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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Jul 22. 2023

작가님, 쓰고 싶은 글 쓰지 마세요(2)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계관

그러나 결과는 아주 처참했다.

 3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8평 남짓 작업실에서 집필에만 매달렸는데 말이다. 심지어 카카오페이지에서 프로모션까지 받았는데 관작수도, 들어온 수입도 이토록 형편없는 결과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티베트 불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정서적 코드가 맞지 않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연인의 인연을 쓰고서야 알 수 있었다.(그래서 취직도 못한 거겠지.)


오픈하고 보름쯤 지났을까. 출판사 대표님과 작품을 낸 관계자를 만났다. 그런데 관계자의 말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작가님. 쓰고 싶은 글 쓰지 마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거대한 망치가 내 뒤통수를 때리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웹소설 작가로서 너무나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시장에서 안 먹힌다니. 내 감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걸 더 이상 사람들이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그럼 난 어떤 소재를 써야 하며, 그 소재를 찾는다고 한들 내가 잘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 시장에서 유행하던 장르는 회. 빙. 환을 기본으로 한 서양로판과 재벌 3세 남주가 등장하는 현로(현대로맨스)였다.

서양 로맨스 판타지. 남이 쓴 글을 읽을 때는 아주 재미있지. 하지만 코르셋으로 허리를 힘껏 조인 드레스를 입고 부채를 살랑살랑 거리며 하하 호호 웃는 장면만 상상해도 손발이 오글거려서 글을 못 쓰겠는 걸 어떡하겠는가.

현대로맨스. 오만하고 세상 남부러울 게 없는 재벌 3세와의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는 도무지 상상이 안 돼서 스토리가 안 나오는 데 어떡하겠는가.

절필을 할까도 생각해 봤다.

더 이상 시장에서 아무 힘이 없는데 굳이 내가 웹소설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세상에 재능 있는 웹소설 작가는 넘칠 정도로 많고,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작품이 플랫폼에 쏟아져 나오는데 내가 설 자리는 과연 있을까 싶은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래도 차마 웹소설을 놓지 못한 건 한 편이라도 내 글을 보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달에 100원이라도 들어오는 걸 보고는 그래도 읽은 사람이 있구나. 내 글이 아주 재미가 없지는 않나 보다. 하는 안도감.

그리고 언젠가는 내 글이 빵 뜨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후, 절필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가 공들여 쓴 웹소설이 히트치고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재미있다고 해준다면 좋겠지만, 인기는 하늘에 달린 것을 내가 어쩌랴.


쨌든 나는 내 모든 걸 갈아 넣고 추후에 개정하지 않겠노라 각오할 만큼 노력했다.

작가로서의 역할은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 영업은 웹소설 PD들의 몫으로 넘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PD 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소재와 주제로 웹소설을 써야 팔리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완전히 배제한 채 시장 원리에만 무작정 따라가며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쓰는 나도 즐거움과 흥미를 느끼면서 일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재미있게 글을 쓰면 독자들도 더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언젠가는 내가 흥미로워하는 세상을  많은 사람들도 즐거워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키보드를 열심히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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