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구 수치를 높이는 비법
백혈구 수치를 늘리는 주사를 맞은 후 4차 주사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쉬었다.
이번에도 백혈구 수치가 적정치 이하로 나오면 또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공을 치고 제주로 내려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에 일주일 안에 백혈구 수치를 정상수치로 올려주는 게 나의 미션이었다.
도대체 백혈구 수치는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
주사는 맞았지만 뭔가 백혈구 수치를 올려줄 수 있는 음식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온라인 검색을 했더니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의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라고 나와있었다. 그건 너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라서 나름의 식이요법을 고안해 냈다.
기력이 없으니 우선 고기를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고기가 먹고 싶었다. 항암 기간 동안 상피세포가 허는 바람에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잘 못 시키니 단백질도 계란과 생선위주의 비교적 소화가 잘 되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항암 중인 환자는 고기든 면류든 빵이든 가리지 말고 뭐든 잘 먹어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사들도 이야기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나니, 뭐든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기름진 음식은 환자에게 좋을 것이 없어서 마블링 잔뜩 낀 꽃등심 대신 지방이 없는 소고기 안심으로, 숯불구이 대신 로스구이로 바꾸어 암세포를 증식시킬 만한 조건들은 최대한 줄였다.
진단 후부터 소고기를 끊었더니, 사는 낙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먹는 낙으로 살아온 평생인데, 이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지 못한다니 서럽기까지 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라고 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연하고 지방이 적은 소고기 안심을 챙겨 먹었다. 지금까지는 기름진 특수부위만 먹었었는데, 안심이 되려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름진 소고기가 입 안에서 녹는 느낌이 좋아서 평생 마블링 있는 고기만 찾아서 먹어댔다. 그것들이 내 혈관을 기름으로 떡 칠을 해 놓았을 생각만 해도 끈적한데 말이다.
백혈구 수치를 늘려야 하는 1주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음식을 가능한 가리지 않고 먹었다.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이 바로 내 몸에서 필요한 음식이라는 소신을 갖고, 백혈구 수치를 늘리기 위해 영양이 많고 먹고 싶은 음식 위주로 식단을 조절했다.
소고기 안심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루 150그람 정도 먹었고, 된장찌개, 소고기 미역국은 어머니가 번갈아 가며 식탁에 내어 주셨다. 늘 그렇듯이 해독을 위한 동치미 국물은 매 끼니마다 식탁 위에 놓여있었고, 녹황색 채소가 곁들여진 샐러드도 항상 식전 애피타이저로 먹었다.
과일은 매일 아침에 사과 한 개를 껍질 째 먹었는데, 뜬금없이 평소 잘 먹지 않는 과일인 바나나가 먹고 싶어서 포털에서 찾아보니 바나나가 백혈구 수치를 높여주는 음식이라고 나와있었다.
유레카! 우리 몸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이라는 말이 진리였다. 우리의 몸은 정말 신비로운 우주임에 틀림없었다. 스스로 정화하고 스스로 회복해 내는 회복탄력성이 있다. 이런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암이라는 큰 질환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나는 다시 한번 항암이 끝나면 지켜야 되는 사항을 적어 놓았다.
2.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할 것!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량 챙겨서 먹고, 피곤하면 자고, 아프면 쉬는 게 내 몸의 면역 세포를 증식시키는 지름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어떤 음식도 배부르게 먹지는 않았다. 과식은 간, 췌장, 소화기관에 모두 무리를 주는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방, 밀가루, 설탕, 화학조미료는 염증의 원인으로 규정지어 가능한 섭취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간 잘 쉬고, 잘 먹고, 읽고 싶던 파친코를 영문, 한글판을 번갈아 가며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백혈구 수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나는 4차 항암치료를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