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끌치유 Oct 21. 2023

공감능력은 개나 줘라.

항암 치료 중 피해야 할 감정

유튜브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구독하고 지켜보았던 한국의 예쁜 뷰티 유투버가 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너무 사랑스럽고 발랄한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이 친구가 암 진단을 받아서 투병일기를 브이로그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유투버 이기도 했지만 밝은 성격과 긍정적인 태도로 행복 에너지를 세상에 전달하는 매우 특별한 친구였다. 주변인들 챙기는 것도 남달랐던 친구라 이 친구가 꼭 투병해서 건강하게 살아내기를 기도했다.


뷰티 유투버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살아서 건강 인플루언서가 되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녀 곁에는 아름다운 청년이 연인으로 그 녀의 삶에 녹아들어 있었고, 20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맨틱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내가 유방암을 진단받은 시기 보다 몇 달 앞서 이 친구가 림프 암 진단을 받았는데 저 어린 친구가 얼마나 두렵고 마음이 힘들었을는지 공감이 되어서 무척 안타까웠다.


너무 감정이입이 잘 되는 내 오지랖도 문제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눈물만 글썽여도 같이 눈물이 고였다. 감정이입이 잘 되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도 잘해주는 편이었다. 누군가 화가 나있으면 내가 더 화를 내줬고, 누군가 행복해하면 내가 더 기뻐해 줬으며 상대방 칭찬도 입이 마르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펴주느라 나의 감정은 매우 소모적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나면 무척 에너지가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고 깨닫게 되었다.


20대에는 사람도 좋아하고 파티도 좋아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는데, 그 건 직업의 성격과 나이와 환경에 맞추어진 사회적 성격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매사에 열정적인 건 타고난 성향이긴 했다. 일을 할 땐 완전히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신혼 땐 전 남편에게 ‘나는 당신이 그렇게 조용한 사람인 줄 몰랐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는 나의 외향적인 면이 좋아서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건 내 겉모습일 뿐이었는데 내가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안 될 정도로 나는 외향적인 가면을 완벽하게 쓰고 살아왔다. 늘 웃고 즐거우니 사람들은 내가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물론 나는 유머도 있고, 재치도 있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재능도 있다. 그런 사회성과는 무관하게, 나는 조용히 혼자 책을 읽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혼자 책도 보고 나 자신도 되돌아보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내가 좋아하던 유투버도 어쩌면 화면에서 웃으면서 밝고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녀 내부에서는 저항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에 걸맞게 솔직 담백하게 울기도 하고,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늘 씩씩하게 투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기가 환자인데도 늘 곁에 있는 사람들 걱정해 주고, 구독자들에게 안부 전해주느라 유튜브도 계속 올렸는데, 나는 이 친구가 너무 유명인이 되어 버려서 치병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늘 걱정이 되었다. 항암 중에 브이로그를 하는 것이야 본인의 자유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쓰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댓글을 읽고 답글을 남기는 모든 행위들이 스트레스이고 부담이었을 텐데 일에 집중하다 보면 환자는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암은 감기나 장염처럼 그냥 지나가는 병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마주하게 되는 병이다. 항암 치료가 끝났다고 전에 살던 패턴대로 똑같이 살면 암은 영락없이 다시 침범한다.


주변에서 말기 암 환자들이 암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사는 모습도 종종 보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세상 일을 잠시 접고, 산으로 들어가거나 자연 속으로 돌아가서 치병하는데 몰입한 사람들이었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암은 사라지는 듯 보였다.


안타깝게도 투병 브이로그를 올려주던 뷰티 유투버는 내가 새로운 약물 도세탁셀을 투약받기 시작한 5차 항암의 시작점에서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친구였지만 자주 유튜브를 보면서 그 친구의 일상을 들여다봐서 그런지 아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친구가 젊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져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투병하는 동안 연인과 함께 사랑으로 버티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가족들에게도 너무 소중한 존재였는데,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남 일이 아니라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세상구경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하고 싶었던 일도 거의 다 해보고 세상 떠나는 것이지만 남겨질 아이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항암이 5차로 치닫다 보니 몸도 약해지고 무너진 체력과 함께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그런데 응원하던 환우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나니 전투력을 상실해 버린 것만 같았다. 내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닌데 며칠간 하염없이 울고는 이내 심각한 우울감이 밀려들어왔다.


 ‘나도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항암 약이 잘 듣지 않아서 종양이 관해가 되지 않으면 어쩌지?’


실체도 없는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잠도 잘 오질 않았다. 걱정과 우울로 정신이 무너져 버리기 시작하니 항암 약으로 무너져버린 육체도 부작용에 처참하게 공격당했다. 4차 항암 때부터 손 발이 저리고 손 목을 쓸 수가 없었는데, 이젠 손 발이 저리다 못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피부가 점점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지금까진 세포의 손상이 내부에서 나타났다면 이제부턴 피부에도 손상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발바닥의 피부가 너무 얇아져서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발을 땅에 내딛기가 두려웠다.


손도 피부가 얇아지고 정상세포들이 기능을 하지 못하니 설거지만 맨손으로 해도 물집이 생겼다. 물집이 한 번 생기면 넘어져서 살갗이 벗겨졌을 때처럼 쓰라렸고, 약을 발라도 항암 성분 때문에 피부가 잘 아물지도 않았다.


항암 부작용이 심해서 너무 힘들었다는 환우들의 이야기에 지금까지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았는데, 5차 항암이 진행되면서부터는 나도 방어할 수 없는 항암 부작용들에 멘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두려움이 압도했다.


내가 구독하던 투병 유투버 중에 삼중음성 유방암 3기였던 젊은 친구는 항암 중에 전이가 진행돼서 두어 달 사이에 말기 암 환자가 되어 버리더니 이내 세상을 떠나 버리는 일도 있었다.


희망과 용기를 얻고 싶어서 찾아본 암 투병 유튜브 채널들 중에서 허망하게 사망해 버리는 내용들을 마주하면 그 심리적인 여파가 한 달 이상씩 내 몸과 마음에도 머물렀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마감하는 친구들이 안타까운 건 물론이거니와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왜 내가 사서 하며 공감이 되는지, 이 놈의 공감능력이 나에게는 별로 좋을 것이 없다는 것도 환자가 되어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삼성 서울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 중에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한 때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공감 능력을 키우라고 하더니, 이제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하니, 도대체 세상의 어떤 박자에 리듬을 맞추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실제로 의사는 예민한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도 말했다.


환자에게 성공이란 건강한 몸을 되찾는 일이므로 나는 암 환자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보았다.


3.     슬프거나 안타까움을 유발하는 영상을 보지 말 것. (희망과 긍정, 평화를 전달하는 채널만 엄선하여 구독하고 정보를 얻는다. 항암 치료 중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에너지 레벨이 낮으므로 안 좋은 소식은 듣지도 말 것이며 TV뉴스도 가능하면 보지 않는다.)  


4.     공감능력은 저하시킬 것. (다른 사람의 말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도록 남의 슬픈 이야기나 어려운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세상 외부적인 사건들에 신경 쓰지 말고,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내 몸의 치유에 집중한다.)


한 달간 우울감과 항암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6차 항암을 하러 병원에 갔다. 5차 치료를 하는 지난 3주간 내 마음은 슬프고, 우울했다. 그저 일면식도 없는 유투버들이 암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을 뿐인데, 같은 환자의 입장에서 암 환자가 투병하다 사망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내 마음이 우울해서 그랬는지, 약이 나와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신경통, 근육통, 뼈저림 등의 심각한 부작용들이 새로운 약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이었다. 4차 약물까지와는 다르게 부작용이 심해서 ‘항암 약이 내 몸과 맞지 않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사진: UnsplashJoel J. Martínez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