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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Mar 12. 2024

좋은 연료 충분히 쌓기

영화 <3일의 휴가>



영화 제목: 3일의 휴가

장르: 판타지, 드라마, 코미디

감독: 육상효

각본: 유영아

출연: 김해숙(박복자), 신민아(방진주), 강기영(가이드)

개봉: 2023년 12월 6일


언제부턴가 지인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부모 부고였는데 어느덧 부모 차례가 되었다. 내가 그만큼 나이 들어간다는 뜻일 것이다. 연말에 해외에 사는 친구 아버님이 췌장암 치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치료 불가 소견을 듣고 한 달이 조금 지난 지난달 작고하셨다. 췌장암 판정을 받고 두 달 만에 맞이한 이별이었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매년 찾아오는 부모님 생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나의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왠지 불안하고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이들이 생일 카드에 쓴다며 "할머니 몇 살이셔?" 하는데 나이를 따져보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영화 <3일의 휴가>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엄마 복자는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 하늘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아 딸을 보러 지상에 내려온다. (아마도 모두가 꿈꾸는 그런 레퍼토리) 딸은 엄마를 볼 수 없고 엄마도 딸을 만질 수 없지만 3일간 좋은 기억만 갖고 돌아오라는 가이드의 당부를 듣게 된다.




하지만  미국 대학교 교수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딸이 복자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시골 백반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에 뒷목을 잡는다. 평생 오직 딸이 자기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일했건만......


복자는 딸이 제법 요리를 잘하는 모습에 기특해하다가도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과거에 머물며 가슴 아파하는 딸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 미칠 지경이다. 영화는 3일간 복자가 딸 진주 곁에 머물며 엄마와 딸의 추억을 되짚어 보면서 펼쳐진다.



헌신적인 엄마에 비해 딸은 엄마에게 모진 구석이 많았는데 그 뒷 배경에는 다소 예상 가능한 큰 반전 없는 과거가 숨겨져 있다. 못 배우고 가난한 홀어머니가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내린 결정에 딸은 엄마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평생 딸을 위해 온몸을 받쳤지만 엄마에게 야속하리만큼 냉랭한 딸의 진심은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마음과 많이 닮아있을 것이다.



일찌감치 결혼하신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 나의 큰 자랑은 젊고 활기찬 부모를 둔 것이었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학교 교무실에 잠깐 다녀가시면 담임 선생님뿐 아니라 다른 과목 선생님들까지 "너네 아버지 정말 젊고 멋지시다"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부모님이 중고등학생이었던 오빠와 나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오셨을 때가 지금의 나보다도 대여섯 살은 젊으셨을 때이다. 그 시절 내 눈에 부모님은 나이 든 중년 아저씨, 아줌마였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 눈에 내가 그렇겠지)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러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부모님이 굉장히 젊은 나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부모는 나에게 세상이었다. 부모를 거울삼아 내 미래를 설계했고 부모와 부딪히며 내 자아를 찾았다.


나의 산이고 바다고 큰 세상이었던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쓸쓸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다. 아직 심각한 지병으로 병원을 드나들지 않으시더라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걸음걸이, 체형과 말투 등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반전이 없는 영화지만 결말은 조용히 남겨둔다.

나의 경우 중년의 나이에 이 영화를 보았더니 자식의 심정, 부모의 심정 양쪽을 오가며 영화를 보게 되더라.


영화는 느리고 잔잔한 브이로그와 다소 뻔한 감동 신파의 중간쯤 되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의 짬뽕 버전 같다는 평이 많았는데 리틀 포레스트처럼 군침 고이게 하는, 아는 맛이라 더 궁금한 음식 연출은 꽤 괜찮았다. 이런 류의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극장까지 가서 보지 못했다면 넷플릭스로 볼만하다.



나는 아들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갈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평생 스물여섯쯤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던 나도 이미 마흔 중반을 넘어왔다. 부모뿐 아니라 태어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순서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누구도 피해 갈 순 없다. 이렇게 죽음이 삶의 일부이고 삶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죽음이 이토록 두려운 까닭은 죽음 이후에는 함께 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살아있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 함께 하고 원 없이 사랑해야 하는데 그것은 가끔 잊고 사는 것만 같다.


영화 속 대사 중 "기억이라는 게 어찌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 같은 겁니다. 좋은 기억들이 많이 쌓이면 아주 고급 휘발유를 채운 승용차처럼 잘 달리는 거고 나쁜 기억들은 불량 휘발유처럼 삶을 덜컹거리게 만들고요."


그래, 좋은 연료를 차고 넘치게 만들어보자!




보너스

진주가 엄마표 만두를 만드는 장면에서 무를 소로 넣어 만두를 만드는데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두까지는 아니더라도 냉동칸에 있는 만두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러 번 망설이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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