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하이킥 시리즈 정리
나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줄줄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느라 참으로 바쁘고 고단했다. 남편은 아직 학생 신분이었고 나는 돈도 벌고 임신도 하고 출산도 하고 애도 봐야 해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하이킥 세례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과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좋아하는 TV 프로를 시청하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하이킥 시리즈이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까지 한국형 시트콤의 산증인인 김병욱 PD의 시트콤 찐팬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 시절 시트콤을 틀어놓고 누워 쉬거나 단순노동을 하거나 할 정도로 보고 또 봐도 볼 때마다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는 남편을 따라 김병욱 PD의 시트콤에 빠져들었는데 하필 그 당시 임신, 출산, 모유수유, 잠투정 등 고된 삶에 쩔어있던터라 하이킥 시리즈가 내게 안겨준 즐거움이 결코 작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매일 시트콤 볼 시간만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정주행 했고 함께 웃으며 육아 스트레스와 고단함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매일 시트콤을 보는 30분은 잠시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시간이었다.
하이킥 출신 신인 배우들은 모두 대박이 나서 하이킥은 스타 등용문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는데 시트콤 내에서는 아역부터 조연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다 보니 일반 드라마보다 한 명 한 명에게 더 많은 애착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박민영과 신세경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가 나란히 방영 중이기도 하다. 박민영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암 투병 중 남편과 절친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는 강지원 역으로 열연하며 월/화요일 흥행을 이끌고 있고 신세경 역시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남장여자 천재 내기 바둑꾼 역으로 토/일요일을 책임지고 있다. 그녀들이 신인으로 얼굴을 알리며 하이킥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당대 최고의 배우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내가 다 뿌듯하다.
하이킥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트콤 특성상 모두 범상치 않은 특이한 사람들이었는데 밉상이지만 인간미 있고 극단적이지만 우리 모습과 닮아있어서 결코 미워할 수 없었다. <다만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은 모두 이순재가 출연하고 3대가 함께 사는 구조이다 보니 제목이 헷갈리거나 에피소드가 뒤섞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해 또 혹시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2006.11.06- 2007.07.13 167부작
등장인물: 이순재, 나문희, 박해미, 이준하(정준하), 이민호(김혜성), 이윤호(정일우), 이민용 (최민용), 신지, 서민정, 강유미 (박민영), 신신애 (서신애)
최고 시청률 20.4%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아서 하나를 손꼽을 수가 없다. 한방병원을 운영하며 3대가 어울려 살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인데 멜로, 코믹, 감동과 스릴러까지 발란스가 좋아서 감히 국내 최고의 시트콤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여겨진다.
지붕 뚫고 하이킥
2009.09.07 - 2010.03.19 126부작
등장인물: 이순재, 김자옥, 정보석, 이현경 (오현경), 이지훈(최다니엘), 황정음, 줄리엔 강, 정준혁 (윤시윤), 정해리(진지희), 신세경
최고 시청률: 24.9%
서울로 상경한 두 자매가 순재네 집 식모로 입주하게 되면서 이 집 식구들과 벌이는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내용인데 무능한 데릴사위 정보석, 동갑내기 해리와 신애, 지훈, 정음, 준혁, 세경의 러브 라인 등등 관전 포인트.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으로 시청률과 화제성은 전작을 넘었지만 뜬금없는 비극적인 엔딩과 로맨스에 엄청난 호불호가 갈렸다. 찐팬인 남편마저 혼란에 빠지게 했던 엄청난 엔딩이었다.
이때 해리와 신애의 연기가 아주 일품이었는데 "빵꾸똥꾸"를 외치던 해리양도 벌써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때부터 줄곧 나를 빵꾸똥꾸라고 부른다.
2011.09.19 - 2012.03.29 123부작
등장인물: 안내상, 윤유선, 윤계상, 윤지석 (서지석), 안종석 (이종석), 박하선, 고영욱, 박지선, 윤건, 안수정(정수정), 김지원, 백진희, 이적, 강승윤
최고시청률: 15.5%
쫄딱 망하고 허세만 가득한 아빠와 매사에 감정이 앞서는 엄마, 철없는 남매까지 갑자기 찾아온 빈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펼치는 고군분투 이야기. 개인적으로 하이킥 시리즈 중 제일 별로였고 그래서 다른 시즌에 비해 정확히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떠도는 숏폼도 주로 시즌 1,2인 것 같다.
모든 하이킥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어떤 편을 본다 한들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요즘 십 대인 우리 아이들도 숏폼으로 하이킥을 즐겨 보는데 아주 재미있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하이킥의 웃음 코드가 여전히 통하는 모양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 웃어서 행복한 시간이라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이킥이라면 분명히 지친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주고 활력과 에너지를 충전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십여 년 전 쉴 새 없이 날라들어오는 하이킥 세례 속에서도 잘 버텨온 나 자신을 칭찬하며 오랜만에 하이킥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