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필시인 May 31. 2024

자유가 없다는 걸 알 때 자유롭다.

/ 글을 끊었다. /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즐거웠고 힘들었다.

그리고 힘들었고 즐거웠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그 미묘한 경계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방황하다 보면 길을 찾고

떠났어도 다시 돌아올 것을


글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그런 일이었다.


자유롭기 위해 그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며 자유는 사라진다.

즐겁기 위해 그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면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방황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잘못되지 않았다.

그런 거였다.

자유는 없고 즐거움도 없다.

그런 거니까

잠깐의 자유와 즐거움을 위해

나는 많은 구속과 고통을 지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

다시 움직일 힘이 조금씩 생긴다.


자유가 없다는 걸 알 때 자유롭다.

즐겁지 않다는 걸 알 때 즐겁다.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한 것이니까.

내가 원하는 걸 한다는 것만큼

나를 자유롭고 즐겁게 하는 일은 없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즐긴다는 것 온통 즐거운 게 아니고

자유롭다는 건 온통 자유로운 게 아니다.

대가를 지불하면 조금 돌아오는 보상일 뿐이다.

아빠의 월급처럼 엄마의 보람처럼 그런 것이다.


여행은 도착하면 끝난다.

여행은 가는 것이다.

모두가 보는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나의 여행이니까

그냥 나의 글여행을 

한 걸음씩 한 글자씩 

뚜벅뚜벅 또박또박 가 보자.




그렇게 좋아하던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쓰기 싫어졌다. 그래서 한참을 쓰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듯 글을 쓰다가 담배를 끊듯 글을 끊었다. 금단증세도 없었다. 오히려 편했다. 글을 쓰다가 쓰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활은 똑같았고 시간은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가끔씩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쓰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선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게 말이다. 그러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남는 건 사진이고 남기는 건 글이듯 무언가 숙제처럼 느껴지던 글이 나를 옭아매고 있던 것일까.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생활에서 그 사랑이 부러지듯 글을 쓴다는 나의 사랑은 현실에서 부러졌던 것 같다. 그 무미건조한 금연 같은 글쓰기의 멈춤에서 글쓰기는 자유가 없는 자유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근하기 힘들다는 말년의 직장인에게 그래도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어디냐는 부인의 위로처럼, 글쓰기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인생의 위로였다. 월급봉투 같은 보람과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수고처럼 글쓰기의 어려움은 그런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글을 쓰는 힘이 조금은 생겼다. 왜 나의 글쓰기는 과정이 쉽고 결과가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나는 왜 예외이고 싶어 했을까. 반성은 잠시 떨어야 오는 연인의 이별 같다. 노트북의 리셋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시작해 본다.


이전 16화 이별 장면(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