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약물 = 발암물질
6차 항암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아, 이제 내가 정말 암 환자이구나…’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항암치료 4회 차 까지도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도 칠 수 있었다. 6회 차가 되니 골프채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은 쉽게 짓물렀고, 손가락 뼈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아직 40대 중반도 채 안 됐는데, 80대 할머니 마냥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무릎이 삐그덕 거리며 휘청거렸다. 발바닥도 짓무르는 바람에 지금까지 당당하던 걸음걸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쓰린 발바닥과 퉁퉁 붓고 시꺼메진 발을 보면서 인생의 덫 없음을 깨달았다.
짓무른 이 피부를 가지고 앞으로 살아지게 될지, 몸이 썩어 들어가는 느낌인데 과연 회복이 될 것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앞으로 2회만 견디면 수술 전 항암이 끝나긴 할 것인데, 부작용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독소를 해독하기 위해 어머니가 챙겨 주시는 아침 식사용 누룽지와 동치미 국물은 꾸준히 먹었다. 해독은 그렇다 치고, 정상 세포가 너무 손상을 입는 듯해서 천연 비타민과 미네랄을 챙겨 먹었다.
병원에서는 비타민도 미네랄도 전부 음식으로 섭취하라고 권유했지만,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엔 한계가 있었다. 화학 성분으로 만들어진 종합 비타민제는 되려 간에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흡수가 잘 되는 가루형 비타민과 미네랄을 물에 희석해서 마셨다.
5차 까지는 2주 간 항암 약이 온전히 몸에 흡수되도록 비타민과 미네랄 섭취를 하지 않다가 회복이 시작되는 3주 차에만 비타민과 미네랄 섭취를 했는데, 항암 6차부터 시작된 엉덩이 골의 욕창을 경험하고는 이대로 방치하면 항암 약이 온몸의 면역력을 사멸시키겠다는 위기감마저 들었기에 매일 천연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했다.
항암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머니는 아침마다 사과, 당근, 브로콜리, 양배추에 콩가루를 섞은 해독 주스를 만들어 주셨는데, 덕분에 야채들이 가진 세포를 살리는 성분들을 몸에 흡수시켜 줘서 지금까지 항암 부작용의 진행이 늦춰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해독주스를 먹고, 비타민과 무기질을 섭취해도 항암 약의 독성은 이겨낼 수가 없었다.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슨 약을 이렇게 독하게 만들어서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드나.’
‘이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약이네. '
‘항암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러다 온전한 세포도 전부 손상돼서 회복이 어렵겠는걸?’
영어로 항암치료를 Chemo therapy라고 한다. 화학 치료라는 말이다. 나는 한국말도 항암치료라고 부르기보다 화학치료라고 명명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항암치료라고 하면 왠지 이 독한 항암 약이 암세포만 없애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설령 그 착각으로 인한 플라세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환자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화학치료는 암세포만 사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항암치료라고 믿고 있는 이 치료는 독한 약물로 암세포뿐 아니라 모든 정상세포도 깡그리 손상을 시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쓰는 세포독성 항암 치료는 항암 치료인 동시에 발암 약물 치료인 것이다. 온몸에 독소를 퍼뜨려 모든 세포를 손상시킨다. 그 게 항암 치료의 원리인 것이다.
40년 넘게 살면서 내가 겪은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항암 치료이다. 그나마 서너 번은 어떻게 체력이 돼서 견뎌 냈지만 6회 차가 넘어가면서 몸속의 모든 면역이 무너져 내리더니 손톱, 발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잇몸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무언가 딱딱한 음식을 씹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이빨이 빠질 것 만 같았다.
무슨 생체 실험대상도 아니고, 독성화학물의 독성은 인간의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 파악하는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된 것만 같았다. 손 톱, 발 톱이 시꺼멓게 변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공포심이 밀려와 얼른 네일 숍을 예약하고 젤 네일을 시술받았다. 암 환자가 무슨 손톱에 화학 제품을 붙이느냐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시커멓게 죽어가는 손톱을 보며 매일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내 마음에 드는 예쁜 칼라와 디자인을 바라보면서 흡족해하는 것이 정신 건강엔 이로울 것 같았다.
젤 네일을 붙인 덕 인지, 나의 손톱과 발톱은 빠질 듯 말 듯 8차 항암이 끝날 때까지 내 말초세포의 끝에 잘 붙어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내 몸에게 너무 감사했다. 손톱 발톱이 내 몸에 잘 붙어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일인지 건강할 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몸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며 손톱, 발톱이 있음에 감사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처럼 감사한 일인데 말이다. 엉덩이 골의 욕창은 점점 심해져 가고 발바닥은 헐어서 앉아 있지도 서있지도 못할 시기가 오니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서 살아갈 의욕마저 없어졌다. 얼마 전 불치의 피부병을 앓고 있던 여자 코미디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했었는데, 막상 내가 육체의 고통 속에 살아보니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괴로움이었고, 육신의 괴로움은 정신으로 이어져 삶을 포기하고 싶은 욕구마저 생기도록 만들었다.
항암 약의 독성으로 썩어 들어가는 내 몸뚱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 옆에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시는 어머니가 지켜주고 계셨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의 꿈나무,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고 있는 딸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고통의 시간은 앞으로 두 번의 항암 치료만 더 받고 나면 끝이다!’라는 희망이 있었다.
어떻게든 소중한 나의 몸을 부작용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내야 했다. 지금까지 구토 및 근육통, 입안이 허는 부작용은 병원에서 종양내과 의사가 처방해 준 약들로 견딜 수 있었지만, 욕창에 대한 처방 연고는 잘 듣지를 않아서 동네 약국에 가서 연고를 종류별로 샀다. 이거 저거 발라가며 효능이 가장 좋은 연고를 찾아내서 헐어가는 피부에 듬뿍듬뿍 바르며 피부로 느껴지는 고통을 달랬다. 그래도 쓰라림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무너지는 멘털을 부여잡으며 내가 지켜야 지침들을 적어 놓았다.
5.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찾아올 땐 감사하기.
6. 숨 쉴 수 있다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