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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여유에서

by 글하루

젊어서는 바쁘다는 것이 능력이라고 믿었다. 바빠야 성공한다고, 한가한 건 게으름이라 생각했다. 젊어서는 그랬다. 성공과 바쁨은 동의어였다. 뛰어다니고 시간을 쪼개서 쓰고 빡빡한 스케줄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나는 바쁜 걸까, 바쁜 척을 하는 걸까?'


실력 있는 사람은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들고, 결국 정리하지 못한 일들이 나를 집어삼켰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일을 처리하는 것. 과식해도 소화하지 못하면 탈만 날 뿐이었다. 속도가 필요할 때는 잠깐이었고 결국 균형이 중요했다. 적정한 리듬을 아는 것. 여유는 그것이어야 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정신없이 달리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려야 운동을 한 것 같은 생각에 한순간은 열심히 했지만 힘에 겨워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러닝머신 위를 달리지 않았다. 같이 운동하던 친구는 가벼운 속도로 뛰다가 가끔 속도를 올리고 뛰었다. 힘들면 바로 속도를 내리고 가볍게 걸으며 음악을 즐겼다. 그 친구는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운동은 여유야, 평생 할 건데 뭐 그리 급해. 전속력으로 뛰면 금방 지쳐, 운동에도 번아웃이 있다고. 나는 천천히 오래 하련다."


"서두름은 실수는 낳고, 여유는 기회를 낳는다."


여유는 늘어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을 반성한다. 이제 알겠다. 여유는 적당한 리듬이란 걸. 적당한 빠르기에 숨을 쉴 시간과 공간을 두고 사이에 약간의 쿠션을 적절히 놓는 것이다. 철길에 놓인 철로에 틈이 있듯, 강을 건너는 다리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듯, 그건 잘못된 시공이 아닌 현명함과 지혜이다. 그 틈이 철길의 끊어짐과 다리의 붕괴를 막아준다.


눈앞의 일에만 매달리면 늘 바쁘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으면 그 안에서 여유를 만들 수 있다. 다음 일정으로 생각을 가득 채우면 마음과 몸이 바쁘다. 서두른다고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유가 실력이다. 회의에서 재빨리 의견을 내놓기보다 차분히 듣고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건네는 것. 노트북을 켜자마자 타자를 두드리는 대신,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작은 여유가 내 존재감을 키운다. 실력은 속도가 아니다. 진짜 실력은 시간을 지배한다.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여유를 갖는 것의 장점은 실수를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불필요한 긴장감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자신감이 생기고, 창의력이 향상된다. 반면에 여유를 갖는 것의 단점은 느려 보일 수 있고,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경쟁사회에서 뒤처진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조직에서 답답하게 여길 수 있으며, 동기부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장점과 단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을 생각해 보자.


- 우선순위를 정하자 : 모든 일을 다 잘 해낼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


- 작은 루틴을 만들자 : 하루 10분이라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 등을 정해두면 바쁜 와중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정해놓는 것은 결국 내 것이 된다.


- 멀티태스킹을 줄여라 :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효율이 높아질 것 같지만, 오히려 집중력을 흐뜨러뜨린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자.


- 스스로에게 여유를 허락하라 :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 호흡을 가다듬어라 : 급할수록 천천히 숨을 쉬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깊고 느린 호흡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 'NO'라고 말할 줄 알아라 :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줄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일정과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무리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라 : 스마트폰, SNS, 이메일 알림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습관을 줄이면, 더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일정 시간 동안 알림을 끄고 몰입할 시간을 가져보자.


- 자연과 가까워져라 : 바쁜 도심 속에서도 가끔은 공원이나 강변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 완벽주의를 버려라 :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적절한 수준에서 만족할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


- 현재에 집중하라 :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여유의 시작이다.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실력자다. 지금을 즐긴다는 것은 지금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라는 의미다. 시간을 먹으면서 즐긴다고 생각하자.


작은 습관 하나만 바꿔도 삶에 여유가 스며든다. 바쁠수록 천천히, 급할수록 여유롭게. 결국 나는 지금에 사는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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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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