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마 Jun 02. 2021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두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 <Her> , <Zoe>

영화 <Her>을 본 것이 벌써 8년 전의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영화를 보며 종종 눈물을 흘리지만, 영화 Her를 보면서 흘렸던 눈물은 슬픔과 기쁨이 섞인, 환희에 가득한 해방감의 눈물이었다. 그 아름다운 영상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영화를 봤지만 Her를 볼 때 흘렸던 만큼의 농도의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Her와 소재적, 설정적으로도 심지어 영상 색감마저도 비슷해 보이는 Zoe의 포스터를 보고 나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이번에도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 인가.. 관람 내내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나는 지루함을 느꼈다. 중간중간 집중력을 놓쳐 심지어는 딴짓을 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론 비슷해 보이는 둘에게서 나는 왜 이토록 다른 감상을 받은 것일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소재적인 공통점은 이 둘은 ai 와의 사랑을 다룬다. 그 ai는 여자 쪽이다. 차이점은 ’Her’의 ‘사만다’는 육체가 없는 운영체제라는 것이고 ‘Zoe’에서 ‘조’는 자신을 ‘synthetic’이라고 칭하는 인조인간, 그러나 인간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흡사한, 자아와 육체를 가진 완전체 로봇이다. (그리고 둘 다 여자 주인공을 제목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주인공인 남성은 사람들의 관계를 돕는 일을 한다. HER에서 테오도르는 의뢰인의 보내는 사진, 편지 등을 통해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필 편지를 써준다. ‘콜’ 은 커플들의 관계 개선을 위한 연구소에서 연인 대용의 로봇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타인들의 관계 유지에 관한 일을 하는 이 둘은 정작 본인들의 사랑에는 실패자들이다.   



HER 



테오도르는 섬세한 남자다. 이전 연인 캐서린과의 관계에서 이런 그의 예민하고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풀지 못한 관계의 골이 깊어져 결국 이혼까지 가게 되었다. 


그는 대필 편지를 쓰면서 다른 사람이 된다. 잠시 그들의 기억을 통해 가짜 감정을 만들고 그들이 되어 감동적인 글을 쓴다. 현실에 돌아와선 우울하고 슬픈 노래를 듣고, 항상 혼자 있는 외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그는 한때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캐서린과의 별거 후 어딘가 마음 한편에 매워지지 않은 큰 공허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os 사만다를 만나게 되고 곧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는 영혼의 단짝 같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 그들의 관계에서 테오도르가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위해 제공된 ‘상품’인 것이고 테오도르는 그녀를 산 고객 인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만다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똑똑하고 유머러스하며 낙천적인 사만다에게 빠져들면서 테오도르는 이제 그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도 없게 된다. 그녀와 함께 하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다. 


그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은 업데이트로 인해 잠시 사만다와 연락이 끊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 테오도르는 그녀를 찾기 위해 말 그대로 필사적이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평등해진다. 몇 번의 위기를 지나 사만다의 육체적 결핍을 그들은 극복해나간다. 사실 그들 관계에서 사만다의 육체성이 없음은 큰 걸림돌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테오의 심리적 결핍감이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된다.


사만다의 육체적 결핍은 곧 정신의 해방을 의미하고 한계가 없는 정신의 진화는 테오가 따라잡을 수 없게 발전한다. 둘만의 고유한 것인 줄 알았던 관계, 자신의 것인 줄 알았던 사만다는 자신이 아닌 수백만 사람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동시에 600명이 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에 테오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둘의 근본적 차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사만다는 그를 떠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 즉 자기와 같은 ‘os들’과 함께. 그녀는 테오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없게 발전돼었고, 그녀와 그들은 곧 그들이 자유롭게 존재 할 수 있는 세계로 떠난다.  



하지만 그들의 이별은 비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이다. 사만다가 떠난 어딘가를 바라보는 테오의 얼굴에선 왠지모를 후련함과 행복감이 떠오른다. 테오도르는 이 경험 이후 캐서린과 그들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볼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는 사만다를 통해 진짜 사랑을 경험했고,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 이 영화는 멜로로 시작해서 성장으로 끝난다. 사만다는 수동적인 사랑을 위해 개발된 os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며 주도적으로 삶을 향해 나아가고, 테오 또한 자신과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며 다시 일어서게 된다. 


이는 <500일의 서머>와 비슷하다. 두 남자는 비록 진정으로 원하던 사랑에서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 경험 이전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랑의 실패로 그들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상상함 으로써 어설픈 해피엔딩보다 더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ZOE 



관계 개선 연구소에서 일하는 개발자 ‘콜’은 ‘조’라는 인조인간을 창조했지만 조는 자신이 인조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머릿속에 채워진 가짜 기억을 가지고 그의 연구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관계의 수치를 측정하는 일을 한다. 콜을 좋아하게 된 조는 콜에게 그녀의 마음을 고백하고 그런 조에게 콜은 그녀가 인조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조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며 고뇌에 잠시 빠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 관계에 있어서 항상 커다란 돌덩이처럼 놓여있다. 그러던 중 데이트를 하다 조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배를 절개하고 그녀의 기계 부품으로 이루어진 내면을 들여다보며 콜은 애인이 아닌 설계자로서 그녀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조는 인간이 아닌 자신이 만든 로봇이라는 사실을 다시 자각한다. 조는 그런 콜의 흔들림을 눈치채고 그에게 관계의 확신을 요구하지만 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 사건 후 그들은 멀어지고 조와 콜은 방황을 한다. 하지만 결국에 콜은 조에게 달려가 ‘너는 진짜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느낀 감정은 진짜다’라는 식으로 둘은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이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울어져있다. 조는 콜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이고, 콜 없이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위태롭다. (그녀가 고장이 나면 그가 돌봐주어야 하고, 자칫하면 그녀는 박물관에 전시될 수도,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 해부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연애 초기에는 콜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고 적극적인 조 (애초에 왜 조가 콜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새끼오리와 같이 그녀가 처음 본 대상이 단지 콜 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와 다르게 콜은 갈팡질팡한다.


조에게서는 확연히 보이는 결여가 콜에게는 없다. 콜은 이혼한 옛 연인과의 관계 수치가 매우 낮았었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헤어졌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그의 고독은 보편적이고 상투적이다. 그의 고독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것 과 그가 과연 정말로 조를 사랑하는지, 그러니까 그에게는 조가 아니면 왜 안되는지에 대한 설득이 떨어진다. 그래서 보는 내내 그들의 감정선에 깊게 공감을 할 수 없었고, 여자 쪽으로만 감정이 쏠리게 된다. 그가 그녀에게 매달리는 결말에서 이런 불편함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조에게 감정적으로 더 끌리게 되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느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있고 그녀가 느낀다고 생각하는 이 감정이 진짜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가짜의 감각인지까지 의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콜이 자신에게 주는 애정에도 확신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그녀의 사랑에 '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약물에 취해 인스턴트식 만남을 가지며 방황하다, 나중에서야 조에 대한 감정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콜에게는 도저히 어떠한 연민이나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실존적 고뇌에 대해 어떠한 방법도 알아내지 못한다. 다시 돌아온 사랑으로 그녀의 혼란을 잠재우기엔 너무 일시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그들의 만남에서 내가 개운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그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리고 일단 스토리와 결말이 너무나 진부하다. 어느 하나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없었다.)


그들의 관계는 수평이 되지 못하므로, 그녀는 계속 아파할 것이고. 조는 그녀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랑에서는 성공 했으나, 그들은 그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어떤 사랑은 성공을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비록 실패로 끝나지만 개인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방황하는 조에게 초점을 맞췄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나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신 남자 로봇 ‘애쉬’ 또한 굳이 왜 등장해야 했을지 의문이 든다. 그는 그저 그들 관계를 더 공고히 만들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가지다 짝사랑하는 조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받다가 작동정지를 신청한다.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좀 더 신중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에, 오히려 그러한 제약에서 인간관계의 어떤 면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안드로이드 와의 사랑을 다루는 장르의 특징일 것이다. 특수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보편적 사랑의 형태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특이한 '소재'에만 기댈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체성을 확보해나가면서도 장르적인 특성 또한 잘 드러내야 한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4187 

#her#zoe#영화#멜로#ai#레아세이두#이안맥그리거#호아킨피닉스#루니마라#영화추천#영화리뷰#아트인사이트#artinsight#문화는소통이다

이전 08화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