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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이 망해서 헬스 업계가 먹고 산다

by 육선이 Feb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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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트레이너들은 눈을 뜨자마자 세종시를 향해 큰 절을 올리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대단한 애국자여서가 아니라, 그 곳에 우리를 먹여 살리는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교육부가 만든 체육 교과과정과 그것에 따라 진행되는 체육 수업이 부실한 덕분에 먹고 살 수 있다.


전국의 모든 트레이너를 대신하여 체육 수업에 감사한 점을 하나씩 짚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행여라도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서 피트니스 업계가 물갈이 되는 일이 없도록 체육 교육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하련다.




체육에 감사드리는 것들



1. 스포츠 과몰입


체육 수업의 대부분은 스포츠의 특정 동작들을 연습하는 것이다. 농구의 레이업이나 슛, 축구의 킥이나 패스처럼 대중적인 것부터 육상의 허들, 뜀틀까지 종목도 다양하다. 인기/비인기를 나누지 않고 골고루 핥아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인기 여부를 떠나서 스포츠 종목 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운동을 하는 순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초적인 신체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아기가 두 발로 설 수 있게 된 후에 걷고 걸을 수 있게 된 후에 뛰는 걸 떠올려보라. 더 힘든 동작을 하기 전에 덜 힘든 동작부터 익히는 방식이, 얼핏 봐도 그럴 듯 하지 않나?


스포츠를 맞이할 때도 이 순서를 지켜야 한다. 특히 스포츠라는 녀석들은 특정 방식의 움직임만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오른손 투수로 야구를 시작하는 아이는 왼팔보다는 오른팔을, 오른팔을 뒤로 휘두르는 동작보다는 앞으로 휘두르는 동작을 많이 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편식이 심해지면 변형, 통증, 부상 등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준비를 '일반적 신체 준비'라고 하더라. 영어로는 General Physical Preparation, 줄여서 GPP라고 한다. 특정 스포츠에 필요한 신체 요소를 훈련하는 것은 영어로 Specific Physical Preparation(SPP)라고 하는데, General과 Specific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의미가 확실히 와닿을 것이다.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의 설명을 첨부한다.


체육 수업에서 GPP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엘리트 학생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활동적이지도 않고, 움직임도 적었던 평범한 아이들도 초중고 12년 동안 다짜고짜 스포츠 상황에 던져진다. 1단계를 마치지 못한 몸으로 2, 3단계의 동작을 해내야만 한다. 수행평가를 준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 말이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GPP라고는 국민체조밖에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체력과 근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거나 아픈 건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SPP, 즉, 특정 종목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 준비되지 않은 몸이라는 리스크를 안고서.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개인의 고민거리가 피트니스 업계의 매출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교육부가 있는 세종시를 향해 절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1-1. 스포츠 과몰입이 해결된다면

= 학교에서 GPP를 가르친다면


비상, 초비상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가르치는 근력 훈련 지식 중 기초적인 내용들은 GPP 교육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트레이너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트레이닝 경험도 훨씬 풍부해야 할 거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사람들조차 최소한 3~6년 정도는 근력 훈련을 경험한 상태일 테니까.


기초를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더 높은 수준의 지식까지 배우려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낸 소비자라면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 거고.


이러면 트레이너의 커트라인 자체가 높아진다. 어지간한 공부와 경험으로는 트레이너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대규모 물갈이(?)가 휩쓸고 간 피트니스 업계에는 실력과 경험을 고루 갖춘, 일정 수준 이상의 코치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2. 여성 학생들 왕따시키기


체육 수업에서 여성 학생들은 특이한(?) 대우를 받는다. 외국인들이 보면 여성 학생들이 철저히 피구, 발야구 전문 선수로 육성되는 거냐고 오해할 정도다. 학교에 따라 배드민턴이나 '그늘에 앉아 있기'로 진로가 바뀌기도 한다.


초-중-고로 올라갈수록 체육 시간에 자주 제공되는 자유 시간에도 남성 학생들은 축구, 농구 같은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지만 여성 학생들은 위의 3종 세트(피구, 발야구, 배드민턴)를 하거나 그늘에서 쉰다. 그나마도 격렬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공학에서 더 그렇다.)


이런 경험은 체육 수업 외의 신체 활동에도 영향을 준다. 신체 활동이 허락된 체육 시간에조차 격렬하게 움직여보지 못한 여성 학생들이 그 외 시간에 특별히 활동적일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더 '얌전'해지기 마련이다. 단적인 예로 쉬는 시간에 뛰어 다니거나 점심 시간에 운동장을 점령하는 것도 대부분 남성 학생들이다. 


이렇게 자란 여성 중 상당수가 피트니스 시장의 큰 손이 된다. 활동을 골고루, 충분히 하지 못한 신체는 매우 약한데, 약한 신체는 불편하고 아파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런 곤란함을 해결하는 방법도, 태도도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타인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동네의 수많은 헬스장, 필라테스, 트레이너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트레이너, 코치, 강사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안도 없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언젠가 만날 메시아적 트레이너를 기다리며 꾸준히 돈을 쓴다. 그렇게 그들은 '큰 손'이 될 수밖에 없다.



2-1. 여성 학생들도 체육을 배운다면

= 물론 GPP를 포함해서


또 비상이다. 이멀젼씨!!!!! 피트니스 시장을 떠받치는 여성과 실버라는 양대 산맥 하나가 산사태로 평지가 된다!!


단순히 여성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더 튼튼해지고, 덜 아파지고,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방법을 알아버림으로서 PT를 덜 받게 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여성들이 신체 활동의 참맛을 알아버리고, 모두가 선망하던 바디프로필 따위를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피트니스 시장은 여성 소비자들 중의 상당수가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학습 받음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이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PT를 결제하고,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며 카드를 내밀 때마다 헬스장과 트레이너의 잔고가 빵빵해진다.


그런데 이 모든 '부가가치'가 여성스런 몸매와 바디프로필이 아닌 건강, 근력, 체력, 거친 신체 활동 쪽으로 분산된다면, 피트니스 업계에는 난리가 날 것이다. 이번에도 건강과 근력, 체력 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업체와 코치들만 살아 남을 것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처럼 피트니스 시장은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부실한 체육 수업에 빚지고 있다. 진정으로 지금의 피트니스 시장에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려는 사람이라면, 체육 수업이 개선되는 것을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 학생들이 더 많은 문제를 떠안은 채로 성인이 되어서 피트니스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체육 수업이 개선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시라도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피트니스 업계를 떠나서 다른 직업을 찾을지, 수준 높은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실력과 가치관을 갖춰서 존중 받는 코치가 될지의 사이에서 말이다. 


분명한 체육 수업이 바뀌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코치들이 있다는 사실이고, 피트니스 시장의 나머지는 그들에게 업계의 명예를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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