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커피숍에는 선생님이 와 계신다.
테이블 위를 보니 짬을 내서 뭔가를 끄적이고 계신 듯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한다.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못다 한 얘기들이 하나둘씩 모아지고 서로의 일상이 머리에 그려진다.
몰랐던 시간들이 알게 되는 시간으로 정의되며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선생님께 무언가 하나를 말씀드리면 무언가 두 개로 돌아와서는 깨달음을 주신다.
테이블 위에 케이크보다 선생님의 말씀이 더 달다.
테이블 위 A4지 반을 접은 종이에 눈길이 간다.
종이에는 추상화같이 여기저기 새발자욱 같기도 하고, 갈라진 돌틈 같기도 한,
눈을 좁혀서 보면 별의 모양 같은 것이 흩어져서는 아름답게 보인다.
자꾸 내 시선이 그 종이에 머무는 걸 느끼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뭘 그리 보시는가?"
"테이블 위에 종이를 보고 있어요. 선생님 요즘에 무슨 그림도 그리세요? 추상화 같기도 하고 그림이 운치 있고 멋있어요."
선생님이 내 시선 끝을 보시더니 미소로 말씀하신다.
"볼펜똥일세."
"예? 볼펜똥요."
놀라며 얼른 종이를 집어 들고는 자세히 본다.
네 눈에는 여전히 멋진 추상화다.
"아. 제 눈에는 여전히 멋진 그림으로 보이는데요."
선생님이 함박웃음으로 말씀하신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볼펜으로 쓰다 보면 볼펜똥이 생기지 않나. 잘 쓰려면 잘 닦아 내야지.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한줄한줄 쓸 때마다 닦아낸 흔적들이지. 아마 그래서 멋있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신다.
"볼펜똥이 그냥 볼펜똥이 아니네요."
그리고 다시 종이를 바라본다.
선생님의 말씀이 들린다.
"나도 자네 눈이 고맙구먼. 볼펜똥을 닦은 것인데 자네 눈 덕분에 작품이 되었으니 말이야."
무언가는 눈을 통해 무언가로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