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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Oct 21. 2023

항암치료 기절초풍

죽음에 대한 단상

항암 치료는 7차로 접어들었고 몸에 일어나는 부작용에 집중하느라 그랬는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여전히 코로나로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세상의 시스템이 전부 온라인으로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마저 학교에 등교를 하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받았을 정도이니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차량으로 픽업을 해줘야 되는 거린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어머니도 짬짬이 아버지를 챙겨 드리러 집으로 가셨다. 어머니가 내 병시중을 하느라고 우리 집에서 계시는 동안 아버지는 독수공방 혼자 지내셨다. 온 가족이 합심하여 내가 항암치료를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한 팀이 되어 주었다. 그 힘으로 온갖 부작용에도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가 안 계시던 어느 날, 아이가 수학 문제를 가지고 와서 봐 주는데 갑자기 책이 빙글빙글 돌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머리가 띵하고 현기증이 돌면서 사물이 뱅글뱅글 도는 몇 초의 시간 덕분에 다행히 땅을 짚으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부딪히며 크게 다쳤을 뻔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는 쓰러지면서도 아이가 엄마를 보며 놀랐을 생각에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이랑 둘만 있으니 응급 상황에서 싱글 맘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얼마간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나서 아이에게 얼른 전화기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또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는 동안 얼른 119에 전화를 넣었다. 


10분이 넘지 않는 시간 안에 119 차량은 집으로 왔고, 아이는 집에 있으라 하고, 어머니께 얼른 전화를 넣어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코로나 전염이 확산되던 시기라 응급실에 바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코로나 검사 후 음성 확인이 되니 간신히 응급실의 침대 한 칸에 누울 수 있었다. 


혈액 검사 등 이런저런 검사 후 의사는, 암 환자들은 보통 고열로 응급실에 오는데 열이 나고 백혈구 수치에 이상이 오면 응급처치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열도 없고 혈액 검사 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고열이 나면 보통 항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항생제 처방 이후 계속 열이 내리지 않을 경우 뭔가 심각한 감염이 동반된 것으로 간주하고 중환자실로 가게 된다고 했다. 


나도 살면서 이런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더 두려웠다. 의사도 내가 쓰러진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확실한 건 항암 치료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기절시켰다는 사실이다. 단 몇 분 동안이었지만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동안 의식을 잃었고, 매우 이상하리만큼 의식을 잃은 그 몇 초 동안의 느낌은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웠다는 것이다.


문득 

‘죽음은 이런 것 이겠구나…’ 

싶었다. 잊지 않고 항암 후 지침 노트에 적어 놓았다.


7. 죽음은 매우 고요하고 평온한 것.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밤 9시경에 응급실에 실려가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던 새벽길은 한산했다. 온 세상이 전부 잠들어있고, 나는 잠시 어딘가에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생에 대한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 보니 삶과 죽음이 하늘과 땅처럼 극과 극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터뷰에서 80이 다 된 해녀 할머니가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우리 목숨은 반쯤은 하늘에 있는 거지.’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암에 걸리고 나니 내 목 숨도 이미 반쯤은 하늘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정신을 잃고 임사 체험을 경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잠깐의 의식 불명을 경험해 보고 나니 분명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 의외로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다. 


‘모든 것이 괜찮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나는 안전하다.’


‘신이 나를 살려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항암 후 지침 노트엔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8.     지금부터라도 신이 나를 지구에 남겨 둔 궁극적인 이유를 찾는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것이다. 아직 할 일을 다 하지 않았으니 내 삶의 사명을 다 하고 오라고 하늘나라 입구에서 나를 지구로 돌려보낸 게 분명했다. 


우선은 내가 건강해지는 것이 1차 의무였다. 7차 항암 치료 만에 넉 다운이 되어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늘나라에 입성하지 않고 지구로 돌아왔으니 일단은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9.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해 지켜야 될 것은 내 몸 단 한 가지이다.


아직 마지막 8차 항암이 남아있었고 무사히 수술 전 항암을 끝마치는 것이 현재의 사명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곤히 자고 있었고, 어머니도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문득 집 안을 돌아보며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 울타리 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살아서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사실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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