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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Oct 22. 2023

수술, 두 번째 삶을 선물받다.

항암 후 수술

6개월의 장정, 선 항암 8차를 모두 마치고 나니 수술이라는 또 하나의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2020년 12월 말에 진단받고 다음 해 7월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6개월의 항암 치료가 전부 끝난 후 나의 백혈구 수치는 거의 전멸이었고 부작용으로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주어진 숙제를 마친 것 같아 내 스스로가 대견했다. 


수술 전 검사 후 만난 주치의도 고생 많았다며 2.6Cm였던 종양은 항암 후 최종 1.6Cm로 사이즈가 줄었다고 했고, 종양의 크기가 줄어서 부분 절제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엔 항암 없이 전 절제(유방을 전부 도려내는 수술) 술로 하자고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췌장암, 대장암, 자궁암 수치가 모두 높게 나오는 바람에 전이의 가능성이 보이자 선 항암치료 요법으로 우회했던 것이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에는 양쪽 다 가슴을 없애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방을 없애면 적어도 유방에는 다시 종양이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한쪽 유방에 종양이 생겼는데, 다른 쪽 유방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방을 없애고 복원술 하면 되지!’ 


라며 암을 그냥 도려내면 사라지는 염증 정도로 쉽게 생각했다. 그런 나의 견해를 이야기하니 암 환자 온라인 카페에서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둥, 지금 미용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둥 엄청 비난을 받았지만 말이다.


‘멀쩡한 사람들도 가슴성형을 하는 마당에 유방에 종양이 생겨서 가슴 절제술 받고 복원술 받겠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종양이 없는 멀쩡한 유방까지 도려낸다는 게 비난의 화살촉이었지만 말이다.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에도 의사들마저 비난의 수위가 높았다. 가족력 때문에 자신의 멀쩡한 가슴을 드러낸다니 과하다는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결국 안젤리나 졸리는 지금까지 암에 걸리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지금 와서 그녀의 선택이 잘 못 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 절제를 하게 되든, 복원술을 하게 되든, 설령 가슴 없이 살게 된다고 해도 그 어떤 경우의 수 앞에서도 긍정을 택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아름다웠고, 내 아이의 밥 줄이 되어주었고, 40여 년간 내 몸에 붙어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준 가슴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살 수 만 있다면야 목숨보다 가슴이 더 중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유방을 전부 잘라내는 수술보다는 부분만 도려내는 것이 신체적 부담은 훨씬 덜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안 그래도 항암으로 몸 컨디션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유방을 전부 없애고 보형물 삽입술까지 받게 되면 몸속에 이물질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세포들이 반응하게 될 것이며 그 큰 충격을 몸이 소화해 낼 자신이 없었다. 세포가 전부 항암 약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수술은 최소한의 자극이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종양의 사이즈가 항암 약 효능으로 줄어들어서 부분 절제로 가슴을 살려낸다고 하니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극심한 항암 부작용으로 생사를 넘나든 나로서는 종양이 일정 부분 관해 되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전 절제 할 뻔했던 가슴 수술을 부분절제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들었던 6개월의 시간들을 전부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를 경험하고 나니, 항암치료는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 게 어떤 건지 모르고 받았지만, 또 받으라고 한다면 이젠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피하고 싶다.


주치의에게 수술이 끝나면 또 항암 치료를 받게 되냐고 물어보니, 그건 수술 후 검사 결과에 따라서 결정된다고만 할 뿐이었다. 이렇든 저렇든 6개월 간의 항암을 끝내고 생존해 있는 내 몸에게 열렬한 사랑과 고마움의 마음을 안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돌보지 못했던 내 몸에게 이제부턴 매일매일 고맙다고 말해주기로 결심했다.  


“고생했어. 내 몸아, 정말 고생 많았어…” 


그리고 나는 또 중요한 깨달음들을 적어 내려갔다.


16.     내 몸에게 매일매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7.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잠잘 수 있음에 감사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냥 모든 게 감사할 일 들뿐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아 돌아와 보니, 살아있음은 그저 기적이다. 


18.     ‘사랑한다 나야, 고맙다 내 몸아, 더 아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내가 지금부턴 너를 꼭 지켜줄게.’를 생각날 때마다 읇조린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가슴의 종양이 줄어든 것과는 별개로 암 진단 때부터 초음파 상에 보였던 난소 양 쪽의 종양이 각 4.5, 4.0Cm로 크기의 변화 없이 아랫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모양으로 봐서는 양성 종양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Cm 이상의 종양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고, 나는 암 환자라서 전이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수술을 하는 게 맞지만, 지금 내 나이가 아직 폐경기 전이라서 수술을 권유하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난소 제거술을 받고 나면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될 거라고도 했다. 여성호르몬과 연관된 장기이다 보니 호르몬 조절이 안 되면서 오는 불편함이 가장 크다고 했다. 성관계도 불편해지고 아예 성욕 자체가 없어질 거라고 했다. 


 ‘성욕? 이 나이에 무슨…’ 


하고 생각해 보니 내 젊음이 안타깝기도 했다. 의사도 자기가 결정해 주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유방암 수술 시 난소 절제술도 같이 하면 되니 수술 여부는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의사가 강력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유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의 수술은 받고 싶지 않았다. 가슴 수술만으로도 몸이 힘들 텐데, 동시에 난소까지 제거한다면 몸속에 있던 장기가 사라지면서 오는 충격도 극심할 것이 분명했다. 난소까지 적출한다면 몸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 몸은 이제부터 내가 지켜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문득 유방암 치료 중 찾은 동네 산부인과 의사 말이 떠올랐다. 


“난소에 혹이 상당히 큰데 대학병원에선 뭐라고 해요?”

“종양인데 악성은 아닌 것 같데요. 유방암 수술 할 때 난소 제거 수술도 같이 할 수 있데요.” 

“혹시 유방암이 난소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선생님?” 

“암이 난소로 전이 됐음 벌써 온몸에 암세포 다 퍼졌다고 봐야지. 검사 다 했을 거 아니야, 전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난소 제거 수술은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자궁 내막도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수술하게 되면 자궁도 드러내야 될 텐데… 수술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지금으로서는 딱히 어느 쪽이 좋다고 말을 해주기가 어려워요.”  


의사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결국 내 목숨이고, 내 선택이니 나는 중심을 잡고 대학병원의 주치의에게 과감히 부인과 수술은 문제가 생기면 다음에 받겠다고 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 아니라서 자궁전이는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 같았고, 종양의 모양으로 봐선 악성은 아닌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으니 급하게 난소를 들어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의 장기는 다 이유가 있어서 각각의 자리에 붙어있는데, 어느 하나의 장기만이라도 제자리에서 사라지게 되면 다른 장기들도 전부 영향을 받게 된다. 몸은 여러 가지 장기로 이루어져 있는 유기체인데, 인간이 아메바가 아니지 않은가? 가슴 한편을 도려내는 것도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자궁까지 드러내고 나면 나의 여성호르몬은 영영 메마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직관적인 판단으로 나는 부인과 수술은 받지 않기로 했다. 의사는 쿨 하게 나의 의견에 존중해 주었다. 깨달음의 노트엔 이렇게 적었다.


19.     수술에 대한 결정권은 내가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의 상태에 대해서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20.     수술에 대한 결정이 어려울 때엔 주치의 외 다른 전문의와도 상담해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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