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총 선 항암 8차 중에 4차까지 맞는 아드리아마이신과 싸이클로포스파마이드 (AC)의 조합 약제를 맞고 나면 중간 검사를 진행한다.
화학약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인데, 처음 진단받았을 때 직경 2.6센티였던 암세포의 사이즈가 4번의 항암 치료 후 1.6센티미터로 약 1센티미터가량이나 줄어들어 있었다.
표정이 별로 없는 주치의는 아주 오랜만에 생기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약이 효과를 잘 내주고 있다고 했다. 이 정도 예후라면 선 항암 후 부분절제 수술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4차례 남아있는 항암에서도 종양의 사이즈가 줄어들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암세포의 사이즈가 1센티미터나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수술 전에 모든 암 환자들의 희망인 종양의 ‘완전 관해’ 가능성도 꿈꿔볼 수 있었다.
5차 항암부터는 약제가 바뀌어서 도세탁셀이라는 항암 약으로 남아있는 4회 차를 맞게 되었다. 도세탁셀이라는 약제는 보통 유방암, 폐암, 위암, 두경부암, 난소암, 식도암, 전립선암의 치료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 필요한 세포 구성 성분 중 하나인 미세소관을 안정화 및 과발현 시켜서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저이다. 말하자면 암세포의 세포분열을 막아주는 약인 것이다.
여느 화학약품과 마찬가지로 암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도 공격하기에 부작용이 따른다. 주요 부작용으로는 식욕부진, 메스꺼움, 구토, 설사, 구내염, 탈모, 마비감, 전신권태감, 발열, 부종 등이 보고되었다.
이미 4차례 AC를 경험하고 나니 도세탁셀도 부작용은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만만하게 보았다. 유방암 표준 치료를 경험한 환우들의 말에 따르자면 어떤 사람들은 AC의 조합이 부작용이 더 심했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도세탁셀이 더 힘들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 약품도 몸에 들어가서 똑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AC로 약 1CM나 종양의 사이즈가 줄었으니 도세탁셀도 적어도 0.5CM 이상은 종양의 사이즈를 줄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지난번 까지는 의자에 앉아서 항암 약을 투여했는데, 이번 약부터는 누워서 약 한 시간 반에 걸쳐 투약을 받게 된다고 했다.
우선은 부작용 방지약이 먼저 들어왔다. 항 히스타민계의 이 약물은 AC때에도 맞을 때마다 항문이 따끔거렸는데, 유독 5차 항암 때부터는 세포들이 예민해진 탓인지, 더 따갑게 느껴졌다. 그 따끔거리는 시간이 1분 내외로 길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이 주는 공포감은 정말
‘이러다 항문이 찢어지겠군!’
이었다.
약이 혈관을 타고 내려가다가 항문의 끝자락에서 핵폭탄을 터트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드는 주사였지만, 항암 약의 부작용을 억제해 주는 고마운 약제이므로 고통이 줄어들 때 즈음엔 올라오는 짜증을 가라앉히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똥꼬가 잠시 아프고 나면 나는 일주일 안에 찾아올 구토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며, 발열과 오한 및 진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작용 억제제의 투약이 끝나고 난 후 드디어 도세탁셀이 혈관을 타고 몸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색깔은 아드레아마이신처럼 빨갛지 않고 투명해서 그냥 ‘수액을 맞는다’라고 생각하고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옆 침대에서 항암 약을 투약받고 있는 커플의 대화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6인실 병실에서 커튼을 치고 환자들이 화학약물을 투약받고 있었고, 모두 항암 치료 중인 환자들이라 병동은 숨소리마저 들리는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바로 옆 침상에서 보호자로 계심 직한 여자분이 투약을 받고 있는 환자인 남성분한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너무 예민해서 암이 생긴 거야. 그 성격 좀 고치고, 마음 좀 편히 갖고 살아.”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래. 하나님한테 믿고 맡겨봐. 전부 들어주실 거야.”
어쩌고 저쩌고…. 같은 이야기를 한 시간 내내 하길래 도세탁셀을 투약받는 내내 한숨도 쉬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좀 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인데, 환자의 보호자가 애정을 갖고 하는 이야기들이라 그냥 떠들게 두었다. 잔소리라는 것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듣고 있자 하니 여자분이 하는 이야기가 꼭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반성까지 하며 들었다.
‘그래, 내 성격이 좀 예민하긴 하지.’
‘마음을 편히 가져야 돼.’
‘지금까지 냉담하며 살았는데 하느님이 벌주셨나?’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신은 그런 분이 아니야. 내가 병을 키우는 생활방식으로 살아와서 그런 거지!’
라고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다 보니 링거에 걸려있던 도세탁셀이 거의 다 투약되었다.
지금까지의 경험 상, 투약받은 당일 날은 거의 부작용이 없어서 당일 비행기로 제주로 돌아오는 예약을 했다. 코로나가 한 창 유행이었고, 나라에선 방역의 일환으로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식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기저질환 환자들에게는 백신 접종을 더욱 권고했지만, 항암 중이었던 나는 백신이 내 몸에서 효과를 낸다는 보장도 없었고, 백신 부작용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코로나 백신 접종은 받지 않았다.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밖에서 밥도 먹지 말라고 하니 여기가 북한인가 싶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백신 접종에 대한 선택권도 주지 않고, 무조건 맞으라고만 부축이니 기저질환 환자로서는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건강한 사람들도 사망하는 사례들도 종종 있었고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으니 식당에도 가지 말라는 국가의 지시에 따라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삶은 고구마 한 개와 사과 한 개, 바나나 한 개를 가방에 챙겨 와서 공복에 해야 되는 검사가 끝나면 따뜻한 물 한 사발과 함께 먹었다.
암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사회에서도 격리를 당하는 느낌은 썩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국가에서 내 대신 방역을 이렇게 열심히 해 주니 내가 코로나에 걸릴 위험은 없겠다며 안심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국민성은 정말 대단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고, 국가에서 백신을 맞으라고 하면 별 저항 없이 대부분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다.
덕분에 나는 선 항암을 8차례 하는 근 6개월 간의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코로나 감염도 없이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항암을 시작했던 2021년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치명률이 매우 높았던 해이다. 다행히 미국에서 백신을 개발해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긴 했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백신이라 무조건 신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안전하다고 증명된 백신도 항암 중에는 맞을까 말까인데, 단 1년 여 만에 만들어진 백신의 임상 실험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암 환자는 먹는 음식 한 가지에도 신경을 쓰게 되는데 하물며 백신과 같은 약물은 독한 항암 약으로 인해 면역이 무너진 몸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잘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은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매스컴에서는 ‘기저질환 환자는 더욱더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근거가 없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는 멀쩡히 잘 살고 있던 말기 암 환자가 백신을 맞은 후 돌연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그 또한 백신이 원인인지 암이 원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내 몸과 마음이 코로나 백신을 맞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왔기에 나는 내 직감에 따랐다.
항암이 5회 차로 접어드니 눈에 띄는 부작용이 생겼는데, 피부가 굉장히 얇아진다는 것이었다. 특히 말초 신경세포가 전부 약해져서 손바닥, 발바닥이 아주 얇아졌는데, 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무인체크인 기계에 지문을 읽히면 어느 순간부터는 지문이 읽히지 않았다. 피부가 점점 얇아지면서 손바닥의 지문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독한 항암 약이 머리카락도 다 빠지게 하는데, 하물며 피부에 손상을 입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나는 젊은 편이라서 이제까지 독한 항암 약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항암 치료 전에 부작용에 대해 들었던 말에 따르자면 발바닥이 아파서 걷지를 못 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다녔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3회 차 까지는 구토, 탈모, 오한 이외에 크게 부작용을 못 느꼈는데, 4회 차에 접어들면서 손과 발이 엄청 절여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손 발이 늘 찼는데, 마치 손끝 발끝에 얼음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처럼 손발이 시리고 저려왔다.
항암 약이 말초 신경세포를 공격하니 우리 몸의 끝자락에 있는 부분은 거의 초토화된다고 보면 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말초 신경 세포 손상의 일환이고, 손 발 저림도 마찬가지 피부도 전부 얇아지면서 발바닥은 전신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아지고 물집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겉으로 봐선 누가 봐도 환자라고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씩씩하게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녔던 것이 스스로 대견했다. 이제 8번 선 항암 중에 4번만 남았다. 그저 남은 4차례, 아니 오늘 5회 차 투약을 받았으니 이제 3회 남은 선 항암을 무탈하게 마치기를 기도하며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