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내 스타일이야.

* 대수노트(대수롭지 않은 글을 적은 노트) *

by 글하루

음미(吟味, 읊을음, 맛미)는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돌리듯

천천히 머물고 공기를 더하듯 풍미를 살리는 것이다.


왜 울어? 영자야, 너 좋아하는 밥을 먹는데....

밥이 줄어들잖아...

이것이 음미이다.


빨리 갔으면 좋겠어

거의 불행이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의 행복이다.


원수는 마주치기도 싫고, 애인은 보내기가 싫다.

보내기 싫어 결혼했더니 원수가 되는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다. 하하

신신애가 노래한다. 세상은 요기경이라고....


김래원이 한석규와 나온 "프리즌"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한석규가 떠준 방어회를 앞에 두고 소주를 마시며 한마디 한다.

"이놈 교도소 참 재밌어, 은근 내 스타일이야."

있기 싫은 감옥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낭만적이다.

은근 내 스타일이면 음미하게 된다.


음미하게 되면 집중하게 된다.

집중하면 음미하게 되고,

병아리가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둘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문제이다.


싫어하는 걸 음미하는 건 추남을 옆에 두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미녀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안타깝다.

행복이라는 말보다 왜?라는 물음이 앞장선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도 해야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이럴 때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지옥의 시간을 천국의 시간으로 바꾸는 지니의 요술램프가 될 것이다.


일단 시도는 해 보자.

어떻게?

거꾸로....

싫어하는 일을 음미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쓴 물약을 꿀물처럼 마시라니.... 참 잔인하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떨까?

쓴 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시듯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커피의 쓴맛도 즐기게 되는 것처럼.

영화관에 들어가는 처음이 그렇듯 어둠처럼 싫어하는 일에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잠깐 낮잠을 자는 것, 좋아하는 책을 사이사이 잠깐 보는 것.

밤에 전등이라는 낮을 섞어 어둠 속에서 살아남듯

싫어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을 섞어 그 싫어하는 일을, 해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밝은 낮에만 살 수 없는 하루이기에 밤에도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겨.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즐기려는데 집중해.

최대한 천천히 하고 사이사이 추임새 넣듯 내가 좋아하는 걸로 간을 맞추는 거지.


천천히 꾸준히 하는 일은 속도와 상관없이 방향이 주는 파워를 갖게 된다.

속도보다는 방향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빨리 가지 못해도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은근 내 스타일이야.

내가 하면 내 스타일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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