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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끌치유 Sep 03. 2023

췌장이 아니라 유방이었어?

전조증상

코로나로 세상이 마비되었던 것만 같던 봄을 지나 계절은 어느덧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제주도에 정착한 후 소소하게 시작했던 기업체 강의 일은 소문에 소문을 타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이제 막 손익분기점이 흑자로 돌아서려는 찰나에 하필이면 코로나라는 기괴한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하는 내 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대학에서 겸임으로 교수직을 맡고 있던 터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학생들과 하루에 3시간~6시간씩 온라인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도 했고, 학생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주기도 어려웠다.


나는 늘 내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매우 까다로운 나머지 내가 하는 일이 100% 만족스럽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처음에는 줌 강의를 의욕적으로 준비했지만 실습이 위주인 항공 서비스학과의 수업은 점차 온라인 강의의 한계가 느껴졌고, 혼자서 내리 3시간을 이야기하기에는 체력이 무지하게 딸렸다.


췌장암 검사를 받으러 갔던 무렵에도 본능적으로 몸에 이상을 느낀 후 건강검진 센터에 추가 비용을 내고 종양 수치 검사를 했었던 것인데, 췌장암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를 받은 이후로도 몸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가끔 소규모 교육이나 개인 코칭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3시간~6시간씩 앉아서 대학의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나면 두어 시간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처음엔 그저 늘 새벽에 자는 습관 때문에 잠이 모자라 그런가 보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느 날은 밖에서 두 시간 정도 일하고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침대에 쓰러져서 자고 일어나니 침대가 흥건히 젖어 있는 날도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가…? 왜 안 나던 식은땀이 이렇게 나지? 아직 갱년기도 아닌데…’


이 미련한 덤덤이는 그저 날이 더워 그런가 보다 하고 이상하리만큼 힘들었던 여름을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던 조금은 답답했던 가을을 한 철 보낸 후, 겨울의 시작 점에 서귀포시에 사시는 친정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요는 12월 초에 제주시에 있는 건강검진 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오시는데 수면 내시경을 위한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이 바빴으면 시간 내기가 어려웠겠지만 코로나로 일도 없었고, 요사이 엄마도 보고 싶었었는데 잘 됐다며 흔쾌히 어머니와의 약속을 잡았다.


건강검진 센터엔 올 초 내가 췌장암 검사를 하기 위해 들렀을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고, 따라서 어머니의 수면 내시경도 순서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던 중, 갑자기 지난번 건강검진 때 의사가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당부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췌장암 종양 지표 수치에 놀란 후, 유방 촬영 검사 결과에서 나왔던 치밀 유방 판정은 내 걱정의 범위 안에서 삭제됐다. 우리나라 여성의 대부분이 치밀 유방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고 싶다는 강한 느낌에 이끌려 접수처에 내려가서 유방 초음파 당일 검사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국가에서 무료로 해 주는 건강 검진에 유방 영상 촬영은 포함되어 있지만 유방 초음파 검사는 무료검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람 심리라는 것이 참 이상하게도 몇 만 원 조금 더 지불하며 하게 되는 추가 검사에는 왜 그리 박해 지는지, 밥 한 끼, 술 한 잔에는 큰돈도 아끼지 않으면서 내 몸 검사하는 데에는 단 돈 몇 만 원도 아까워서 검사를 미루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나 역시 2년 전 해 보았던 유방 초음파 검사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 초 건강 검진에선 암 종양 지표 검사만 추가로 받고, 유방암 초음파 검사는 건너뛰었다. 췌장이나 자궁의 문제인 줄만 알았지, 유방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늘 판독 결과 듣고 가셔야 하겠는걸요?”

“네? 오늘이요?”


보통 건강 검진 센터의 검사 결과는 며칠 지나야 결과지가 넘어오는데, 무언가 이상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검사실에서 나와 기다리던 중, 최근 오른쪽 유방에 무언가 살짝 만져졌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왜 슬픈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 건지….’


“검사 결과 상, 종양이 발견돼서 큰 병원으로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덤덤하게 얘기했다. 췌장암 종양 지표 때 소스라치게 놀란 후 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나는 초진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저 2년 전에도 초음파 검사 했었는데 아무 이상 없었는데요…”

“이번엔 종양이 크기가 크고 모양이 썩 좋지 않아요. 암이 아닐 수도 있지만 빨리 가서 조직검사부터 해 보십시오.”


의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나는 이번에도 암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의 수면 마취 보호자의 임무를 마친 후, 의사가 작성해 준 진료 의뢰서를 들여다보며 제주시에 있는 가장 큰 병원의 유방외과에 예약을 넣었다.  

  

“암일 확률이 99%입니다. 종양도 크기가 크네요.”


조직 검사도 하기 전에 유방외과 의사는 초음파 영상만 보고도 암이라고 단정 지었다. 당황하는 나를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하던 의사는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치료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선생님?"


“일단은 조직 검사를 해야 하고요, 검사 결과 암으로 판정되면 치료는 시작됩니다. 종양의 크기로 봐서는 선 항암 후 종양의 크기를 줄여 수술해야 할 것 같은데요, 수술치료 후에 방사선 치료도 하게 됩니다. 경과에 따라 다르지만 이 정도 크기면 수술 후 항암도 필요할 겁니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항암, 수술, 방사선, 또 항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의사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저리 얘기할 수 있는지, 약 5분간 지속된 의사와의 상담에서 나는 정면 펀치, 어퍼컷, 사이드 킥을 맞고 쓰러진 K2 선수 마냥 정신 줄을 내려놓았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항암이라는 단어에 맞추어 뇌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나는 이미 삭발의 마르고 초췌한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어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구토를 해 대는 상상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미디어라는 것이 인간의 잠재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암?! 암이라고?.... 유방암?! 에이… 설마 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위급한 순간에도 이 미친 긍정 마인드 때문에 늘 얼마나 곤욕스러운지,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2주라고요?”


조직 검사 예약을 잡기 위해 원무과에 들렀더니 2주 후에 검사가 가능하단다. 좀 전에 진료실에서는 의사가 당장이라도 죽을 환자를 만난 듯이 위급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정작 환자는 조직 검사를 하기 위해 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결과는 3주 후에나 받게 되는 것인데 만약 암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그 사이에 암이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예약을 잡고 나오면서도 찝찝한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구글링을 시작했다.


제주시에서 유방 조직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검색해 보니 대형병원 두 곳과 개인 병원 한 곳이 찾아졌다. 인터넷은 어떤 신을 닮은 천재가 개발한 것인지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시기에 내게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주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대형병원은 조직검사까지 최소 2주가 걸렸고, 개인병원은 내일 바로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맘 카페에 올라와 있는 개인 병원에 대한 평은 가지각색이었다. 여의사가 불친절하다느니, 맘모톰이 아프니 안 아프니 비용은 어쩌고 저쩌고… 맘모톰이라는 수술은 악성 종양이 아닌 양성 종양이 가슴에 생겼을 경우, 간단히 기계로 제거해 낼 수 있는 수술이다. 나도 초음파 영상에서 보이는 종양이 그저 양성이기만을 기도하며 의사와 면담을 시작했다.


“모양이 썩 좋지 않아서 이 종양은 맘모톰 시술은 못하고 세침검사를 하셔야 합니다.”


의사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말수가 별로 없고, 조용조용한 여의사에게 왠지 신뢰가 갔다. 불친절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요전에 보았던 대형병원 의사만큼 나에게 겁을 주지는 않았다. 종양이 있는 쪽의 가슴을 초음파로 들여다보면서 세침으로 조직을 떼어내는 시술이었는데, 수술 방의 어두운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의사의 에너지 때문이었는지 아님 대범한 나의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세침 검사는 처음 수술실로 걸어 들어갈 때 느낀 두려움의 크기만큼은 아프지 않게 간단히 끝이 났다. 검사 결과는 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딱히 친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차분했고, 이성적이었다.


처음 건강 검진 센터에서도, 두 번째 대형병원 유방외과에서도 그리고 세 번째 여성외과에서도 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종양의 모양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반 양성 종양은 동글동글 모양이 매끄럽지만 악성 종양은 모양이 찌그러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초음파 사진 상 내 종양의 모양은 거의 악성임에 틀림없었던 것처럼 세 명의 의사는 각기 표현하는 방법만 달랐을 뿐, 하나같이 종양의 모양이 좋지 않다고 얘기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주도의 12월은 쾌청하고 맑았다. 파란 도화지 위에 하얀 양 떼들이 모여 있는 듯 하늘은 평화로웠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외출도 삼가던 시기였고, 모든 연말 모임도 취소되던 나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아이의 저녁 식사를 챙겨 주고, 아이의 일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세침 검사를 하고 돌아온 당일 날은


‘설마, 괜찮겠지, 암 아닐 거야.’


라고 믿고 싶었지만, 검사 후 이틀째부턴 설마가 아닐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몸의 어딘가에 반드시 문제가 생겼다고 자각할 정도로 매우 피로했고, 그냥 피곤하다고 하기엔 감기나 오한이 잦았으며, 음식을 먹으면 잘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췌장암 검사를 하러 서울의 대형병원까지 다녀왔던 것인데, 이상이 없다고 하니 그 또한 이상했다.   


저녁 9시. 전화벨이 울려서 들여다보니 조직검사를 했던 병원이었다. 개인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 암이 확실하구나.’


이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무언가 긴급한 전달 사항이 있다는 것이었고, 내가 전해 들을 긴급한 소식이라고는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는 것 밖에 없었다. 이틀간 설마 설마 했던 검사 결과가 악성 종양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려다가 시계를 올려다보고는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조금 있으면 취침 시간인데 악성이라는 결과를 들으면 밤새 잠을 설칠 것이 뻔했다. 하루라도 걱정 없이 잠들고 싶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테니 말이다.


오전 8시 43분. 진료 시작 시간도 전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용하고 덤덤하게 인사를 건네는 의사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암이 맞습니다. 최대한 빨리 내원하셔서 조직검사 결과지 가지고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빨리 치료가 시작될 수 있도록 제가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젯밤부터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암이라는 말을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암? 내가 유방암? 허 참, 나 기가 막혀서… 이거 실화냐?!…”


이미 췌장암 가능성을 진단받았을 때 보신각으로 머리를 한 대 심하게 두드려 맞은 것 같았는데, 이번엔 머리 위로 부르즈 칼리파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솟아날 구멍이라곤 보이지 않았고, 마치 전신에 마비가 온 듯 책상 앞에 앉아 한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동안은 광야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 돌부처처럼 머리가 멍한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물? 눈물 따위는 이제 아이가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싱글맘에게는 사치였다.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 조심스럽게 세침검사를 해 준 의사는 매우 숭고하게 나를 맞았다. 덤덤하고 무겁게 나의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는 내가 실행해야 하는 다음 스텝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서울의 대형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부터 작전을 잘 짜는 게 중요해요. 지금부터 기나긴 치료과정이 시작될 거예요.”


유난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의사는 약간의 안타까운 표정을 섞어 나에게 유방암 진단을 내렸고, 치료 및 수술은 서울의 어느 병원이 좋다는 것까지 추천을 해주었다. 의사와의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추웠다. 12월의 중순이었고, 태어나서 마흔두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오고 있었고, 2020년을 보름 남겨두었던 그날,

나는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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