 수치가 모자라서 4차 항암을 예정대로 진행할 순 없었지만 대신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몸이 피곤하다고 느낄 때에는 무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리를 하게 되면 백혈구 수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몸 소 체험했으니, 역으로 나는 암에 걸리게 된 또 하나의 원인도 발견하게 되었다.


림프계의 백혈구는 암세포를 잡아먹는 T세포와 NK세포를 내포하고 있는 림프구가 30%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리를 하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백혈구 내의 림프구 수치가 감소하게 되니 암세포와 싸울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하루에 5000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성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암에 걸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각자의 몸 안의 면역 세포 내의 NK세포의 활성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해서 또래 친구들보다 잔병치레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백혈구 내의 면역 세포가 튼튼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과자를 입에 달고 살았고, 멀리서 통학을 하느라 늘 잠이 부족하고 피곤했다. 시험 기간에는 평상시 안 하던 공부를 벼락치기하느라 밤을 새기가 일수였고, 급식이 없던 시절에 도시락 만으로 영양이 충분히 채워졌을 리가 만무하다.


이렇듯 면역 세포가 튼튼해 질래야 질 수가 없는 환경에서 근 40년을 넘게 살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졌다. 나쁜 식습관, 나쁜 수면습관에서 온 피로감이 내 몸의 면역 기능을 저하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암세포는 수년간 내 몸속을 떠돌아다니다가 유방 한쪽에 공간을 차지하고 뿌리를 내린 것이다.


항암치료의 과정은 내가 유방암에 걸리게 된 원인을 찾아내고,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백혈구 수치가 모자라 항암치료가 한 주 연기되면서 나는 항암 치료가 끝나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준수 사항들을 적어 놓았다.


1.     절대 무리하지 말 것!


무리하면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현명한 발견인가. 비단 환자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며칠간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를 하면 몸이 으슬으슬 거리면서 감기에 걸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깊은 수면으로 잘 쉬어서 회복에 성공해 내지 못하면 감기 바이러스에 전염되거나 또는 알레르기가 생기는 등의 염증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그 역시 우리 몸이 과로를 하게 되면 백혈구 내 호중구나 림프구가 약해지면서 면역세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 감기가 유행하는 환절기마다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감기(바이러스)에 걸렸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늘 여성질환(염증)도 갖고 살았다.


출산 후 양육으로 매일 밤 잠을 설치고부터는 생전 앓아본 적이 없던 알레르기가 생겼는데, 조미료나 육류만 먹어도 온몸이 간지럽고, 속 옷 라인이 부풀어 올라 속 옷을 입지 못 할 정도였다. 병원에 가면 늘 항 히스타민계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그 약들은 잠시 잠깐 간지러운 증상을 없애줄 뿐, 약의 효과는 지속되지 않았다.


간신히 알레르기 전문 한의원을 찾아가 한의사 말대로 간의 열을 식히는 한약을 한 달 반 정도 먹고 나니 신기하게도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졌다. 한의사는 간이 몸속의 독소를 해독하지 못해 몸 밖으로 알레르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병의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간의 열을 내리는 약재를 처방하겠다고 했으며, 약을 복용하는 동안, 커피, 육류, 조미료를 모두 끊으라고 했다.


보통 한약은 10일 분을 1재라고 하는데, 보름을 기준으로 1재의 약을 받아먹었다. 1재를 다 먹고 났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의사에게 얘기했더니 한약은 보통 3재는 먹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달간 2재를 먹고 나니 정말 신기하게도 알레르기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그땐 한약이 알레르기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내가 한약을 먹는 동안 고기와 커피를 끊고, 조미료가 들어간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일절 먹지 않아서 림프구의 해독작용이 용이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약도 결국엔 약이고, 내 간이 독소를 해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면 한약도 간에서 해독하느라 간이 힘들지 않았을까? 실제로 양방에서는 한약을 먹은 환자들의 간 수치가 올라있는 것을 데이터 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양방의사들은 한약은 물론이고 건강 보조 식품도 절대 권하지 않는다.


나의 몸은 잔병치레,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통해 이미 몸속에서 면역이 약해져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는데 그 신호를 무시한 채 살아서 암이라는 큰 병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암은 지금부터라도 내 몸을 잘 보살피라는 의미로 찾아온 손님이다. 손님을 잘 모시고 있다가 잘 어르고 달래어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의 최종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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