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섞여버린 곳, 터키

신밧드에서 술과 함께 - 이스탄불(2)

by 정헌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가면 참 부지런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다.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엔 아침 특식으로 주인아저씨가 끓여주는 라면이 나온다. 겨우 여행 2일 차이기에 한국음식보다 현지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라면을 보자마자 무너졌다. 역시, 한국인은 라면과 김치에 약하다.


IMG_0868.JPG 해외여행에서 라면은 사랑이었다


어제 만난 산적 아저씨들은 오늘 하루 더 여행하고 다음날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하였다. 각자 여행을 하고 저녁에 다시 만나 술 한잔 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혼자 구시가지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나의 첫 목적지는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로 정했다.


아침의 날씨는 맑고 상쾌하여 기분이 좋았다. 한국보다 따뜻한 날씨여서 1월임에도 얇은 경량 패딩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10분 걸어 올라가면 술탄 아흐멧 광장이 나왔다.

광장의 곳곳엔 큰 개와 고양이들이 부럽도록 늘어져 있었다. 옛 터키 사람들은 동물의 몸에 인간의 영혼이 환생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서든 수많은 개와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정부에서 개의 귀에 태그를 달아 관리한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 서서 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은 각자의 위용을 자랑하기 바빴다.

블루모스크 입구는 오벨리스크가 있는 측면 문을 이용하면 된다. 아침부터 블루모스크 입구엔 웨딩 촬영하는 터키 남녀들이 있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에서 웨딩 촬영하는 느낌일 것이다.


IMG_0882.JPG 푸른색의 블루모스크


푸른색의 창문과 외벽타일로 은은한 푸른색을 띤다고 '블루'모스크라 불린다. 블루모스크에는 크고 단단해 보이는 돔을 중심으로 주변에 6개 첨탑(마나레)이 우뚝 솟아있었다. 황금색으로 적힌 이슬람어가 반기고 있었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두 눈으로 담은 것에 만족한다. 높은 돔 천장에 낮게 깔린 수많은 전구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절로 경건해지는 분위기와 내부 경관에 숨을 죽이며 보았다.




블루모스크를 나와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야소피아성당으로 향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입장료가 필요했다. 아야소피아 자미는 원래 비잔틴제국 때 지어진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에게 점령당하고 술탄 메메트 2세에 의해 오스만 제국 술탄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가자 웅장함에 위압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위화감이 있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벽화 옆으로 원판 안에 적힌 이슬람어가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일부 훼손된 금빛의 예수의 모자이크는 과거의 화려했던 부질없는 영광을 엿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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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모자이크와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둥의 구멍


돌아다니다 어떤 기둥에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손을 펴서 한 번에 한 바퀴를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과거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심한 두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기둥 앞에서 싹 나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손을 갖다 대었으면 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겉의 색은 바랬다. 나도 조심스레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보았다.


'부자되게 해 주세요'




아야소피아에서 나와서 바로 근처에 유명한 유적지가 또 있었다. 많은 유적지가 가까운 곳에 모여있으니 시간을 아끼는 기분이었다. 유적지의 이름은 '예레바탄 지하궁전'으로 로마시대 때 사용되었던 저수조였다. 당시에 이러한 저수조가 있었다는 기술력에 감탄했다. 전쟁이 자주 발생했던 이스탄불에선 안정적인 물 공급이 중요했다. 그래서 비잔틴 제국의 도시엔 저수지를 지었다. 예레바탄은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영화에서 지하궁전 나오는 것을 보고 굉장히 반갑기도 하였다.


지하궁전의 당연 최고의 볼거리는 메두사다. 어두운 지하궁전의 수백 개 기둥에서 메두사의 얼굴을 찾아다녔다. 돌기둥을 바치고 있는 메두사의 얼굴은 옆으로 누워있기도 거꾸로 있기도 하였다. 혹시나 눈을 마주치면 돌이 될까 봐 측면에서 감상했던 웃픈 기억이 있다.


IMG_1028.JPG 옆으로 누워있는 메두사 머리


지하궁전을 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면 톱카프 궁전에 갈 수 있다. 톱카프는 대포가 있는 성문이라는 뜻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키는 대포들을 많이 설치해서 그리 불렸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지어지기 전까진 톱카프 궁전에서 술탄이 거주했다고 한다. 내부엔 하램 및 기타 궁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지만, 워낙 화려했던 유적지를 거치고 오는 길이어서 일까 크게 기억에 남는 건 없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성곽에서 보이는 흑해 무역선들과 골든홀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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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프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다 어느 한적한 공원을 발견했다. 그 앞에서 파는 석류쥬스를 사들고 공원에 갔다. 터키의 곳곳에선 석류쥬스를 만날 수 있었다. 큼직한 석류 반개를 착즙기에서 바로 짜내어 쥬스를 만들어 준다. 가격도 한국돈 천원도 되지 않았기에 이스탄불 여행 중 틈만 나면 마셨던 것 같다.


IMG_1147.JPG 신선했던 석류쥬스


그때 당시엔 방문했던 공원이 어딘지 몰랐지만, 후에 궐하네 공원이란 사실을 알았다. 사람도 없었고 무성한 나무들이 햇빛을 아련하게 가려주었다.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오전 내내 고생했던 다리에게 쉬는 시간을 주었다.




오후엔 트램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쪽잠을 자고 저녁에 산적 아저씨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자 했다.


이상하게 해외로 여행을 가게 되면 낯이 두꺼워지고 마음의 벽이 낮아지는 마법에 걸린다. 그날따라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 전체에 이러한 마법이 내려졌던 것 같다.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우리에게 멤버가 한 명씩 추가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인연들이었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으며 벌써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던 콧수염을 가진 형, 톱카프에서 만난 개구진 20살 동생, 학교 선생님이고 방학에 터크를 방문한 누나들, 수의대를 다니는 형까지. 낯선 땅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끌리듯 호스텔 테라스에 합류하였다. 밤새 Efes와 Tuborg(터키 맥주)를 마시며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이 인연은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달을 계획한 여행 중 겨우 이튿날만에 여행의 재미를 맛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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